공지사항

국학원과 국학활동의 생생한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Home > 알림마당 > 공지사항

[회원 에세이]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 2013.02.20  조회: 3541

 

고향가기 1주일 전부터 두번이나 꿈에 고향집이 보인다. 올해가 계사년이고 뱀의 해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큰 뱀이 바깥마당에서 안마당으로 땅속을 파고 들어가고 과 주변에 여러마리의 가느다랗고 작은 뱀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장독대도 예전 모습대로 보인다. 

 

매번 고향가는 날을 앞두고는 가족 누군가는 고향집에 부모님이 계시는 꿈을 꾼다. 아마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시는 것 같다고 누님이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런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모두가 현실이다.  

 

서정주 시인은 고향 고창을 떠나 서울 인왕산 아래 수대동에 살면서 그의 시 수대동시(水帶洞詩)에서 고향을 "흰 무영옷 갈아입고 난 마음"이라 노래했다. 또 "아스럼 눈감었던 내 넋의 시골/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 라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노래했다. 

 

"사람의 가슴깊은 밑바닥에 그리움으로 살아있는 곳, 태어나고 자란 곳"을 우리는 고향이라 부른다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열여섯살엔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 때까지는 아직 새마을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이라 수천년 이어져 온 고향의 모습이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간간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신작로의 버스소리 외에는 큰 소리가 없어 적막했는데 골목마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동네의 살아있는 활기였다.

 

어둑해지기 전에 갈매골 골짝에서 밭일을 마치고 지개지고 동네 가까이 오면 밥짓는 굴뚝연기가 초가집 지붕위 옆으로 길게 나즈막한 뒤매산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흐르던 고요한 동네였다. 밤이면 마을 어머니들이 등불 없이도 깜깜한 골목길로 우리집 안방에 모여 밤늦게까지 계셨다. 작은 호롱불에 매운 담배연기가 방안에 자욱해지면 천정에 붙은 신문지 글씨가 더 흐릿해 보인다. 문을 조금 비시고 환기를 시키면 차거운 바깥 공기로 금방 써늘함이 느껴진다.

 

방학이 끝나고 고향집을 떠나올 때는 누우런 비료포대에 말린 나물이나 반찬꺼리들을 넣어 아버지가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 손에 들 수 있게 해 주신다. 키가 160cm도 안되는 나에게 꽤나 무거웠다. 멀리 서울 갈때는 짐이 무겁지 않게 눈섭도 빼놓고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한가지라도 더 가져 가라고 챙기시니 짐은 자꾸 무거워 진다. 마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땅고개 넘어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손을 흔들고 계셨다. 

 

이제는 아무도 안계시는 빈 고향집에 대문 자물쇠를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서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하면서 들어선다. 그리고 산소에 도착하면서도 또 그렇게 한다. 고향이나 어머니는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그리움이다.

 

대다수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지금의 도시 어른들에게 고향은 언제나 그런 모습이다. 더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에 잠시 잊고 지내지만 누구나에게 고향은 그런 느낌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어쩌면 현대인들은 모두 실향민인지 모른다. 다행히도 찾아갈 고향이 있고 언제라도 가면 머물 고향집이 옛 모습대로 그 자리에 있는 나는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있는가? 

 

거기다 정다운 친구까지 이웃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닌가? 고향은 돌아가고 싶은 향수와 돌아갈 수 없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고 누가 말했지만 오늘의 현대화된 어떤 고급스런 집이나 생활여건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아름다움이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절실한 사연들이 한낱 이야기책 속의 한구절처럼 비치게 되고 말지 않을까?  

 

밤 11시가 지나 고향집에 도착하여 안방에 들어서니 실내 온도가 4도를 가리키고 있다.

보일러를 가동시키는 사이에 마당에 장작불을 피고 작은방에도 군불을 넣었다.

 

 

 

등이 달린 것 외에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방의 천정 서까래는 예전에 올려다 본 그대로이다. 추워서 라면을 끓여 먹고 전기온풍기를 두어시간 돌려도 방안 온도가 7~8도 정도이다. 작은 아들과 셋이서 한이불을 깔고 겹겹으로 덮으니 이불속은 따스해지는데 차거운 공기로 숨쉬는코가 아리다.

 

아침에 마당 잔디를 태워 봄채비를 한다.

벽시계는 누가 봐주지 않는다고 시간을 제멋대로 가리키고 있다.

 60대 중 후반인데도 동네에서는 젊은이라 이장을 하고 있는 영필이 친구를 만나 커피한잔 하고는 선산 성묘를 위해 곧 출발  

 

마당    -미당 서정주-

 

봄에서 가을까지 마당에서는
산에서 거둬들인 왼갖 나무 향내음
떡갈나무 노가주 산초서껀 섞어서


아버지가 해다 말리는 山엣나무 향내음

해가 지면 이 마당에 멍석을 펴고
왼식구가 모여앉아 칼국수를 먹었네
먹고선 거기 누워 하늘의 별을 보았네
희한한 하늘의 별 희한스레 보았네

 

떡갈나무 노가주 산초 냄새에
어무니 아부지 마포 적삼 냄새에
어린 동생 사타구니 꼬치 냄새에
더 또렷한 하늘의 별 왼몸으로 보았네

 

 

  

이웃 산소에서 우리 산소와의 사이에 있던 나무들을 베어내니 한 영역처럼 훤해졌다

윗대 합제단에 성묘 후 부모님 산소앞에 또 한번 절을 올린다.

작은 아들 첫돌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할머니 기억은 거의 없고 할아버지와 대구 2군사령부 관사에서 가게로 과자사러 다녔던 기억이 난단다.

 

 * 이 글은 국학원의 후원회원이고, 국학전우회 회장을 맡고 계신 전인구님께서 지난 설을 지내며 쓴 에세이입니다. 아름다운 글을 많이 많이 투고해주세요. 

 

 

이전글 세계국학원청년단, 삼일절 맞이 “대한민국 국민만세” 태극기몹 개최
다음글 [일지희망메시지] 멘탈헬스의 3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