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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194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해보니…‘역사왜곡’ 그대로 2013.04.16  조회: 2666

일본 교과서 1940년대와 2010년대를 비교해보니…‘역사왜곡’ 그대로

엄찬호 강원대 교수, 13일 ‘일본의 한국사 왜곡과 역사치유’에서 밝혀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육은 다음 세대들에게 그릇된 역사상을 심어주고 그것을 통해 학생들이 민족적 편견과 우월의식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일시적인 문제일 수 없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되어가지만, 일본이 지속적으로 역사 훼손을 이어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침략이 계속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사관이 2010년 국사교과서에서도 그대로 담겨 교육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엄찬호 강원대 교수는 지난 13일 한일관계사학회가 주최한 제145회 월례발표회에서 “일본의 반복된 역사왜곡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며 "한일 간의 건강한 미래를 이루기 위해 일제 강점의 논리였던 역사왜곡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엄 교수는 "일본의 한국사 왜곡과 역사치유"라는 주제로 1941년에 출판된 <초등국사初等國史 第六學年>과 2010년 출판된 <개정판 신 역사교과서改訂版 新しい?史?科書>를 비교해서 발표했다.

그는 두 교과서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합법절차론合法節次論 등 일본의 3대 침략논리가 담겼다고 주장했다.

 

일본과 한국은 같은 민족이다

먼저 1940년대 초등국사를 살펴보자.

"예전 조선에는 남쪽에 한국인이, 북쪽에는 만주인이 거주하였고, 서쪽에는 중국인, 남쪽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특히 강유역이나 바다근처에 촌락들이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더구나 남부는 기후도 좋고, 땅도 기름졌기 때문에 일찍부터 알려졌고, 또 금은과 철 등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중국에 알려졌었습니다. 곧 지금의 낙동강과 섬진강ㆍ금강의 유역에는 황실의 은혜가 확산되었습니다. 이 지방은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지금의 김해에 있던 임나국任那國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임나라고 했습니다. 천황은 관리를 보내어 이 지방을 다스렸고, 이 나라들은 모두 황실에 여러 가지 공물을 바쳤습니다.(위 교과서 13~14쪽)

신라와 백제도 천황의 위세에 복종하였고, 이에 천황은 이 나라들을 잘 다스려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임나와 같이 잘 보살펴 주었다. 신라와 백제는 견직물과 철 등을 비롯하여 진귀한 물건들을 공물로 헌상하였고, 왕자가 와서 조정에 봉사하였다”(위 교과서 21쪽)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은 일본민족과 조선민족의 조상은 하나라는 이론을 말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탄하고 태평양 전쟁 이후 한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름과 성을 일본식으로 고치는 창씨개명이고 조선인도 일본 천황의 백성임을 선언한 신사(神社) 참배가 그것이다.

엄 교수는 이러한 논리가 2010년 판 역사교과서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4세기 이후, 조선반도 북부의 고구려가 점차 강대해져서, 4세기 초에, 조선반도 내에 있던 낙랑군을 공격하고, 4세기 후반에는 반도 남부의 백제도 공격했다. 이에 백제는 야마토 조정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일본은 귀중한 철자원을 희망하여 반도 남부와 깊은 교류를 갖고 있었으므로, 야마토 조정은 바다를 건너 조선에 출병하였는데, 이때 야마토 조정은, 반도 남부의 임나任那(가야)에 거점을 두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비문을 예로 들어 야마토 조정의 군대가 백제를 도와 고구려와 격렬하게 싸웠고, 고구려는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켰지만, 백제와 야마토 조정의 군의 저항을 맞아, 반도 남부는 정복하지 못하였다.(위 교과서 32쪽)

조선에서는 세 개의 나라가 분립하고 있었지만, 6세기가 되면서, 조선반도 남부에서는 신라가 세력을 넓혔다. 고구려와 신라에 압박받은 백제는 이에 대항했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백제는 도움을 요구하고자 사자를 일본 열도에 보냈다. 신라는 임나도 위협하였다. 562년, 마침내 임나는 신라에 복속되어 야마토 조정은 조선반도에서의 발판을 잃었다.“(위 교과서 33쪽)

엄 교수는 "백제가 일본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으며, 마침내 가야는 신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는데, 가야가 멸망함으로서 임나에 거점을 두고 있던 일본도 근거지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라며 "일본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후반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의 논리를 여전히 강조하여 ‘일선동조론’을 뒷받침하였다."라고 설명했다.

 

동양평화론의 숨은 의도는?

동양평화론은 중국이나 조선에 비해 일찍 문명국이 된 일본이 서구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내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기 위한 중요한 침략 논리 중의 하나다.

1941년 초등국사에는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을 내세워 동양평화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북방에 나타난 러시아의 세력을 방어하고, 국토를 지키려 했지만, 그 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 방면으로부터 조선을 압박했고, 더구나 만주에 진출하여 여순旅順, 대련大連에 이르러 조선을 위협하여 왔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우리나라가 청과 전쟁하면서까지도 보호하려고 하는 것과 상관없이, 또 정치하는 그 사이에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만주에서 조선에 다가온 러시아의 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에 충고했지만, 조금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여순旅順을 지키기 위하여 해륙海陸의 병사를 늘리고, 조선의 북부를 점령하였기 때문에 그대로는 한韓이 멸망해 버릴 우려가 있었습니다. (위 교과서 160~161쪽)"

이에 대해 2010년 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서구열강이 동아시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일본의 위기도 심각해진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의 지도를 살펴보자.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조금 떨어져서,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이다. 이 일본을 향해, 대륙에서 한쪽의 팔처럼 조선반도가 튀어나와 있다. 양국의 이 지리적인 관계는, 오랜 역사상에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고래, 조선반도로부터는, 중국 등의 나아간 문명이 일본에 전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반도에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 미친 적도 있었다. 일본은, 중국과 조선반도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다. 일본이 고대 율령국가를 형성한 것도, 동아시아 속에서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위 교과서 161쪽)"

엄 교수는 "일본은 만주지역을 점령해 들어오는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을 내세웠다. 그러나 일본은 동양평화론을 내세워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러일전쟁 후 한국을 보호국화하였다가 결국 병합함으로써 동양평화론은 일본의 침략논리였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한국강점은 합법이다"

합법절차론은 일본의 한국병합이 법적으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논리를 말한다. 이는 일본의 한국강점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침략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1941년 초등국사에는 "러일전쟁 후 ‘한국황제는 이등박문伊藤博文을 만나 일본의 세력이 성하여 지위가 높아졌으므로 일본을 이용하여 외국의 세력을 막아내고자 외교사무를 일본에게 맡겼다’고 하였다. 그래서 ‘일본 천황은 이등박문伊藤博文을 통감으로 임명하고, 경성에 통감부를 두어 조선을 지도하고, 서로 힘을 합쳐 동아의 수호를 굳게 하였다"고 서술했다.

2010년 역사교과서에는 국내의 합법적 절차보다 한국의 지배에 대한 외국의 양해를 받음으로써 한국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자 했다.

일러전쟁 후, 일본은 한국에 한국통감부를 두고 지배를 강화해 갔다. 구미열강은, 영국의 인도, 미국의 필리핀, 러시아의 외몽골 등, 자국의 식민지나 세력권의 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는 것 등과 교환에, 일본이 한국을 영향하에 다스리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위 교과서 170쪽)

엄 교수는 "국사교과는 역사의 왜곡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킴으로써 한국민족의 패배의식을 조장하고 민족주체성을 상실하게 하는데 유용하게 이용됐다"라며 "이러한 역사왜곡은 현재의 교과서에까지도 이어져 일본의 침략논리를 그대로 교육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극복하여 건강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치유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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