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안중근은 기억되어야 한다"
국민강좌 118회,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안중근의 삶을 다시 보다
지난 토요일인 5월 11일 저녁,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에 인기검색어로 '안중근 조마리아'가 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그날 방송한 MBC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등장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이돌 가수들에게 역사 강의하면서 안 의사가 순국하기 전 조마리아 여사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어주었던 것이다.
"...나라를 위해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를 향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이라 하면 대개 독립운동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아들에 대한 모정의 비통함과 안타까움 이전에 쓰러져가는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독립군의 심정이 먼저 느껴진다.
하지만 안 의사를 '독립운동가'로만 보기에는 그의 활동 무대와 활약상이 너무나 방대하다. 이러한 안 의사의 진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사단법인 국학원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이 주관하는 118회 국민강좌가 지난 14일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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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일 전 안중근기념관장이자 중앙대 명예교수가 14일 제118회 국민강좌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강연을 했다. |
독립투사 이전에 위대한 사상가였던 안중근 의사를 깨워낸 것은 전 안중근기념관장이었던 김호일 중앙대 명예교수였다. 한국 근현대사 분야의 원로학자인 김 교수는 일흔을 넘긴 그의 연배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열정적인 강의로 현장에 참석한 200여 명의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안중근, 32년의 삶이 남긴 발자취는 타의 주종을 불허한다"
김 교수는 가장 먼저 안 의사에 대한 소개로 강의를 시작했다.
"'안중근'이라 하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안중근은 정말 전인적인 인물이었다.
당연히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의사였고 '동양평화론'과 같은 위대한 사상을 주창한 사상가였다. 그리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종교인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저술가로 책을 써냈다. 독립운동을 전개한 장군이기도 한 그는 200여 점이나 되는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씨)을 남겼다.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나이가 만 30세, 우리 나이로 32세였다. 그 짧은 생애 속에 이렇게나 많은 일을,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혁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 안중근이다."
국내외 모두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국외에서는 제국주의가 활개를 치며 청과 일본, 제정 러시아가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렸다. 특히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빌미로 외세의 침략이 거세게 밀어닥쳤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에 이어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 명성황후 외척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나라 밖 전쟁의 기운이 혼란스러운 한반도를 집어삼키는 그런 때였다. 조선왕조는 빈껍데기로 외세에 완전히 장악당한 것이다.
이때 안 의사는 독립운동을 두 갈래로 진행했다. 하나는 무장독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화운동이었다. 안 의사는 당시 나라가 '전쟁 상황'이라 판단하고 장군으로 독립운동에 임했다. 문화운동과 관련해서는 학교 설립에 특히 관심이 높았다.
"안 의사는 당시 명동에 있던 뮈텔 주교에게 가서 '우리도 근대화된 자주독립 국가가 되려면 지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며 대학설립을 제안했다. 이에 뮈텔 주교는 '지식수준이 높아지면 가톨릭을 믿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거절했다.
이에 안 의사는 '서양놈들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 천주교를 전해준 외국인 신앙인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특히 당시 그에게 프랑스어를 알려주던 이와의 관계를 끊으며 안 의사는 '(우리 것 없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 종속되는 것이다. 문화를 발전시켜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우리나라로 와 우리말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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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의거(1909년 10월 26일)하기 전, 하얼빈에서 쓴 '장부가(丈夫歌)'. 장부가는 10월 23일에 쓴 것으로 안 의사의 유묵 중 유일한 한글이기도 하다. 장부가는 서울 남산 안중근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
김 교수는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위정자가 아닌 무장독립운동세력에서 찾았다. 정신 못 차리고 나라를 내준 위정자 대신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르게 이끌어가고자 했던 이들이 독립운동가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중근은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쳤던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자기 몸, 가족, 집안 그 모든 것에 앞서 나라의 독립과 나라의 주권을 찾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안 의사의 성정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안 의사는 거사를 치르기 위해 7발을 장전했고 7발을 모두 발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6발만 발사했고 나머지 1발은 자결용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안 의사는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모두 3발을 쏘았다. 그리고 3발이 모두 명중해서 즉사했다. 오전 9시 반 거사를 치른 뒤 이동 중이던 10시에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3발은 이토 히로부미 주변에 있던 인물들에게 쏘았다. 사진으로만 본 이토 히로부미를 자신이 잘못 알아 보았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당시 옆에 있던 가와가미 총영사, 모리 비서 등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 1발. 논란이 된 이 1발은 안 의사의 코트 안에서 발견되었다. 체포될 것을 우려해 자결하기 위한 1발을 남겨둔 것이라는 추측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았다. 그는 거사 이후 부대를 꾸려 일본 본토로 진격할 계획을 한 사람이다. 게다가 체포된 뒤 재판장에서 '왜 이토 히로부미를 쏴 죽이고 일본에서 독립하려 하는지' 변론하려 했다. 하얼빈에서의 거사 이후 뤼순 감옥에서의 재판까지 모두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민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가 순국한 장소, 순국한 곳 역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주축이 되어 유해 찾기 작업을 진행했으나 짐작만으로 찾기에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던 것.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은 뒤 독립하면 내 조국에 묻어달라'던 그의 유언은 아직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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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8회 국민강좌에는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해 안중근 의사에 관심이 높은 것을 볼 수 있었다. |
안타까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대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도 재산도 내어놓은 안 의사의 집안이었지만 그의 둘째 아들 '준생'은 그렇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박문사'라는 절을 지었다. 당시 총독부는 외국에 있던 안중근의 차남인 안준생을 초청했다. 안준생은 총독부의 계략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에서 참배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과 악수도 했다. 아버지는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아들은 아비를 죽이고 민족을 몰살한 이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안중근은 안중근이고 아들인 안준생은 안준생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행적을 이유로) 지탄을 받고 있다."
지금 안중근은 없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친손자인 안웅호 씨 역시 올해 1월 30일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증손자인 안도용 씨(Tony, Ahn Jr)만 남아있지만 미국인인 그는 우리말을 하나도 모른다고 한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안 의사는 자신의 일대기인 <안응칠 역사>를 썼고 사람이 천지 만물 중 가장 귀하다는 사상을 담은 <인심결합론>을 펴냈다. 그리고 하늘과 조국과 사람을 사랑하는 삼애(三愛) 정신을 토대로 동양 3국(한 중 일)이 오늘날 유럽연합(EU)과 같은 기구를 만들어 평화를 도모하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와 함께 지낸 헌병 책임자인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 의사의 성정에 매료되어 자신이 죽는 날까지 안 의사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안중근만큼 민족과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가 없다고 본다. 그를 마땅히 존경해야 하고, 그의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이 그를 따라야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의식이 바로 설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안중근 역시 대한민국과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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