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2회 국학원 국민강좌
김병기 교수의 '천자의 나라 고구려'
사단법인 국학원(국학원장 권은미)은 2015년 5월 제142회
국민강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이번 강좌는
김병기 교수을 초청해 천자의 나라 고구려 주제로 강의가 이루어진다.
고구려는 강대국으로서의
체모를 동방일각에 힘있게 과시하면서 1천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새겨 놓았다. 동방강국으로서의 고구려의 면모는 시종일관 <천자국>, <황제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대국으로서의 위용를
높이 떨친 사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가 천자국, 황제국가였다는 것은 우선 고구려의 역대왕들이 황제칭호를 가지고있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건국설화들과 고구려시기 금석문등에서는 고구려의 건국자 동명왕이 천제의아들, 황천의아들, 해와 갈의 아들로 불리우고 있다.
고구려는 최고통치자를
직접 황제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고구려의 21대 왕이었던 고국원왕을 소렬황제라고 한 것이 그 대표적
실례이다. 고구려가 천자국, 황제국가였다는 것은 고구려가
황제의 나라에서만 시행할 수 있는 제도와 질서를 제정, 실시한 사실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왕의 어머니를 태후, 왕위계승자를 태자라고 불렸다. 또한 고구려는 자기의 독자적인 년호도 제정, 사용하였다.
김병기교수는
이번강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북부여의 해모수와 고구려의 주몽에 대한 고대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자. 해모수에 대해서는 『삼국유사』‘북부여조’에 나타나는데 기원전 59년
천제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웠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해모수의 아들이 해부루라는 것이다. 주몽에 대해서는 『삼국사기』‘동명성왕조’에 나타나는데,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고구려조’에서 단군과 해모수는 동일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군은 사람 이름이라기보다는 고조선 임금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여를 세운 해모수는 고조선의 임금이 되니 부여는 고조선의 임금 단군이 세운 것이 된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단군본기에 이르기를, 비서갑 하백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부루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해부루의 부친, 즉 해모수가
단군이라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제왕운기』가 모두 단군과 해모수를 동일인물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북부여를 세운 단군, 즉 해모수는 고조선 왕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북부여조’에 천제가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한다’며 주몽의 건국을 예견하는데, 이는 주몽 역시 고조선 왕실의 후예일 것이다.
이러한 것은 일연이나 이승휴가 창작한 것이 아니라 고대 사서에서 북부여왕 부루와
고구려 시조 주몽이 모두 단군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었음을 뜻한다. 곧 부여 왕실도 단군의 핏줄이고, 고구려 왕실도 단군의 핏줄이란 뜻이다. 왜 이런 기술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두 나라 모두 고조선, 즉 단군조선의 왕통을 계승했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계승의식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나타난다.
만주 집안현에 있는 장천 1호분에는 나무아래 굴속에 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군사화의 내용대로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굴 바깥에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굴 밖으로 뛰쳐나간 호랑이를 기다리는 것은 말탄
무사들의 화살이다. 이는 호랑이족이 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는지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는 각저총에 나타난다. 이 벽화는
근육이 울퉁불퉁한 두 씨름꾼이 맞붙어 싸우는 왼쪽 나무 아래 곰과 호랑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나뭇가지의
수많은 열매와 형상들은 두 부족의 싸움에서 승리한 쪽이 가질 수 있는 전리품을 상징할 것이다. 이 역시
단군사화의 내용을 가리킨다.
고구려 말의 ‘다물’은 고토 회복이라는 뜻이다.
중국에 빼앗긴 고조선의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고구려는 고조선 문화를 계승하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한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던 나라다. 고조선의
유민이 신라를 건국하였으며, 또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3국은 모두 고조선의 후예며
같은 민족적 동질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성격은 물론 강역도 드러난다. 고구려가 705년간
존속하는 동안 중원 대륙에는 서한, 신, 동한, 삼국, 위, 진, 남북조, 수, 당이라는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했다. 고구려는 이 수많은 나라들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우호관계를 맺어가며 나라를
지키고 강역을 넓혀갔다. 이 나라들과 고구려는 만주 서쪽을 두고 다투었기 때문에 이 나라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서쪽 강역이 보인다.
모본왕 2년(49) 장수를 보내 동한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습격했는데 요동태수 채융이 은혜와 신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이때 공격한 지역은 오늘날 북경 일대와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 지역이다.
광개토태왕릉비는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에 있는 높이 6.39m의 거대한 응회암으로 조성된 비석이다. 비문은 당시 유행하던
예서체의 글씨로 고풍스러우면서도 힘이 넘쳐나 강인한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보여준다. 비의 네 면에 새긴
글자 수는 원래 총 1,775자이지만, 탈락되었거나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141자 있어서, 이 글자들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국, 일본, 중국, 북한 사이에 아직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능비는 광개토태왕이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414년 아들 장수왕이 위대한 정복군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이 비는 문헌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고대사의 많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일차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비문 내용은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고구려 시조 추모왕의 신비스런 출생과 건국 이야기, 왕가의 내력, 호태왕의 치적, 비를 세운 목적을 간단히 기록했다. 둘째 부분은 호태왕이 정복사업을 벌인 이유와 과정, 결과를 열거했는데
바로 이 부분을 둘러싸고 각국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복의 결과 거란과 백제를
정벌했고, 신라에 침범한 왜를 격퇴시켜 신라를 구했으며 동부여 등을 멸망시켜 정복한 지역이 모두 64성 1,400촌이었다는 내용이다.
셋째 부분은 왕릉을 관리하는 묘지기에 대한 규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중국인이 규정한 ‘동이’가 아니라 ‘천하의 주인’으로 인식했다. 중국 역대 황제들이 써온 천자라는
말을 시조 주몽부터 ‘천제의 아들’이라고 사용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고구려인들의 이런 천하관은
광개토태왕비와 모두루묘지 뿐만 아니라 중원고구려비에도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수천(守天)’이란 용어로 나타나 있다.
고구려인들은 만주와 한반도의 주변국을 자신의 천하관 아래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능비에 ‘백제와 신라는 예부터 속민으로 고구려에 조공해왔다’, ‘동부여는 추모왕의 신민이었다’라고 기록했듯이, 고구려는 자신의
인접 나라들을 조공국으로 간주한 것이다.
중원고구려비에
신라를 ‘동이(東夷)’ 라고 기록하고 신라왕을 ‘매금(寐錦)’으로 부른 것은 고구려의 천하관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고구려의 천하는 고구려왕의 지배력이 실질적으로 미치고
있거나 미쳐야 한다고 여기는 범위의 지역이다. 중국의 천하는 하늘 아래의 모든 세상을 뜻하는데, 고구려인들은 이 천하가 몇 개의 지역권으로 구성되었다고 인식했다. 고구려는
몇 개로 나뉜 지역권 중 하나의 중심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요컨대 고구려는 중국의 남북조와 몽골 지역의 국가와는 병존책을 추구하고, 자신의 세계라고 여긴 동북아시아에서는 패군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능비에
나타난 ‘호태왕’이란 표현은 고구려의 임금을 백제나 신라 등 인접국의 왕보다 위에 있다는 의도적인 표현이다. ‘태왕’은
보통 왕들보다 등급이 높은 표현으로 중국 임금들이 다른 나라의 왕들을 제후라고 표현하며 자신들은 황제라고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다. 같은 황제라는 표현 대신 태왕이라고 자칭한 것은 유목민족이 그 최고 권력자를 ‘선우’라 부르면서 ‘왕중 왕’을
표현한 것과 같은 의미며 고구려의 독자적인 자부심이었다.
신라처럼 고구려에
복속하지 않고 저항하는 백제를 ‘백잔(白殘)’이라고 부른
것도 중국이 주위 나라들을 동이나 남만 등으로 부른 것과 마차가지 표현이다. 고구려인들은 이런 천하관에
따라 동북아 지역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공관계로 규정하고, 하늘의 후예인 고구려왕은 이런 국제질서를
담당하는 주체로 자임했다.
< 제142회 국학원 국민강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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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천자의 나라 고구려
○
일시 : 2015년 5월
12일(화) 오후 7시~ 9시
○ 장소 :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경복궁 후문 동십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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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김병기 교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 찾아오시는 길 : 광화문삼청동 입구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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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비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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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 코리안스피릿,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한민족정신지도자연합회, 국학운동시민연합
▷
문의전화 : 041-620-6947, 041-620-6700, 010-9799-702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