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원 보도자료] 국학원, 7월 13일 제 85회 국민강좌 개최
사단법인 국학원(www.kookhakwon.org) 오는 7월 13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윤열수(64) 가회민화박물관장을 초빙하여 [민화와 부적을 통해본 우리의 전통사상]이라는 주제로 제 85회 국민강좌를 개최한다. (문의: 041-620-6700, 010-7299-6043)
윤열수 관장은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에밀레미술관, trkcjsqkranf관 등에서 재직하면서 미술분야에 전문가적인 안목을 키워 왔습니다. 또한 일찍이 우리나라의 민화와 부적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수집하여 약 1500여점의 민화와 부적 등을 별도로 전시하는 공간을 꾸며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회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윤열수관장은, 단순히 민화와 부적을 수집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에 담긴 우리 한민족 조상의 가치관과 전통철학을 연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제 85회 국민강좌 일정>
○ 일시 : 2010년 7월 13일 (화) 저녁 7시 ~ 9시
○ 장소 :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전화: 070 -7126 -4720)
○ 강사 : 윤열수(가회민화박물관장)
○ 주제 : [한국민화와 부적을 통해 본 우리의 전통사상]
○ 주최 : (사)국학원(www.kookhakwon.org)
○ 문의 : 국학원 학술담당(010-7299-6043)
○ 참가비: 무료
<강의내용 요약>
사람들은 기복신앙을 통해 오래 살고자 하는 장생(長生)의 집착과 복(福)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살아 왔다. 기복신앙은 한편으로는 벽사신앙과 연결되어 기복을 방해하는 잡귀나 악귀들을 쫓는 보호막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모든 사물의 근본에는 음양(陰陽)이 있으며 삶의 본질에는 선악(善惡)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벽사용 민화는 기복을 해치는 잡귀나 악귀를 막기 위해 생겨난 그림으로 길상화(吉祥畵)에 비해 종류나 수요가 국한되어 그 수 또한 적은 편이지만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그림이었다.
벽사그림
벽사(?邪)란 사악(邪惡)한 기운을 막고 잡귀(雜鬼)나 마귀(魔鬼) 등을 쫓는 것으로 현세에 온갖 복(福)을 누리고자하는 복락(福樂)주의와 함께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의식(意識)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왔다. 또한 불교나 도교 등과도 융합하여 독특한 민간 신앙을 형성하였으며 이런 사상적 배경 속에서 조상들은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몸에 지니거나 부적(符籍)을 써서 집안에 붙여 놓기도 하고, 벽사용 그림을 집안에 걸어 놓아 액을 막고 복을 누리고자 하였던 것이다.
민화 중에는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상당수 있는데, 세화(歲畵)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세화(歲畵)는 조선시대에 새해를 맞이하여 궁중은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저택과 일반 서민의 집에 귀신을 쫓거나[축귀(逐鬼)] 복을 구하는[구복(求福)] 의미의 대표적인 벽사 그림으로 대문에 걸어 사용하였다.
벽사 상징의 대표적인 민화로 호랑이와 용을 들 수 있으며, 이 외에도 해태도(??圖) ? 신구도(神狗圖) ? 사신도(四神圖) ? 사령도(四靈圖) ? 천계도(天鷄圖) ? 치우도(蚩尤圖) ? 처용도(處容圖) ? 종규도(鍾?圖) 등이 대표적인 벽사용 민화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 개 ? 닭 ? 호랑이를 그려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해태는 화재를 막기 위해 부엌문, 개는 도둑을 지키기 위해 광문, 닭은 어둠을 밝히고 잡귀를 쫓기 위해 중문, 호랑이는 대문에서 각각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벽사용 그림이다. 때로는 네 가지 동물을 그려서 붙이기도 하고 목판으로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벽사용 그림들이 대중적인 민속신앙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벽사그림의 종류
① 닭 그림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초복(?邪招福)의 뜻을 담아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던 세화의 일종으로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사용하였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길조로 대접을 받아왔으며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광명을 두려워하는 잡귀가 모두 도망친다는 뜻에서 벽사의 뜻이 담겨져 있는 가금(家禽)으로서도 소중히 여겼다. 또한,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에 있어서 벼슬과 통하므로 벼슬을 얻는다는 뜻이 있고 암탉은 매일 알을 낳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닭 그림 가운데는 맨드라미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닭과 맨드라미가 서로 어울려 ‘관상가관(冠上加冠)’ 이라는 길상적 문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관상가관이란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최고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이밖에 수탉이 하늘을 보고 크게 우는 모습과 모란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을 뜻하기도 한다.
② 호랑이 그림
호랑이가 미술의 소재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였다. 경남 울주군(蔚州郡)의 반구대(盤龜臺) 암각화(岩刻畵)에 보이는 호랑이는 현재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이다. 이처럼 호랑이가 선사시대부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은 단순히 수렵의 대상이었다기 보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거나 신앙의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호랑이는 원래 병귀(病鬼)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말라리아에는 호랑이 고기를 삶아 먹거나 호랑이 그림을 환자의 등에 붙였으며 독감에는 “범 왔다”라는 소리를 3번 외쳐 도망가게 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에서 벽사의 수호신으로 호랑이를 그려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붙였다. 호랑이 그림이 가진 의미를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는데, 호랑이는 영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가져오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를 막아주고 병난(兵難), 질병, 기근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벽사의 뜻으로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 중에 대나무 숲을 배경(竹林出虎)으로 그려지는 것이 있다. 이 그림 속의 호랑이는 대개 포효하는 모습이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악귀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여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배경이 되는 대나무도 벽사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나무가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귀신이 놀라 달아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처럼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호랑이 그림을 ‘호랑이는 죽을 때가 되어서만이 대나무 숲을 찾는다’는 통설이 아닌, 벽사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③ 신구도(神狗圖)
도둑을 막는 그림으로 개를 그린 그림을 신구도라고 한다. 신구도에서 개는 용맹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 도둑을 지키는 축도(逐盜)의 부적 같은 일종의 벽사 그림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네 눈?네 귀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는 예가 대부분이다.
④ 용그림(龍圖)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호랑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신앙화된 영물로 하늘과 바다를 관장하며 인간을 수호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 대표적인 벽사의 동물이다. 특히 용호오복(龍虎五福)이라 하여 용호도(龍虎圖)를 대문에 붙이면 집안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용호도를 문배그림이라 하였다.
특히 용은 왕권의 핵심인 임금을 상징하여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앉는 의자를 용상(龍床), 의복을 용포(龍袍)라 하였다. 절대권자인 임금을 용으로 비유하게 된 사연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바다의 풍랑과 비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창용교자(蒼龍敎子)’라 하여 부모들은 자식을 잘 교육시켜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기를 기원하였고, 용이 승천하는 곳으로 알려진 등용문(登龍門)은 인간들의 출세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④-1 청룡도(靑龍圖)
용은 오방(五方), 오색(五色)으로 동의 청룡, 남의 적룡, 서의 백룡, 북의 흑룡과 중앙에 황룡을 나타내고 있어 모두 다섯 용, 즉 오룡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청룡이 가장 많이 그려지는데 구름 속에서 얼굴과 반신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S’자형의 전신이나 한 쌍의 ‘S’자형 쌍룡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청룡은 기우제의 상징이므로 사계절 가운데 봄을 관장하여 비를 내려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의 선두 깃발이기도 하였다. 또한 무속이나 설화 등에서 용왕의 상징으로 청룡을 자주 그렸으며 무관들의 칼이나 도자기와 같은 공예품 등에서도 청룡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인간에게 복록과 같은 상징을 가진 친숙한 그림으로 변하였다.
④-2 황룡도(黃龍圖)
무한한 능력을 가진 용은 천후(天候)를 다스리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 문화권에서 군왕으로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용은 권위와 조화의 초능력을 가진 신령스런 동물로 임금을 상징하였다. 특히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 가운데 중앙을 의미하는 황룡에게는 임금과 같은 상징성이 부여되었다. 불교에서도 수많은 수호신으로 다양한 용이 등장하는데 석가모니에 상응하는 용으로는 반드시 황룡을 그리고 있다. 또 용의 발톱의 수가 중국은 다섯 개인 오조룡(五爪龍), 조선에는 네 개인 사조룡(四爪龍), 일본은 세 개인 삼조룡(三爪龍)으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종교화나 기우제, 민화 등에 나타나는 황룡은 오조(五爪)로 그려 용 가운데 절대적인 으뜸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벽사용 민화류에는 종규(鐘?), 치우, 처용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종규는 중국의 역귀(疫鬼)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현종이 꿈에 본 형상을 오도자(吳道子)를 시켜 그렸다고 한다. 검붉은 얼굴에 검은 모자, 검은 수염이 있고 검은 관복에 군화를 신었다. 왕방울만한 눈이 툭 튀어 나와 있는데 출입문에 붙여 악귀를 방비하고 눈이 아픈 어린이는 눈을 마주치면 눈병이 낫는다는 풍습도 있다.
부적(符籍)
흔히 인간의 소원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노력만으로 부족할 때 또는 보다 빨리 소원을 이루고자 할 때 ‘부적(符籍)’의 힘을 빌리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믿음, 다른 한편에서는 미신(迷信)으로 부르기도 하는 부적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 미치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에 과학적인 증명이 가능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지금, 사람들은 계속 부적을 찾고 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해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적이란 무엇인가
부적은 종이에 글씨 · 그림 · 기호 등을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 액운(厄運)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주술적 도구이다.
부적의 기원을 살펴보면, 원시시대 바위나 동굴 등에 해, 달, 짐승, 새, 사람 등의 그림을 새긴 암벽화(岩壁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통일신라 처용의 얼굴을 그린 것을 대문에 붙여 역신(疫神)을 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부적을 집안에 붙이거나 몸에 지녀 백운(百運)을 수호하려는 인간의 믿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부적에는 종이부적 뿐만 아니라 뼈, 기석(奇石), 나뭇가지 등의 물건도 포함된다. 이러한 종이 또는 입체부적을 이용하는 주술적 방법은 인간사의 복잡다난한 길흉(吉凶)을 관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부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문을 더한다. 부적은 단순히 그리거나 찍는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길일을 정하여 목욕재계한 후 동쪽을 향해 정수(淨水)를 올리고 분향한다. 그리고 이[齒]를 딱딱딱 3번 마주치고 청정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워야 효험이 생긴다고 믿었다.
민간신앙에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부적은 평범하면서도 주술적 신비가 담겨져 있다. 인간의 역사와 공존해 온 부적은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한데, 사람의 키보다 더 큰 탑다라니부적에서부터 작게는 2~3㎝ 정도의 호신부적, 선추부적(扇錘符:부채에 매다는 부적), 호패부적(號牌符) 등이 있다.
또한 사용목적과 기능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주력의 힘을 빌어 좋은 것을 더욱 일으키는 소원성취 부적이 있다. 다른 하나는 사(邪), 귀(鬼)를 물리치거나 방어하는 벽사(?邪) 부적이 있다.
① 소원성취 부적(所願成就符)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가장 큰 염원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차공덕(以此功德) 왕생극락(往生極樂)’, 즉 살아서 공덕을 쌓아 사후 극락세계를 기원하였고, 수복강령(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오래살고 자식을 많이 낳아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부적의 종류에는 소원성취부(所願成就符), 가택안녕태평부(家宅安寧太平符), 재수대길부(財數大吉符), 만사대길부(萬事大吉符), 관직부(官職符), 합격부(合格符), 정토왕생부(淨土往生符), 옥추영부(玉樞靈符), 입춘부(立春符) 등이 있다. 주력의 힘을 빌어 평탄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려는 믿음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민간신앙(民間信仰) 깊숙이 자리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매년 봄이 되면 ‘입춘대길’을 종이에 써 넣어 집 대문에 붙이는 풍습은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월 입춘 때 궁중에서는 춘첩자(春帖子)를 만들어 각 대전과 궁에 붙여 사용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대체로 남성의 경우에는 학문을 통해 과거에 급제하여 고귀한 신분이 되는데 중점을 두었고, 여성은 부부가 화합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루고 아들을 낳아 잘 기르기를 염원하였다. 그 예로 조개부적이 있는데, 조개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여 풍요와 다산(多産)을 의미한다. 현세에서는 물질적 풍요를, 사후세계에서는 극락왕생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매년 정초에 ‘壽’, ‘福’ 글자를 찍어 나누어 가져 대문이나 기둥에 거꾸로 써붙였다거나, 장님을 보름날 전부터 불러다가 <안택경(安宅經)>을 읽히며 밤을 지새우면서 액을 막고 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유형(有形)의 부적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 자체가 부적이라 할 수 있을만큼 모든 일을 관통하는 소원성취 부적은 인간의 원초적인 소망이 담겨져 있다.
② 벽사 부적(?邪符)
액막이 부적이라고도 불리는 벽사 부적은 부적 중에서도 종류가 가장 많고,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민간신앙에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움, 질병이나 재화(災禍)를 막기 위해 부적을 만들어 이를 예방 · 퇴치하고자 하였다. 또한 살(煞)이 끼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큰 탈이 날 때 귀신때문이라고 믿었는데, 이 모든 것을 사전에 예방할 때 사용하였다.
벽사 부적의 종류로는 귀신불침부(鬼神不侵符), 질병퇴치부(疾病退治符), 야수불침부(野獸不侵符), 호신부(護身符), 악몽퇴치부(惡夢退治符), 도적불입부(盜賊不入符), 전쟁피하는 부적(避兵符) 등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중에서 질병과 귀신퇴치에 관한 부적이 가장 많다. 질병에는 눈병(眼疾), 학질(?疾)과 같은 돌림병, 즉 전염병을 비롯하여 난산부(難産符)와 같이 출산할 때 사용하는 부적까지 다양한 치료법과 부적이 있다.
③ 삼재부적(三災符)
벽사 부적 중에서 회화성, 예술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삼재부(三災符)이다. 삼재부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세가지 재난인 도병재(刀兵災: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 · 질역재(疾疫災) · 기근재(饑饉災) 또는 화재(火災) · 수재(水災) · 풍재(風災)를 막아주는 부적이다.
사람은 9년마다 주기적으로 삼재를 맞이하게 되는데, 삼재운이 든 첫해를 ‘들삼재’, 둘째 해를 ‘누울삼재’, 셋째 해를 ‘날삼재’라 부른다. 이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들삼재’이고 그 다음이 ‘누울삼재’, ‘날삼재’의 순서로 액운이 따른다고 한다.
우리 생활 속에서 삼재팔난(三災八難)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삼재는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이고, 여덟 가지 재난은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난을 말한다. 사람들은 삼재 액운이 든 해에 글씨부적 뿐만 아니라 머리가 셋 달린 매를 경면주사로 그리거나 찍어서 출입하는 방문 위에 붙였다.
매의 사나운 주둥이와 날카로운 발톱이 유난히 강조되고, 큰 날개와 힘 있는 꼬리가 위협적으로 보여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액운을 높은 곳에서 찾아내 세 개의 부리로 삼재를 쪼아 없애준다고 믿었던 것이 삼두일족응삼재부(三頭一足鷹三災符)이다.
부적의 현대적 의미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모든 것을 부적에 의존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를 낳을 때, 집을 지을 때, 심지어 나무하러 갈 때도 부적을 사용했다. 부적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염원이 담겨져 있다.
서양문물의 도입과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부적이 미신으로 치부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때보다도 정신적 ? 심리적으로 각박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부적을 통해 모든 불안을 해소하고 복을 빌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며, 그 속에 담겨 있는 부적의 상징성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