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화백의 남도 삼백리 길따라
온전한 땅 전라도, 평등한 산 무등산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고향(光州故鄕)을 보려하고 제주어선(濟州漁船)을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 갈 제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 고산(高山)의 아침안개 영암(靈岩)에 둘러있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 예악(聖君 禮樂)을 장흥(長興)하니 삼태육경(三台六卿)은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은 진안(鎭安)이라. 고창성(高敞城)에 높이 앉아 나주풍경(羅州風景) 바라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峰)은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이하 생략)"
언제 들어도 정답고 흥겨운 호남가의 머리 부분이다. 전라도(全羅道)는 전주와 나주가 합쳐져 하늘(天)과 사람(人)이 온전(全)하게 함께 하는 삼라만상이 깃든 땅(羅)이다. 백제 의자왕 재위 20년(서기 660년) 신라에 귀속되고 685년 신라 신문왕 5년에 9주 5소경 제가 정비됨에 따라 완산주(完山州:全州)와 무진주(武珍州:光州)가 되었다. 다시 757년(경덕왕) 완산주는 전주로, 무진주는 무주(武州)로 개칭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년), 전주와 인근지역을 강남도(江南道), 광주ㆍ나주와 인근지역을 해양도(海陽道)로 나누었다. 1018년(현종 9년)에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하여 전라주도(全羅州道)로 개칭했다. 1896년(고종 32년)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분리되었고 조선시대부터 호남이라고 부르니 김제 벽골제의 남쪽지방이다. 북쪽은 금강을 경계로 호서지방과, 동쪽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영남지방과, 서쪽은 서해와 남쪽은 남해에 접해 있다. 호남지방은 한국 제일의 곡창지대로서 만경강ㆍ동진강ㆍ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김제평야ㆍ만경평야ㆍ 나주평야 등이 펼쳐져 있다.
'빛고을'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광주광역시는 교육ㆍ문화와 정치ㆍ경제활동의 중심기능을 수행하는 호남 제일의 도시이다. 2000년대 이후 첨단산업 및 기술ㆍ연구도시로 집중 육성되니 인구 140만 명이 넘는 교육도시ㆍ예술도시로 서해안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서남 권 중핵도시로 기반을 다지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 광주국제영화제, 세계 민속 예술 축제 등 세계적인 문화 예술 축제가 개최되는 빛고을 광주의 중심에 무등산이 있다.
나주평야를 내려다보는 해발 1187m의 무등산은 모든 광주인에게는 한갓 산이 아니라 태반이며 어머니 산이며 자신의 정체성이다. 무등산 일대에서는 김덕령 장군을 비롯한 많은 선열ㆍ지사(志士)ㆍ문인ㆍ예술가ㆍ정치인 등이 배출되었으며, 그 정기는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킨 원동력이 된다. 무등의 '무유등등(無有等等)' 은 부처님은 견줄 이가 없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뜻에서 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무등산 중턱에는 이제는 흔적이 사라졌지만 천제(天祭)를 올리던 천대, 지대, 인대가 있었기에 모두 하나로 귀천의 등급이 없는 하늘마음에 더 가까운 것이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그 누구에게 등급이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빛고을 광주, 호남의 인심은 눌러도 참고, 비틀어도 참지만, 그것을 넘어 인간과 생명 존엄의 등급을 무시할 때는 활화산이 되어 폭발한다. 하나 되어 분연히 떨쳐 일어나 광망을 이루며 찬연한 빛으로 결국 존재의 밝음을 되찾는 고장이다. 호남은 다양한 수산물과 함께 산과 들은 높고 넓어 한반도 제일의 곡창지대이다. 물산은 풍부하고, 인심은 후덕하고, 예술과 학문이 밝고 드높아 나라에 대한 충성이 뜨겁다.
1597년 선조가 조선수군을 없애려고 하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간절하게 장계를 올린다. "국가군저(國家軍儲) 개고호남(皆고湖南)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야(是無國家也)" (나라의 군비는 다 호남을 의존하고 있는데, 만일 호남이 없어진다면 곧 나라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호남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명운을 가름하고 있다.
(사)국학원 원장 (대행)ㆍ한민족역사문화공원 원장
※장영주 화백의 '남도삼백리 길따라'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장영주 화백은 목우회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고 중국 정부 초청 세계 100대 화가전에 출품한 화가이며 현재 (사)국학원 원장(대행), 한민족 역사문화 공원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