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천지, 천화 나비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라는 말은 '이충무공 전서' 부록 '서한문(書翰文)'편에 있다. 이 편지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7월 16일자로,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 답장 내용 중의 일부이다. 김천일 의병장과 호남의 많은 장졸들이 6월 29일 제2차 진주성 혈전에서 모두 순절함으로써 호남을 지켜낸 지 약 보름이 지난 시기이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닥침에 실로 피를 토하듯이 언급하심이다. 결국 전라도를 손에 넣지 못함으로써 쉽게 정복할 줄 알았던 조선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분기탱천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정유재란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전라도인을 몰살시키고, 나머지 도는 장군들이 알아서 처리 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니 정유재란 이후 전라인들의 운명은 어찌 했겠는가? 귀 떨어지고 코 베어진다는 '이비이비(耳鼻耳鼻, 에비에비)'라는 말은 그때의 비극에서 생긴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호남은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났다. 고경명ㆍ김덕령ㆍ최경회ㆍ김천일ㆍ유팽로 등 의병장이 보여준 충절의 정신은 동학농민혁명과 한말의병운동, 일제강점기의 농민운동과 학생독립운동, 4ㆍ19혁명과 5ㆍ18광주민중항쟁 등으로 이어지며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소임을 다했다.
고종황제과 명치천황은 동갑으로, 한 사람은 자신의 국가를 세계의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고 한 사람은 자신과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망국의 설움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우리 국가의 왜소화는 일정한 공식이 있어왔다. 고려 때 몽골 침입의 참혹함을 잊고 편안하게 명(明)나라에 의지하려고만 했던 조선에 임진왜란이 덮쳤고, 조선이 배제된 채 명과 일본의 각종 휴전 협상이 이루어진다. 그로부터 40여년 후, 명(明)나라의 모문룡과 후금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모르던 공허한 조선에게 병자호란이 닥친다. 명과 후금사이에서 조선은 역시 배제된다. 대한제국 말에도 당사자가 배제된 채 체결된 청ㆍ 일의 간도 협약에 의하여 만주는 아직도 남의 땅이 되어 있다. 6ㆍ25 이후 대한민국이 배제된 채 미국과 북한의 정전 협정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되풀이 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의 원인을 치밀하게 파악하여 다시는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여 당하지 말아야 한다.
전라도는 조선시대 자신의 정치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실각하여 유배라도 당하면,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학문과 사상, 문화의 중흥을 이뤄 타 지역 사람들로부터 '예향(藝鄕)'이라는 존칭을 얻었다. 너른 들과 깊은 산, 넉넉한 바다가 있으니 풍요로운 먹을거리와 조리 솜씨에 대한 정성과 접대 또한 지극하다.
이토록 중요한 호남을 주인공으로 한 호남가의 첫 대목을 장식하는 곳이 '함평천지'이니 약무함평(若無咸平) 시무천지(是無天地)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전남 함평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一江 金澈ㆍ1886~1934) 선생은 1917년 상해로 망명하면서 임시정부 청사 마련 자금을 댔고 임정의 재무장 등으로 활동했다. 일강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다. 이도범ㆍ 안후덕 등 함평 출신 독립 운동가들도 함께 기리게 되었다.
함평은 지평선까지 드넓은 땅이 깔려 늘 풍년을 기약하던 넉넉한 곳이었으나 산업화의 거센 파랑이 몰아치면서 여느 농촌처럼 메말라 갔다.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은 어쩌다 명절 때나 들르고, 늙은 부모만이 마른 땅을 지키며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농촌으로 추락해 갔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나비가 내려앉아 생명의 매개가 시작되고 전국 최고의 축제로 자리잡은 것이다. 함평은 효(孝)와 충(忠)의 고장이 되었고 언제나 이름과 함께 불리우는 천지(天地)에 의하여 도(道)의 의미도 함께 의미하게 된다. 결국, 한민족의 문화 핵심코드인 '효충도'를 아울러 인간 완성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루게 되었다. 나비는 애벌레에서 고치가 되고 이윽고 날개를 달고 자유로워지니 그 일생을 일컬어 인간이 신선이 되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화등선은 사람이 온전히 하늘로 돌아가는 천화를 뜻하니 민족 전래의 인간완성 수련법인 선도(仙道)의 최고의 경지이다.
천화는 선도 고유의 인간완성에 대한 개념으로, 천화비결과 천화사상을 통해 그 맥이 전해져 내려온다. 천화는, 인간의 인격과 정서의 완성이 이루어진 다음, 완성된 영혼이 공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이른다. 혼이 완성되어 우주의 본성과 하나 되는 단계이며, 원래의 우주 생명의 근원 자리로 돌아간 상태이다.
결국 함평은 나비와 국향축제로서 한민족의 정신과 존재의 미래완성을 지향하는 친환경의 사계절 축제로 천지간에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는 함평을 사랑하는 주민들과 공직자들, 리더의 통찰력에 의한 합심과 피땀 흘린 창조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농민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한 함평은 "이 나라의 평안을 다하라"는 뜻으로 그 정신에 걸 맞는 이름과 지역의 독특한 문화 사업을 시작하고 마침내 성공 하였다. 어느 정도 하다마는 보여주기 사업이 아닌 대대로 더욱 갈고 닦아 세계로 빛낼 일이다.
글 : 사단법인 국학원 원장(대), 한민족 정신지도자 연합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