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부부에게
어느 산중에 늠름한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가지는 하늘을 향하여 힘차게 뻗어있고 이파리는 싱싱하여 단연 돋보이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힘겹게 서 있는 소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힘차게 뻗지도 못하고 햇빛도 잘 받지 못하고, 부분 부분은 마르고 가지가 성장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넝쿨이 휘감아 무거워 보이고 더욱이 그 넝쿨이 자기의 꽃을 가득 피워 내어 소나무가 다른 나무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잘 생기고 늠름한 소나무가 비웃으며 힘겹게 서 있는 소나무를 늘 놀려댑니다. “너는 참 안됐다. 그게 뭐냐! 온 몸을 감겨 햇빛도 못받고 마치 다른 나무 같잖아, 아휴~ 불쌍해!!! 나를 봐라, 나를. 적어도 소나무라면 나처럼은 생겨야지.” 불쌍한 옆의 소나무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희미하게 웃기만 합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심한 폭풍이 대지를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해가 뜨고 폭풍이 멈추자 늠름하고 잘생긴 소나무는 그만 허리부터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못난 소나무는 멀쩡했습니다.
쓸데없이 붙어 있다고 놀림 받던 넝쿨이 험한 폭풍 속에서 밤새워 한 몸이 된 소나무를 지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원이 아버지에게 ---------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 시는 건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병술 (註,1586)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 올림
임진왜란 발발 6년 전, 안동인 고성 이씨 이응태가 31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과수댁이 된 ‘원이엄마’는 이승에서의 남편과 하직인사와 함께 애절한 심정으로 한글로 된 편지를 함께 무덤에 넣어둔다.
그 옆에는 자신의 머리털을 뽑아 한 올 한 올 삼은 미투리와 함께 넣어 두었다. 병이 빨리 쾌차하여 사냥을 좋아하던 기골이 장대한 남편이 자유롭게 나다니라는 소망이다.
편지와 신발은 400년이 지났으나 썩지 않고 그대로 출토 되어 후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세계적인 잡지인 네셔널 지오그래픽이 이 편지를 실어 지구인들의 가슴에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그렇다. 지금 가정을 유지하기에 힘드신 분들은 원이 엄마의 편지를 읽고 다시 한 번 서로가 이로운 마음을 내어 홍익 가정을 이루기 바란다.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한번 쯤 다리가 없는 사람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응태의 무덤이 있는 안동시 정상동에 원이 엄마가 좋아하던 능소화가 휘휘 감아 피어있는 한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안동인의 영원한 부부 사랑을 들려주는 듯하다.
글.그림 : 사단법인 국학원 원장(대), 한민족 정신지도자 연합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