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으로 엮은 투명한 우주, 경복궁 경회루
김개천 교수의 건축물로 본 한국미_5
언제보아도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채로 연못 한가운데서 “하늘과 땅을 끌어안고 바람과 구름을 엮어” 환영으로 존재하는 듯한 경회루는 모든 것을 비워서 오히려 육중하나 고요하다.
1412년 태종 때 창건되어 성종 때 개축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25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회루는 사신을 접대하고 군신 간에 연회와 경론을 베풀고 기우제를 지내는 등 궁궐내의 중요한 국가적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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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중간에 떠있는 천상의 건축, 경회루 |
본래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지어진 누각이나 왕이 하늘을 따르고 대신하여 지극히 세우기 위한 것으로 하늘의 법칙과 순수에 입각해서 응시된 하늘을 만들었다고 조성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응시된 하늘의 건축은 어디에도 소박하고 여유로운 선은 없이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의 평범한 건축이나 물속에 비친 하늘과 건축의 그림자를 함께 가지므로 실제와 가상으로 우주와 하나가 된 건축이 되었다. 기둥과 지붕만을 가진 비어있는 구조로 맑은 물에 비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천상의 건축처럼 보인다. 위와 아래로 펼쳐진 하늘의 중간에서 거대한 장엄함과 텅 비어 있음의 화려한 대비를 성공적으로 성취하여 심연하고 아득하게 눈앞에 마주치게 한다. 저 건너편에 존재하는 것 같아 모든 애착으로부터 무표현적이며 초연한 듯한 자재로움과 무한한 개방의 형식으로 천지자연을 응시하고 조응한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와 달과 별의 삼광(三光)을 뜻하는 3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곳에는 48개의 거대한 돌기둥만 서있는 빈 누대만 있고 인간이 만든 물질적 환경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천장의 붉고 검은 단층의 꽃들로 빈 우주의 중심에 꽃비를 내리는 듯 화려하나 텅 빈 선계(仙界)가 되게 한다. 2층으로 오르는 동서쪽 계단에는 일출(日出)과 일입(日入)이라 적혀있어 태양이 드나드는 곳임을 상징하고 있다. 아침과 오후의 낮게 드리워진 태양빛이 거대한 빈 마루에 비칠 때면 실체와 상징이 합하여 전체가 빛만으로 펼쳐진 공간이 된다. 건축적 장치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문들만 있을 뿐 홀연히 존재하다가 사라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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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의 빈 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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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비어 있는 2층의 누마루 |
2층의 누마루는 자신이 소유한 것은 하나도 없으나 주변의 모든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여 건축과 주변이 혼재하고 자신을 넘어선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건축이다. 사방으로 비어있어 마치 끝없는 듯한 회랑은 허공의 건축이 만들어내는 투명한 우주 같다. 다중적으로 중첩된 경관은 빛과 바람과 구름과 하늘을 합쳐 일상의 경치를 신비롭게 만든다. 세 겹의 사각형으로 중첩되어 만들어진 평면의 모습과 48개 기둥의 숫자는 우주를 상징하는 체계이나 비워서 만상을 담아낸 공간으로서 우주의 이치를 추상으로 일깨우는 듯하다. 우주는 순수와 속의 구분도 없고 주관적인 심미 판단도 불가능한 세계이다. 의지를 갖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스스로의 생각마저 없는 상태가 순수가 아니다. 사유로서는 다 이룰 수 없는 미완의 여지까지 포용한 것이 순수의 세계이다. 주역에서 하늘은 아름다운 이(利)로서 천하를 이롭게 하나 말이 없어 그가 이롭게 한 바를 자랑하지 않는다 하였다.
경회루는 충화의 기운으로 우주와 혼연일체의 조화를 이루어 다시 우주를 품는다. 화려함을 지나 가슴 벅찬 환희가 되고, 말없이 묵묵하여 밝음과 통하는 건축이 된다. 인간이 조영했으나 스스로를 말하지 않으며 알 수 없는 세계를 전한다.
자신의 존재감은 완연하나 마치 흩어지고 증발하는 건축 같아 몽환의 시공간 안에서 유무가 함께 발현되어 무한한 시간 안에 있는 형식처럼 느껴지고 알 수 없는 신성한 힘을 가진 공간이 된다. 이는 환상을 현실적 맥락으로서 녹아내는 힘이며 자신을 갖지 않는 최소한의 형식으로 시공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축적 본질을 포착한 것이다.
김개천 국민대 교수
2009년 Red Dot Design Award
2005년 문화관광부 올해의 우수도서상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백담사 만해마을)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무량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