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칼럼

국학을 쉽고 재미있게 배우실 수 있습니다.

Home > 국학배움터 > 국학칼럼

광풍제월의 맑은 선계 : 담양 소쇄원 2012.11.21  조회: 2195

작성자 : 관리자

광풍제월의 맑은 선계 : 담양 소쇄원

김개천 교수의 건축물로 본 한국미


  

  바람소리가 한적한 대나무 길을 지나 햇빛을 사랑한다는 이름을 가진 애양단의 낮은 담장이 둘러진 소쇄원의 내원으로 들어가면 모든 세속의 속태가 걷어진다. 마치 한적한 처사가 된 듯 청풍과 함께하는 충족감에 유유자적해진다. 손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듯한 이곳은 철저히 인위적 구조로 인한 것임에도 아무런 의심조차 사지 않은 채, 방문객들을 건축인지 정원인지 모를 자연 본래의 아름다움으로 취하게 한다.


 맑고 깨끗한 세상을 염원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선비’라는 시대의 예술가를 만나 원림 공간으로 실현된 이곳은 16세기 성리학적 배경의 지식인들의 사회 정신적 토대이면서 또한 어느 때보다 당쟁의 시류가 극심했기에 더욱 많은 회의와 예술적 고민이 팽배했던 양극단의 시기에 지은 별서정원이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사사된 후 그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자신이 거처할 이상향을 만들면서 세속의 모든 명리를 향한 마음을 비워내고 고향으로 내려와 그의 낙원 소쇄원을 짓는다. 원림의 정자는 자연을 벗하며 즐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와 문학을 논하며 즐기는 것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삼아 수양의 도구로 삼았던 선비들에게 예술은 학문과 정쟁의 시류 속에서 언제든 삶을 미학적으로 되묻게 함으로 현실의 좌절을 미적 세계로 연결하는 실질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은 탈절범속하여 한가롭고 격식에서 자유로우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계곡 속 물 위에 자리한 글방 광풍각에 번거롭던 몸을 바르게 앉으면, ‘몸과 마음의 기운이 맑고 깨끗해지기를 바란다’는 뜻의 소쇄원의 이름과 같은 그 ‘소쇄’함이 주는 깨끗하고 시원한 쾌(快)의 맛이 두드러진다. 광풍각의 이름은 북송의 시인 황정견이 “춘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몸시 높고, 가슴 속이 담백 속직하여 광풍제월과 같다”고 말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광풍제월은 ‘깨끗하여 가금 속이 맑고 고결한 것’과 ‘그런 사람이나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한다. 이곳은 주로 사람들을 만나 시를 짓고 노래와 풍류로 때론 강학으로 소일하던 곳으로 내부에 있으면 마치 선비의 의연한 마음으로 들어가 앉은 듯 단정하여 모두가 맑은 소리속에 고요히 침잠한다. 바람은 공간사이로 흐르며 유현한 멋을 풍기고 청명함은 물소리와 함께 차올라 모든 공간을 적신다.

 

  맑고 고결한 소쇄함을 통해 세간의 근심에서 청정해지고자 한 선비들이 추구한 맑음의 경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비 개인 뒤의 깨끗하고 시원한 서광의 하늘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구름 물러간 뒤의 밝은 달빛과 같은 것으로 패옥 부딪치는 소리를 낸다. 한국의 자연과 꽃의 색깔이 유난히 투명하기 때문일까, 그들은 투명하고 맑은 기운을 자연의 경지처럼 표현하려 하였다.


중국의 유학자 동중서는 "하늘과 땅사이는 텅 빈 듯 하지만 가득 차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담담함을 말하는 것이자 원래 있는 맑음의 경지를 말한다. 마치 악기가 공명하며 감응하는 것과 같이 무형의 물질과 공간들은 서로 이질적이거나 상응되는 것을 빈 것으로 충만하게 채운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감응 방식은 무수한 영감의 원천으로 매개되는 것으로 모든 관게들이 갖고 있는 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소쇄원의 물속에 발을 담구고 차가움을 느끼며 탁족을 즐기면 작은 폭포와 살구나무 그늘진 바위 위로 흐르는 물에 비친 바위의 모습은 영계의 산이 되어 다가오며 먼 산의 모습은 석가산이 되어 다가오며 풍도(風道)에 젖은 선계가 된다.


가장 인위적인 것이 가장 자연적인 것처럼 형태는 스스로를 나누며 엮는다. 그리하여 소쇄원 바위 위로 굽이쳐 돌고 돌아 흐르는 물은 도도히 쉬지 않고, 곳곳에 넘치는 청풍의 화려함과 맑은 기운은 물경 가운데 녹아들어 해맑은 경계를 이룬다.

이전글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다음글 무무(無無)의 건축 거조암 영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