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 선교사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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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언덕 위 B묘역에는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의 묘지가 있다. 그 기념석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빅토리아풍의 신사 헐버트 박사 이곳에 잠들다.”
조선을 이해한 미국인 교육자
미국 버몬트 주 명문가 출신 헐버트가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886년 7월 4일. 23살의 나이였다. 고종이 서양학문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운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 영어 교사 자격이었다. 그 학생 중에는 이완용도 끼어 있었다. 이로부터 헐버트는 숨을 거둘 때까지 교육자로, 선교사로, 언론인으로, 역사가로, 외교자문관으로 평생을 한국에 바쳤다. 또한 영문월간지 <한국휘보(The Korean Repository)>와 <독립신문(영어판)>, <한국평론(The Korea Review)> 등을 펴내 조선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 그리고 조선왕조사를 기록한 <대동기년>과 <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는 그에게 역사가로서 명성도 가져다주었다.
그는 대단히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불과 3년만에 한국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를 저술해서 출간했다. 한국에 부임하자마자 그는 학생들이 세계에 무지한 것을 보고 1886년에 세계지리 교재인 <사민필지(士民必知)>와 <초학지지(初學地誌)>를 펴냈다. 특히 <사민필지>는 학생과 지식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그는 이 책에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찬탄하고 있다.
“슬프다. 조선언문이 중국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리오. 그래서 이 책에는 한글로써 세계 각국의 지도와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다.”
그는 조선의 식자층들이 무시하던 한글이 한자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문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1892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영문 월간 한국학 연구지 <한국휘보(The Korean Repository)>에서 한글이란 논문을 통해서 세종대왕의 창의성과 애민정신을 소개하고, “한글은 대중언어의 매개체로서 영어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하여 한글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아주 의욕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글들을 집필해 전 세계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휘보>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풍속 언어 등에 대한 글을 실었고, 다른 국제학술지와 미국의 신문 잡지 등에도 한글이 매우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또 1901년부터는 <한국평론(Korea Review)>지를 창간하여 본격적인 한국학 논문을 게재했다. 이런 한국학 연구를 통해 헐버트는 한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을 위해 눈물을 흘린 순수한 영혼
헐버트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과 소용돌이속에서 약소국의 설움을 함께 겪으면서 우리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1896년에는 생후 1년만에 아들을 잃는 아픔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우리의 아리랑 곡조에서 공감하고, 아리랑 악보와 가사를 영문으로 채록해서 전 세계에 알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는 언더우드 등과 함께 매일 밤 고종 곁을 지켰다. 헤이그에서 만국 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고종에게 보고하여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도록 권고한 이도 헐버트였다.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을 비롯한 세 사람의 밀사를 파견했다. 헐버트 자신도 헤이그로 가서 유럽의 각국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렸다. 하지만 조선의 밀사들은 일본의 압력으로 회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이준 열사는 천리 타국에서 분사하고 말았다.
헐버트는 약소국의 설움에 눈물을 삼키며 귀국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서 1908년 추방당하고 말았다. 다시는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 그는 미국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조선의 유학생들을 도와주면서 순회 강연과 신문 기고 등을 통해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루즈벨트의 조선 정책을 비판했다. 당시 미국에 유학중이던 이승만도 헐버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지금도 그가 쓴 <대한제국멸망사>를 비감한 마음으로 읽는다. 우연히 헐버트의 <대한제국멸망사>를 읽고 벽안의 이방인이 가졌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에 감동을 받은 청년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재를 털어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그에 대해 연구한 결과인 <파란 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출간해서 그의 영전에 책을 바치기도 했다. 이가 바로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