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11 - 사람을 지향한 단군신화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 그 한국적인 마음, 혹은 사고(思考)는 어떤 것일까? 한민족이 소망하던 이상적인 마음씨, 틀, 그 얼개는 과연 무엇일까? 한민족을 한민족답게 만드는 것은 어디에 있을까? 국학이 연구해 밝혀내야 할 숙제다.
신화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행태가 보여준 보편적 현상이다. 짧은 단군신화만큼 우리라는 한민족의 마음을 상징하는 작품도 없다. 때문에 한민족의 근원상징은 단군신화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왜 그럴까? 이 신화는 천지창조의 얘기가 아니다. 고조선이라는 정치체제와 함께 정치 지도자의 출현에 얽힌 민중의 바람이 담긴 설화다.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하늘생각, 자연생각, 사람생각이 짧은 일화 속에 모두 그려져 있다.
단군은 이상적 지도자상
단군신화에는 등장하는 배우 모두의 지향점이 하나다. 그것은 '사람'이다. 한울님의 서자인 환웅의 지상 강림이 고조선의 기원은 아니다. 그가 서자였다는 것은 한울님의 승계자가 아님과 동시에 하늘 일은 하늘에 맡기고 인간의 역사창조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다. 고조선이라는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 참여하는 역사 속에 역사(役事)하는 존재로 다가왔다. 인간의 역사에 포함된 신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신에게 버림받고 저주받아 추방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떠밀림과 갈라짐의 역사가 서양의 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한민족의 역사는 신이 내려와 안기며 서로를 끌어안는 포용의 역사로 시작한다. 하늘도 땅도 짐승도 바라는 것은 결국 '사람'인 셈이다.
환웅이 터를 잡은 신시(神市)였지만 고조선의 수도는 아니었다. 단군왕검이 태어난 후 아사달로 도읍을 정하매 단군조선이 시작된다. 한울님의 아들인 환웅이 '홍익인간'의 과업을 실행하려 왔지만 인간을 다스리는 치세(治世)는 단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군은 누구인가? 하늘의 아들과 땅의 딸이 결합한 결과물이다. 하늘이라는 신성(神性)과 동물의 수성(獸性)이 합쳐 낳은 인성(人性)의 현현이다.
정치적 지도자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고조선의 권력자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시에서 이뤄진 곰녀와의 혼례로 등장한다. 축제와 기쁨 속에서 단군에게 권력이 주어졌다. 세계 어느 신화나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하늘도 땅도 짐승도 모두가 사람을 바라면서도 어느 누구도 먹이로 생각지 않는다. 하늘 없는 땅과 사람, 땅 없는 하늘, 사람 없는 하늘과 땅은 의미가 없다. 사람이 중심이지만 서로는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이유를 제공하는 상인(相因)의 관계였다.
신성과 수성이 낳은 단군은 한민족이 바라는 지도자의 이상형이다. 곰이 겪은 고난의 과정은 지도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음침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동굴, 먹기 역겨운 쑥과 마늘, 그리고 100일간의 수련을 지도자의 마음가짐으로 조상들은 기대했다. 호랑이의 야성이 아니다. 바보온달처럼 때로는 멍청한 곰이, 스스로 속을 썩이며 견디는 심성, 그러나 노하면 야수도 되는 곰이 지도자의 이상형이었는지 모른다.
신성과 수성을 결합시킬 수 있는 자만이 다스림을 맡을 수 있었다는 옛 사람의 생각은 이 민족만이 아닌 온 세계의 지도이념이 됨직하다. 호랑이의 투쟁성보다 곰의 인내와 어짊이 한민족의 본성이라는 단군신화의 정신은 오늘에도 되새겨 볼 교훈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