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17 - 민족의 얼을 되찾자
“일본의 한국지배는 축복” 주장은 황폐한 민족의식이 낳은 비뚤어진 논리
“일본의 한국지배는 민족의 축복이다. 소련에 의한 식민 통치보다는 불행중 다행이다. 이유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혹은 문화적인 루트(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이는 고려대 전 명예교수 한승조씨가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발행하는 ‘정론(正論)’ 4월호에 실은 '공산주의 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합병을 재평가하자'라는 글에서 주장한 논리다. 그의 문제인식은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 관한 입법과 여론몰이가 다분히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노선과 같다는 데서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친북이 친일보다 더 나쁘다는 강성 보수파의 정서와 시국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선동의 효과물로 사용한다는 보수진영의 판단이나 평가는 자유다. 그렇지만 일본의 한국식민통치가 민족의 축복이라고 한 것은 민족의 양심을 버린 것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책임통감만이 속죄의 길
그는 이 땅에서 역사, 문학, 어학 등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세운 것이 일본 학자와 그들의 한국인 제자라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대한정책은 동일성의 이데올로기였다. '일시동인(一視同仁)'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이 그것이다.
동일성의 정책이 안고 있는 파쇼주의의 특성은 이질적인 타자를 인정치 않는 것이다. 조선사람은 일본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수용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심한 독재가 있을 수 없다. 한민족이 한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동화(assimilation)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비극이지, 축복이 아니다. 일본의 동화정책이 우리에게 저항적 민족주의를 자각케 했다는 점에서 일본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것은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은 억압적 지배와 경제적 수탈이 골자다. 일본의 토지조사 등으로 농토를 잃은 수많은 사람이 간도 등 만주로 이주하거나 문전옥답을 잃고 헤매던 그 고난은 순응의 논리에 길든 친일 협력자들은 결코 헤아릴 수 없다. 친일이냐, 반민족이냐의 문제는 책임의 문제다.
일본정권에 협력한 행위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정치행위다. 1943년에 있었던 '조선어학회 사건'은 한글사전의 편찬 자체가 독립운동으로, 이희승-최현배 등 많은 국어학자들이 옥고를 치르거나 원사를 했다.
창씨개명의 강요에 못 이겨 옥중에서 이희승 선생은 '기노시타(木下)'로 성을 고쳤다. 그러나 그것도 뜯어보면 환웅이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를 세웠다는 단군정신, 곧 민족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독립투사가 친일파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을 때부터 역사는 뒤틀렸다. 일본의 한국 근대화 메커니즘은 철도, 항만, 도로, 병원, 학교 등이었다. 이 모두는 그들의 동화정책을 위해 한민족의 일방적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 협력이라는 정치행위로 부귀영화를 누린 그들이 속죄할 길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통감뿐이다. 국내정치와 민족비극을 혼동해선 안 된다. 책임은 정치행위의 윤리다. 때문에 책임 없는 정치행위는 폭력을 수반한다. 윤리적 책임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다. 왜정에 협력한 것이 자랑스러운 일인지 뼈저리게 자성해야 한다. 얼빠진 이 민족에게 얼을 찾아 주는 것. 그것이 국학이다. 올바른 민족의식의 결여가 오늘의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