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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권오설. |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날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는 "강경 국수주의자로 알려진 아베 총리의 문제는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는 역사인식"이라고 논평했다. 중국 관영 중궈신원왕(中國新聞網)은 22일 "아베 총리는 영토문제에서 강경한 민족주의적 입장을 보이면서 국제사회 신의를 잃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이나 조직 나라 또한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독일이 수없이 과오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하면서 대국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은 솔직한 '자기바라보기'이며 그 토대 위에 자리한 '극복의 의지'이다. 마땅히 독일인들의 당당한 자신감의 발현이다.
그러면 일본의 문제는 무엇일까?
일본이 애써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속에 역시 과거의 어두운 피해의식의 상흔이 있는 것이고 그걸 극복할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은 일본인들의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자기 과오로 한국과 중국, 아시아 여러 나라의 불명예와 불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인들의 희미한 양심의 빛과 그에 따른 자신들의 쪼그라진 의식이며 당연한 국가적 신뢰의 실추 때문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실상을 외면하는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패악은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인 권오설(權五卨 1899~1930)의 경우에도 차마 눈을 바로 뜨고 보기 힘들다. 풍천 가일 마을의 안동 권 씨는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가문이다. 특히 권술조(權述朝)와 어머니 풍산 류씨(柳氏)를 부모로 태어난 권오설이 있다. 권오설은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경북고등학교 전신) 재학 중 민족의식을 고취를 이유로 퇴학당하고,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중앙고등학교 전신)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전남도청에서 근무하던 중 3·1운동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 한다. 7년 뒤인 순종의 국장일에 맞춰 1926년 4월의 6·10 만세운동을 또 다시 주도적으로 계획하다가 재차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는다. 권오설은 폭행과 고문을 자행하는 일제 경찰을 형무소 안에서도 고소하는 ‘고문사건항의운동’까지 전개하며 강렬하게 항거한다. 그러나 만기출소를 백 여일 앞둔 1930년 4월17일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일제는 유족들도 장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봉분과 묘비조차 세우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
왜 일까? 그 이유는 76년 뒤인 2006년에 밝혀진다. 이장을 하기위해 판 무덤에서는 못질 위에 납땜까지 한 벌겋게 녹슨 철관이 나온다. 심한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은 것을 일제가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오설은 시신마저 철제관속에 꽁꽁 숨겨졌으니 살아 5년, 죽어 근 80년을 감옥에 갇힌 셈이다.
그 자식을 잃은 권오설의 아버지 권술조옹은 장장 85장에 365cm나 되는 절절한 제문祭文 을 가슴에서 풀어낸다. 이 제문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형무소 독방에서 의문사한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버지의 무너지는 마음이 오히려 단아한 해서체로 담겨 있다.
"아, 원통하고 슬프다! 내가 너와 인간 세상에서 부자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 겨우 33년인데 부자의 정을 나눈 것은 그 3분의 1이나 되었겠는가. 네가 과연 죽었느냐. 병으로 죽었느냐. 충직 때문에 죽었느냐. 사람의 삶은 올바름에 있는 것이니 네가 만약 죽을 자리에서 죽었다면 어찌 하겠는가…, 마난(馬難, 권오설의 호)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던 나의 아들, 너를 키우며 가르치는 재미가 났다. 6세 때 한시를 지었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난 너를 먼저 보내는 아비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허무하다. ....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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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설 삼일신고. |
권오설의 유품에서 표지에 붉은 인장이 찍인 1912년 판 『삼일신고 三一??誥』가 발견된다. 삼일신고는 『천부경天符經』, 『참전계경參佺戒經』과 더불어 우주의 진리체계를 밝힌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한민족의 삼대경전중의 하나이다. 안동의 가일 마을 권오설의 마음과 몸은 좌, 우의 이념과 국경의 벽을 넘어 인류의 영원한 이상향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권술조의 이념을 초월한 단지 애끓는 부모의 마음은 장렬하게 인고를 녹여낸 ? 민족의 어버이 모습임에 틀림없다.
권오설의 핏빛으로 녹슨 철제관은 오늘도 안동 독립운동 기념관에 비치되어 있다. 나라를 빼앗긴 부끄러움을 미처 모르는 후손들에게 다시는 민족혼을 잃지 말라는 썩지 않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망국의 한을 넘어서서 세계를 밝히려는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을 더 늦기 전에 일본은 배우고 알려주라는 소리 없는 우레 이며 모습 없는 벼락인 것이다.
사)국학원 원장(대), 전국 민족단체 협의회 대표 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