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6 - 옛 여인 마음의 틀을 찾자
국학이 찾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적 여인상은 어떤 것일까? 슬프면서도 내놓고 슬퍼하지 않는(哀而不悲) 것일까? 소월의 진달래꽃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는 이런 여인의 마음을 말하고 있다. 마치 어머니의 가슴이 어린 나이에 떠나간 자식의 무덤이 된다는 것과도 같다. 펑펑 눈물 쏟아내며 울고 싶지만 애달픔을 참아 내는 인종의 모습이 한민족의 문학사에 흐르고 있다.
한양의 양반과 펼친 로맨스 때문에 춘향제를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정절 때문이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칭송받는 것도 그녀의 효성이다. 암흑의 세상에 개화의 눈을 뜨게 했다는 사회주의 혁명적 풀이보다는 그녀의 효심이다. 정절과 효심. 이 두 가지 덕목이 우리의 전통적 여인상의 틀이었다. 어떻게 이런 순애(殉愛)와 지순의 사랑이 여인의 보편적 가치기준으로 되었을까?
그러한 정신적 원류는 홍익정신을 배태한 '한'이다. 자기애를 이겨낸 다음에 오는 자기부정의 심리상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경지가 아니면 내 몸을 보시로 던질 수 없다. 마땅히 무엇에나 조건을 달지 말고 마음을 내는 이기(利己)의 극복에서나 가능한 상태다.
갈등과 대립 녹이는 '한'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 올세라" 잡아두고프지만 서운하면 아니 올까 두려운 마음, 이것이 절제와 체념이다. "서러운 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하며 애소와 바람을 마음에서 빈다. 서러웁지만 드러내 놓고 슬퍼하지 않겠다는 절제된 의지의 표현이다. 고려가사 '가시리'에 나타난 여인의 정서다.
'정읍사'는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산마루에서 빌다 망부석이 된 여인을 노래하고 있다. 정읍사 부부사랑 축제가 여기서 유래하고 있다. 이혼 그리고 가정의 순결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신혼 3년에 세 가정 중 한 가정은 파경에 이르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남성의 부도덕이 이혼의 주요 이유 중에 하나다. 남성의 부정을 덮어 두고 정절의 이조 여인상을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인상을 예찬하는 것이 남성우월주의라 비난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문학 속에 담겨진 정신을 우리가 살리고 싶은 그리고 오늘에 살려 재창조하고픈 국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 옛날 그 시절에 우리의 여인들이 가졌던 '마음의 틀'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라면 오늘의 이 사회를 한결 아름답고 밝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한(恨)이 쌓이면 참된 '한'은 비틀려 하늘에 사무치면서 천체의 운행을 막아 천재지변의 재앙으로 나타난다. 이런 것이 소박한 옛 사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恨)이 하나로 한가운데로, 끝도 시작도 가도 없는 참한이 될 때 그 속엔 증오도 대립도 갈등도 원한도 녹아든다.
'정읍사' '가시리' '황진이'와 '김소월'로 연결되는 시와 가사 속에 나타난 여인들의 정서는 비틀려 맺힌 한이 아니다. 자기극복, 자기부정, 자기희생을 경험하며 이룬 한의 상태다. 이런 옛 마음을 오늘에 되짚어 보는 것은 가치있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서로가 보완하는 관계, 그것은 좋은 부부 뿐만이 아니다. 남녀, 인간관계의 요체일지 모른다. 황진이의 '영 반월'(詠半月-반달을 노래하다)이란 한시는 이런 상보적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수단곤륜옥(誰斷崑崙玉) 누가 곤륜산 옥을 베어내어
재성직녀소(裁成織女梳) 직녀의 머리 빗 만들었나
견우일거후(牽牛一去後) 견우 한번 떠나간 뒤
수척벽공허(愁擲碧空虛) 수심에 젖어 푸른 허공에 던져버렸소
곱게 머리 빗질해 단장하는 까닭을 님의 존재에서 찾고 있는 황진이다. 최고인 곤륜산옥으로 만든 빗이면 뭣에 쓰냐. 견우(님) 가버린 다음에는 쓸모없는 빗. 그래서 허공에 날렸다. 빗은 반달 모양이다. 반달은 보름이면 만월이 된다. 그대 없는 나는 반쪽 달님일 뿐 완전을 이룰 수 없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도 상보적 존재로서의 남녀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상조(相助)와 상의(相依), 상보(相補), 상인(相因)이 우리의 여인들이 지녔던 마음의 틀이다. 남과 여, 따로가 아니다. 둘이면서 하나다. 하나면서 둘이 돼 창조로 간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 속에 이어 내려오는 여인의 위상이다. 그래서 슬퍼도 슬퍼하지 않음이 가능하다. 이런 아름다운 정서를 오늘에 살리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국학운동의 하나다. 그리고 한 사상의 재현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