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7 - 역사의 올바른 이해
바로 세우는 이유는 뭔가 굽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역사의 기록이 한쪽으로 휘어졌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1986년 10월 2일자 [보스톤 글로브]는 1면에 콜럼버스가 처음 서인도제도에 상륙한 섬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왜트링 섬'이 아닌 '사마나 케이'라고 밝히면서 콜럼버스의 잔학성을 보도했다. 미국의 교과서에는 어느 한 곳도 콜럼버스의 야만적 살인행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각종 학교가 쓰는 역사 교과서에 묘사한 콜럼버스는 재능과 용기로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인 항해사다. 역사의 기술에 있어서 사실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다. 콜럼버스에 대한 변호나 공격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시각으로 콜럼버스가 원주민에, 인간에게 무슨 짓을 했으며, 역사적 발전을 측정하는 우리의 잣대가 무엇인가를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추악한 이면
콜럼버스는 그의 항해일지에서 그가 저지른 온갖 죄악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학자들은 콜럼버스가 그를 순진하고 호의적으로 맞아준 '아라왜크' 인디언들을 노예로 삼고 고문과 살육, 강간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을 삭제했다. 그래서 황금에 대한 탐욕과 명예욕으로 거의 인종학살에 가까운 그의 죄악은 감춰지고 대신 '콜럼버스의 날'을 공휴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진보와 보수, 반북과 친북, 통일지상주의와 흡수통일, 성장과 분배 등 입장의 대립은 역사적 잣대에 대한 차이다. 국학은 이런 시각과 가치관의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시도의 하나다. 국학은 사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자유와 평등, 평화와 정의를 실현키 위한 질문을 하고 해답을 찾자는 것이다.
지나가는 역사는 과거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역사는 잘못된 지난 일을 오늘의 눈으로 보고 바꾸기 위한 이해와 수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동학혁명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각과 역사적 준거도, 한국전쟁이나 제주4-3항쟁을 보는 눈도, 오늘의 남북대치 상황을 재는 잣대도 모두 인간과의 관계다. 권력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윤리적이었느냐이다. 4-19도 5-18광주항쟁도 모두 윤리적 관계의 정도가 기준이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잣대로 인정되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무엇을 행했느냐에 있다. 그러한 기준을 우리의 것에서 찾아 나가자는 것이 국학이며 운동이다.
그러면 그 준거라는 잣대는 홍익인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단정은 대상에 대한 윤리적 배려가 홍익정신이라고 정의할 때 가능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날'에 스페인에 있는 성당에 유대인들이 모여 이날을 경축한 이유가 그가 유대인의 혈통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얼마나 휘어지고 편향된 역사인식인가? 우리는 모두 지구인이다. 같은 하늘, 같은 땅을 밝고 사는 인간이다. 때문에 역사적 사건의 재단은 얼마나 홍익(弘益)적이었나를 중심적 잣대로 사용할 때 우리 사회나 세계가 겪고 있는 분쟁과 대립은 해소될 것이다. 이것이 국학운동의 본질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