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8 - 서민의 꿈을 정치윤리로
역사의 비틀림은 해석의 편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더 위험한 왜곡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선택이다. 선택은 역사의 공백을 낳기도 하고 메우기도 한다.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는 기자조선이 그 예다. 공자에 따르면 기자는 상나라 삼현(三賢) 중 한 사람이었다. 상나라는 단군의 둘째 아들 부우(夫虞)의 후손들이 세워 630년간 중원을 다스린 나라다. 상나라가 마지막 왕인 주(紂)의 폭정으로 망하자 주나라가 들어섰다. 주의 무왕은 주왕에게 직언을 하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기자를 석방하여 가택연금 상태로 두었다. 그 후 13년 만에 기자를 찾아가 이상정치의 규범을 물었다. 무왕과 기자가 주고받은 대화가 [서경(書經)] '홍범'편에 기록돼 있다.
"오오 기자여, 하늘은 그윽히 백성들을 정하여 놓고 그들의 삶을 도우시고 화합하게 하시나 나는 그 일정한 윤리가 베풀어지는 바를 알지 못하노라."
첫째는 오래 사는 것(壽).
둘째는 재물이 있는 것(富).
셋째는 편안함(康寧).
넷째는 덕을 닦음을 즐기는 것(攸好德).
다섯째는 제대로 명을 다하는 것(考終命).
이것이 기자가 제시한 정치윤리의 이상인 '홍범구주(弘範九疇)'의 하나인 오복(五福)이다. 여기서 기자는 경칭을 전혀 쓰지 않고 왕에게 말했다. 그 후 기자는 연금이 풀리자 백성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 조선으로 와 기자조선의 첫 통치자가 됐다.
그 옛날에 인간의 오복을 정치적 윤리의 이상으로 제시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요즘 말로 사회복지 혹은 웰빙(well-being)을 통치자에게 아무런 경어도 없이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기자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그가 동이족, 단군의 후손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홍익인간과 홍범구주는 한뿌리
오래 살되, 재물을 지녔고 몸과 마음이 안녕하고 덕을 닦고 쌓기를 즐기다가 자기의 천수를 마친다는 것. 홍익인간 정신이 서민들의 말로 풀이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백성들이야 등 따습고 배부르면 태평성대라 했다. 단순한 삶이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지금 시대에 변혁을 외치는 것도 다 이런 삶을 누리자는 것 아닌가. 서민의 꿈을 정치윤리로 주장한 기자는 오늘날 우리 삶의 잣대로 보자면 '가치관의 재창조'를 함직한 위인이다. 이런 위대한 인물을 중국은 중국 사람으로, 친일사가들은 아예 우리 역사에서 기자조선을 삭제해버리고 신화적 인물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하고, 이를 기꺼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역사왜곡에도 이 나라 역사학계는 말이 없다.
기자가 홍범구주를 정치윤리의 뼈대로 설한 배경에는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이 있다면 지나친 아전인수일까?
현재가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과거라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선택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슬기와 지혜를 주기에 충분하다. 기자가 우리 역사로 되었다면 오늘 중국의 동북공정은 설 곳이 없었을 것이다. 고려 숙종 때는 기자사당을 건립하여 그를 추앙하였다. 고대 중국의 연고권을 강조하려는 중화사상 앞에 중국 못지 않은 문화국의 자신감을 나타내려는 선조들의 노력이었다. 홍범구주는 홍익정신을 꽃피우려는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