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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이야기 9 - 밥맛 나는 세상을 위하여 2009.09.21  조회: 2253

작성자 : 이형래

국학이야기 9 - 밥맛 나는 세상을 위하여

 

저승사자에게도 밥을 주었다. 사잣밥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심부름꾼에게도 죽은 이의 편안한 인도를 위해 밥을 대접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밥을 생시처럼 올렸다. 산 사람에게 밥은 생명 그 자체였다. 밥만큼 한민족의 정서를 잘 담은 문화유산은 없다. 그래서 인사도 "진지 드셨습니까?" "밥 먹었냐?"다.

국수를 먹든 죽을 먹든 자장면을 먹든 우동을 먹든 인사는 "밥 먹었느냐"로 통일된다.

직장에서 해고되면 "밥통 떨어졌다"고도 한다. "밥술이나 뜬다"면 먹고 살 만한 재산이 있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좋은 세상은 "밥맛 나는 세상"이고 그 반대는 "밥맛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삶의 질이나 기준이 밥인 한민족이다. 일에 짜증스러우면 "밥알이 곤두선다"고 한다.

거지 동냥의 거의가 밥이었다. 그랬던 밥이 요즘은 제값을 못해 특히 농민들에겐 밥맛 없는 세상이 되었다. 솥단지를 떠메고 데모하는 세상이니 밥이 얼마나 찬밥신세가 됐는지 모른다.

"가을의 식은밥이 봄날의 양식이다"며 밥알 하나라도 흘리면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지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듯 귀중하던 밥이 50년대, 60년대에 보릿고개를 넘자고 미국의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서서히 자리를 내놨다. 밥 문화가 아니고 분식문화라는 말이 생겼다. 분식센터도 출현했다. 배가 부른데 무엇이면 어떨까마는 문제는 식성의 변화다. 식성의 바뀜은 심성의 변화를 이끈다. 세계에 퍼진 미국의 '맥도날드' 식당이 2만 여개다. '맥도날드'는 세계인의 입맛을 바꾸었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맥도날드'는 어느덧 미국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이 가는 곳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간다.

식성의 변화가 심성도 바꿔

요즘은 '햇반'이 생겨 주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쉬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의 '패스트푸드'화가 진행되고 있다. 밀가루 음식이 밥을 밀어내면서 '인스턴트' 즉석 음식이 자리를 메운다. 이런 즉석형 음식들은 '라면'을 비롯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기성품'으로 만들었다.

10여 년 전 어느 보험사에서 전국 초등학생 5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다.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김치(12.2%)로 나타났다. 라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가 51.7%였다. '맛이 좋아서'는 18.1%에 지나지 않았다.

예부터 음식 맛은 만드는 이의 손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가정주부가 가족을 위해 정성을 쏟을 여유와 시간이 없다는 세상이 됐다. 그 남은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는 별개의 문제라 치고 가족의 입맛보다 더 중요한, 더 정성을 쏟을 일이 무엇인지. 농경문화의 상징인 밥의 수난시대다.

밥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더운밥이라야 제맛이다. 가슴 따뜻한 한민족의 심성이 더운밥을 통해 나타나는 그 틀인지 모르겠다. 어느 학자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정, 정(情)으로 특징지었다. 정이 한민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별나게 정 때문에 울고 웃는 사연이 많은 것이 우리만이 지닌 특성은 아닐까. 밥은 짓는 이의 정성이 담기는 우리 문화의 표상이다. 국학운동, 밥맛 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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