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칼럼] 월드컵과 붉은 악마
2002년 전국을 들뜨게 하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월드컵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4강 신화 꿈은 이루어진다!’ 를 현실로 이루어 냈다.
당시 12번째의 선수로서 응원을 이끌고 분위기를 몰고 다녔던 붉은 악마는 누구일까? 붉은 악마 홈페이지(http://www.reddevil.or.kr/home/home.asp) 에 접속을 해 보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다.
붉은 악마는 치우천왕(蚩尤天王)으로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왕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倍達國)의 제14대 천왕으로서, < 한단고기(桓檀古記) > 삼성기편에 의하면 BC 2707년에 즉위하여 나라를 통치했던 왕으로 자오지(慈烏支) 환웅이라고도 한다. 신처럼 용맹이 뛰어났고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키며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며, 광석을 캐어 철을 주조하는 병기제작 술이 뛰어나 세상 사람들은 치우천왕이라 불렀다. 치우란 '세속의 말로 우레와 비를 크게 만들어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다'라고 적고 있다.
중국이 2002년부터 5년에 걸쳐 200억 위안(약 3조원)을 투입해 고구려를 그들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국학청년단과 함께 막아낸 붉은 악마들이다.
배달국14대 치우천황
47분의 단군이 2096년간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철학으로 평화롭게 통치했던 앞의 배달국(밝은 땅의 나라) 은 초대 거발한 천황에서 단군왕검에게 천부의 법을 전해준 18대거불단 천황까지 1565년간 존재했던 나라로서 중국 ‘사기’를 비롯해 40여종의 사서에의하면 치우는 구려의 임금이었으며, 고대 천자의 이름이다. 구리 머리에 철 이마(銅頭鐵額:투구)를 하고 , 금속을 제련해서 다섯 가지 병기를 만들었다(청동기 유적 발굴로 입증되고 있음).
그의 묘는 산동성 수장현에 있고, 매년 10월에 제사를 올리는데 붉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군(軍)의 우두머리는 모두 그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특히 유방은 통일을 위한 마지막 풍패전투에 나가기 전에 치우사당에 참배하고 승리한 후 서안에 그의 사당을 짓고 높이 받들었다.
전쟁의 神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는 치우천왕이 배달나라 14대 임금이며 황제와 치우가 패권다툼을 벌이게 된 경위, 치우가 만들었다는 무기의 종류와 전투방법, 10년간 73회나 치렀다는 주요전투의 내용, 염제 휘하의 한 군장이었다가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염제로 등극하는 과정, 쇠를 캐어 제련하는 과정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같은 동이족 연맹의 일원이던 치우와 황제 헌원은 10년 간 73회나 싸웠으나 황제는 늘 패했는데, 그들의 마지막 싸움이자 동양 역사기록상의 첫 대전인 탁록대전이 현재의 베이징 서북쪽에 있는 탁록에서 벌어졌는데 중국에서는 치우가 죽었다고 조작하고 있다. 백전백승의 그 정신을 월드컵 전사들이 이어받아 세계를 놀라게 하라는 뜻으로 치우의 상징으로 붉은 악마로 정했던 것이다.
치우를 자기의 조상으로 왜곡
탁록에서는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가 주축이 되어 1995년에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사원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삼조당(三祖堂)’에 염제?황제?치우 세 사람의 좌상을 안치하고 참배를 하고 있는데, 치우를 난폭하고 난을 일으키기 좋아하는 야만족으로 취급하고, 염제와 황제의 가장 큰 업적이 치우의 정벌이라 자랑하던 중국인들이 이제 치우를 황제?염제와 같은 반열에 올려 치우를 모시고 있다. 역사왜곡을 해도 해도 너무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의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에게 상고사를 빼놓고 역사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배달민족의 자손으로 치우천황의 정신으로 우리의 월드컵 선수들이 당당히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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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곤 밀양동명고교사
칼럼제공 : 국학뉴스 http://www.kookhak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