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이야기10 - 단군신화는 사회 통합의 상징
단군신화는 한때 우리 사회의 화제였다. 단군상 건립을 둘러싼 민족진영과 기독교계의 갈등과 마찰 때문이었는데 아직도 그 대립 관계는 조정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곰의 자손이 아니다"라는 글자 그대로의 해석과 곰이 사람이 됨은 인간 심성의 변화(수성에서 인성으로 상승)라는 해석. 곰의 얘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연유한다. 단군신화는 환웅이 인간 세상을 홍익인간 이화세계로 만들겠다며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며 시작된다. 환웅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 동안 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참지 못한 호랑이는 뛰쳐나가고 곰은 잘 견뎌 여인으로 환생,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는다. 환인 천제의 둘째 아들로 삼부인과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신단수 아래로 강림했다는 환웅의 얘기는 로마나 그리스의 신화와 다를 바 없다.
고대사회의 발전상 담겨
문제는 해석이다. 글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국수적 민족주의가 빚는 역사의 시대착오적 해석이다. 곰의 자손이라는 말을 비과학적이어서 역사가 아니라며 상고사를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 종파도 문제다.
신화는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얘기다. 상징적 비유를 축자해석하면 생명력이 없어진다. 교회에서 '우리는 곰의 자손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경직된 해석이 낳은 오류다.
곰은 잡식성 동물이다. 호랑이는 잡식성이 아니다. 곰이야 마늘이든 쑥이든 가릴 것 없다. 게다가 곰은 동면을 한다. 하지만 호랑이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100일 동안의 굴속 생활이 곰에겐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야성의 호랑이에겐 전혀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환웅은 호랑이를 사람으로 만들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사람이 되는 조건이 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는 해석이다.
이것을 고대사회의 통합과정을 나타내는 얘기로 보면 쉽다.
고대 원시사회에는 곰과 호랑이 등을 숭앙하는 토템신앙인이 많았다. 환웅이 이끈 부족은 하늘에서 온 천손족임을 내세웠다. 하늘을 칭탁한 환웅의 천손족과 곰 토템신앙을 지닌 부족 간에는 화합과 통합이 이뤄졌고 호랑이 토템신앙을 지닌 호족과의 통합협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렬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천손족을 자칭하는 무리가 통합대상을 선별적으로 골랐다는 얘기도 된다. 천손족을 칭하려면 문화적 우월성이 관건이다. 신석기시대를 살아가는 웅족과 호족에 비해 천손족은 청동기 문화권이었을 법하다. 이유는 상위의 문화가 하위의 문화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곰 후손 이야기를 주장하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엔 한국의 비둘기 떼(비둘기부대)가 월남에서 병자를 고치고, 용맹한 호랑이 떼(맹호부대)가 전투에 나서 용맹을 떨쳤다는 해석도 전혀 상상 못할 것은 아니다.
단군신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화의 존재 자체에는 반론이 없다. 그렇다면 신화의 상징성이다. 단군신화는 당시의 사회상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의 진실성 추구보다는 역사적 사실의 유추작업이 더 소중하다. 이 신화가 수천년을 전해내려온 데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천손족과 지손족 사이에 태어난 민족이라는 천민사상을 심어 주었다. 이런 천민사상이 주는 긍지는 종족간의 통합과 조정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국난 때마다 단군 주위에 민족이 뭉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단군신화의 현대적 해석과 재창조는 상생과 통합이 절실한 오늘에 다시 새겨볼 국학의 궁극적 과제다.
이형래 [세계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