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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과 진시황 2010.11.29  조회: 2799

작성자 : 김진환
[김진환칼럼] 만리장성과 진시황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다. 그런데 분서갱유라 하면 유교(儒敎)의 서적을 불태우고 이듬해에는 진시황을 비난하던 유교의 선비 또는 유학자들 460여명을 검거하여 도읍인 함양(咸陽)에서 갱(坑)에 생매장하여 살해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먼저 분서(焚書) 즉 유교의 서적을 모두 모두 불태워 버렸다면 오늘날 전해오는 유교의 경전들을 어떻게 보존해 왔다는 말인가? 진시황이 분서를 명령한 까닭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8년 뒤인 BC 213년(진시황 34년)에 함양궁(咸陽宮)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제(齊)나라 사람 순우월(淳于越)이 주(周)나라의 봉건제도를 찬양한 것이 그 동기가 되었다. 진(秦)나라는 진시황의 중앙집권제를 통하여 통치했던 최초의 나라였는데 제(齊)나라 사람 순우월이 비난한 것이다.

이에 승상 이사(李斯)는 진시황에게 상주(上奏)하여 분서(焚書)를 단행하게 했다. 분서(焚書)란 동이족이며 단군겨레의 후손인 춘추전국 각 나라 역사서를 모두 불태운 것이다. 신선사상(神仙思想), 즉 동이족 계통의 문헌들이 모두 불태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문헌에서 단군(檀君)과 환웅(桓雄)의 기록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환국(桓國)의 문화는 유교문화로 둔갑하고 말았다.

분서된 책은 우리 역사서

갱유(坑儒) 또한 유교의 선비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신선사상의 방사(方士=道人)와 그 문하생 460명을 매장한 사건이다. 신선사상의 방사들은 우리 동이족들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진시황의 탄압에 대하여 창해역사(滄海力士) 여홍성(黎洪星)과 한(韓)나라의 장량(張良)의 진시황 저격사건이 있게 된 것이다. '북부여세가'에 “계미 22년(BC 218년) 창해(滄海) 역사(力士) 여홍성(黎洪星)이 한(韓)나라 사람 장량(張良)과 함께 진나라왕 정(政 : 진시황)을 박량사(博浪沙 : 하남성 박랑현의 동남에 위치)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부거(副車)를 박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시황 저격사건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먼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하’에 “계해년(BC 238년) 단군 고열가(47대,BC 295~238)가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아사달에 들어가셨다.

진조선(眞朝鮮)은 오가(五加)와 함께 진왕정(秦王政:진시황)에게 복종하게 되더니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종말을 맞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그리고 ‘해동역사’에는 “진(秦)나라 때부터 조선은 속국이 되고 신하노릇을 하더니 뒤에는 또 좁은 곳에 조용히 관망하였다.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몽염(蒙恬)으로 하여금 장성(長城)을 쌓게 하고 요동에 이르렀을 때 두려워하여 잠시 항복하여 진(秦)나라에 속국이 되었으나 즐겨 조회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갱유된 선비도 동이족 선조

. ‘단군세기’에 의하면 회대(淮岱)의 춘추제국은 단군조선의 진한(辰韓:진조선) 땅이며, 춘추제국은 단군조선의 오가(五加)라 하였는데, 진시황은 BC 246년 13세로 즉위하여 BC 231년 한(韓)을 멸망시킨 것을 비롯해서 초(楚)·위(魏)·조(趙)·연(燕)을 멸망시키고 마지막으로 산동반도에 있던 제(齊)를 멸망시킴으로써 6국을 통합하였다.

이 6국의 주체세력들은 모두 동이족으로 단군겨레의 후손이다. 진(秦)이 회대(淮岱)의 모든 나라를 하나로 만들었던데 비하여 단군조선은 망하여 온 나라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으니 이를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조선의 유민들이 산곡(山谷)에 나뉘어 살았다”하였다.

2000년을 이어온 단군조선의 진한세가가 22대 단군 때 무너졌고, 그 후 중토에 옮겨 살던 진한(眞韓)의 오가(五加) 춘추제국이 모두 흩어졌으며,이때 단군세기를 지켜오던 마한(馬韓) 즉 동호(東胡)가 흉노의 모돈에게 패해 쇠약해진 때였다. 그때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했던 것이다.

진시황이 두려워한 것은

중국이 자랑하는 만리장성은 과연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알다시피 성은 방어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선조의 전통적 성은 일정 구역 지킴이 식이다. 성 하나가 무너진다고 해서 완전히 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식은 벽형태이다.

어느 한곳이 뚫리면 봇물터지듯 밀리는 성격을 가졌다. 만리장성을 쌓을 만치 두렵게 한 존재는 바로 저들이 말하는 동이족(과거 夷자는 弓자와 大자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동쪽에서 큰 활을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즉 우리 선조이다.

중국을 여행하는 우리는 그 성을 보고 중국사람이 이런 성을 쌓았으니 대단한 중국인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성을 쌓게 한 우리의 강력한 힘을 느끼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리 덕분에 만들어졌으니 어찌 보면 그 만리장성의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할 수도 있겠다.

지난날 우리는 진시황이 두려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힘과 정신이 우리 피에 지금 흐르고 있다.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노력을 경주하여 마침내 평화로운 동북아시대의 주역이 되자.

김진환 (경남국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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