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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회 국민강좌] 천부경의 스토리텔링 근초고대왕 2011.05.30  조회: 5876

천부경의 스토리텔링, 근초고대왕
- 윤영용. 근초고대왕 작가 -

 

 

 
▲ 소설『근초고대왕』의 윤영용 작가

1. 천부경…?
천부경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천부경(天符經)은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로, 1975년 교무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채택하였다. 위작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사학계에서는 신채호가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에서 위작으로 확언한 후 위작으로 보는 것에 별다른 의문이 없다. 나철의 대종교에서 갈라진 친일교단인 단군교(교주 정훈모)측의 위작으로 보인다.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에서 위작이라고 하는 천부경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있으니…. 다소 화가 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에 민족진영들은 여전히 누가 주도하느냐, 각자 자기 얘기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뭔가 해야 하는데…. 하면서 뭘 할 것인가를 가지고 좌고우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부터 고치자!


천부경. 단군교의 경전으로 출발해버렸다. 그런데 천부경의 본뜻을 보려면 경(經)을 빼야 한다. 종교적 시각을 치우고 나면 천부(天符)가 남는다.


천부(天符) 하늘의 부호(符號), 기호(記號)요. 증거(證據), 증표(證票)이며, 부적(符籍)으로 예언서(豫言書), 미래기(未來記)이고 도장(圖章)이며, 부절(符節: 신표로 삼던 물건)로 조짐(兆朕), 징조(徵兆)와 법(法), 법도(法度), 규율(規律)을 이며 씨방, 껍질, 귀목초(대나무의 일종), 공문(公文), 나타난, 드러난, 들어맞다, 부합하다(符合--), 명령하다(命令--), 확실히(確實-), 틀림없이 라는 의미가 있다. 줄 부(符)에는 대나무 즉 죽간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전승 되었으며 그 뜻으로는 ㉠주다, 수여하다(授與--) ㉡맡기다, 부탁하다(付託--) ㉢의지하다(依支--) ㉣따르다, 따라붙다(=附) ㉤부제(?祭: 삼년상을 마친 뒤에 그 신주를 조상의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 의미가 있다.


사람 옆에 마디 촌은 ㉠마디 ㉡치(길이의 단위) ㉢촌수(혈족의 세수를 세는 말) ㉣마음 ㉤근소 ㉥조금, 약간 ㉦작다 ㉧적다 ㉨헤아리다 의미다. 손목에서 맥박(脈搏)이 뛰는 데까지의 사이를 나타내어 '한 치'의 길이를 가리킨 글자. 의미(意味) 요소(要素)로 쓰이는 예도 있고, 자형(字形)의 분류(分類)를 위해서도 사용(使用)된다.


한마디로 천부(天符)는 하늘이 내린 부호요. 법칙이다. 그 기본은 단위다. 수치의 단위가 되는 것이 기본 속성이다. 이런 바탕으로 천부경을 이해하면 더욱 쉽게 근본 원리를 알 수가 있다.


천부경은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난해한 숫자와 교리 때문이라고 하는 데…. 그보다 근본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천부경 내에서 등장하는 수리(數理)가 있다. 바로 0부터 9까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0과 9를 바탕으로 무한 승수로 반복 증대되는 10진의 원리가 있다. 그 단위.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십진의 원리가 어찌 문명의 시작점이라는 것인가?


답을 찾는 길은 뜻밖에 간단하다. 인류 문명이라는 산물과 문화적인 것들에서 10진을 빼 보면 안다. 숫자 단위로서의 10진을 없애고 나면 아마 남아 있을 문명은 없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인류 문명에 배여 있는 수리 10진의 원리를 근원이라 문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인류에게 분별하고 개별화하여 개념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을까? 지혜의 시작이며 지식의 근본이 아닐 수 없다. 철학의 시작이니 곧 인류 문명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천도(天道)는 천지도수(天地度數)요.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요, 태을(太乙)이며 궁을(弓乙)로 다시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는 동양 사상에서의 창조 원리를 오늘날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파장 에너지의 세계를 설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숫자로 이해한 세상에 대한 개념정리. 이것이 바로 천부다. 그 원리와 이유, 철학이 담겨 있다. 0에서 1이 나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지창조의 근본원리가 종교적이 아닌 과학적 개념으로 담겨 있으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그것은 오늘날 경전적 해석 때문에 놓치고 있는 천부의 비밀이다. 이는 입자물리학과 파장에너지로 일컬어지는 과학세계에서 더욱 그 신비로움을 드러낸다.


왼쪽으로부터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 상태다. 플라즈마란 고체도, 기체도 액체도 아닌 제4의 물질상태이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는 음의 전하를 띠고, 원자핵은 양의 전하를 띠기 때문에 전자와 원자핵은 서로 잡아당기는 힘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1억도가 넘는 상태에서 전자는 원자핵에서 떨어져나와 전자와 원자핵이 서로 떨어져 자유로운 형태가 되니 이것이 바로 플라즈마라고 한다. 이 플라즈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가벼운 수소와 헬륨입자들이 서로 합쳐서 무거운 원자핵으로 바뀌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합쳐진 입자들의 질량이 원래보다 줄어들게 되는데 줄어든 질량만큼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 바로 태양에너지다. 핵융합에너지라고 한다.


핵융합에너지는 태양이 열을 내는 것과 같은 원리로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에서 발생한다.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인 이온화된 입자들을 말하며 우주 물질의 99%를 차지한다. 수소 원자핵을 플라즈마로 만들고 이를 토카막(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자기장을 이용하는 도넛형 장치)에 잘 가둔 다음 1억도 이상의 초고온과 고압으로 가열하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즉 초고온의 플라즈마에서 삼중수소와 중수소를 융합시키면 헬륨과 중성자가 생성되는데 이때 질량 결손 시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상대성 원리'에 따라 약 17.6 MeV(메가전자볼트)의 막대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방출된다고 한다.


이 변화 속에서 재미있는 숫자가 보인다. 중성자 1과 중수소 2, 그리고 삼중수소 3과 헬륨 4가 보이고 핵융합 상태인 5도 보인다.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 속에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천부의 수리(數理)가 엿보이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과학의 신비를 논하기에 앞서 천부경에 쓰인 수리(數理)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주 생성시기에는 오직 헬륨가스가 25%, 수소가스가 75%로 1:3의 비율로 존재한 것이 천부경에 자주 등장하는 1:3의 황금률과 일치한다."라고 전했다. 양성자(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 6개가 모여 비로소 탄소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은 생명체인 유기물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 6이란 숫자가 천부경의 '대삼합육생 大三合六生'의 숫자 육 六과 같아서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또한 천부경 총 81글자 중 가운데 있는 숫자가 6이기도 하여 천부경은 六 전의 이야기와 六 후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고 김정양 박사는 1970년대 들어서야 밝혀지고 있던 우주입자물리학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천부경의 위작 논의에 일침을 가해야 한다. 위작이든 아니든 놀라운 원리를 가진 위대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진지하게 연구해야 마땅하고 한자 글자 속에 파묻혀 사는 우리 나라 역사학자들이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현대 입자 물리학의 원리를 우리 천부경은 담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알았고 어떻게 적용 해 왔는지를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학계는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 발견에 힘을 쏟고 있다. 힉스장 즉 파장 에너지 세계에서 대칭성을 가지는 힘의 입자 즉 W와 Z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것은 힉스 반입자라고 한다. 그 반입자. 파 에너지에서 소립자가 되게 하는 것. 그래서 흔히 신의 입자라고 불린다. 우주가 탄생한 '빅뱅(Big Bang)' 직후 우주형성의 핵심으로 간주해온 가상 입자 '힉스(Higgs Boson)'의 규명이 임박했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은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인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가동해 빅뱅 재현 실험을 한다. 실험의 목표는 '신(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찾고,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베일에 가려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와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은 어떤 관계가 있고 빅뱅과 태을(太乙)은 어떤 의미에서 상통할 것일까? 이러한 질문과 생각을 수천 년 전에 우리 선조는 이미 말해왔다. 이제 슈퍼컴퓨터와 허블망원경 등 최첨단 과학기재들이 동원되어서 찾아간 그 길에 우리 천부경이 담고 있는, 또는 천도(天道)의 천지도수(天地度數)요.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요, 태을(太乙)이며 궁을(弓乙)로 다시 궁궁을을(弓弓乙乙)이 거기, 그 최첨단 과학의 세계에서 다른 말로 그러나 같은 원리로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우리 조상님들은 그 창조의 세계를 그리고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었을까? 또 그 원리를 가지고 세상살이에 쓰이게 했을까? 그 짐승하고 구별이 없이 가난하고 척박했던 그 시절, 천부는 어떻게 문명을 만들고 거대한 문화 인류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천부경은 그래서 해석이 분분하다. 아니 많아야 한다. 이리도 해석되고 저리도 해석된다.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 근본원리는 알면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에서 적용된다. 참 신기하게도 그리된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오직 근본원리이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0과 1, 그리고 1, 2, 3, 4, 5에 이르고 다시 대삼합 6과 세상의 수 7, 8. 완성의 9에 이르고 나면 다시 1과 0이 만난 10의 세계가 열린다. 이것이다. 이것이 9중 천으로 무한 입자화 되는 입체의 세계, 삼원의 세계다. 바로 삼차원이라는 근본적인 우리 세상의 특질을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상은 누가 뭐래도 삼차원이다. 그 삼차원이 바로 천일삼, 지일삼, 인일삼의 원리요. 천이삼과 지이삼, 인이삼의 원리이기도 하다. 하나의 기준점이면서 동시에 상대자로서의 천지인은 곧 중심 입자에서 다시 입체세상의 변화를 가늠하는 가늠자가 된다. 세상의 근본원리다. 천지도수의 비밀은 그래서 천부경에 다 있다.


천부경의 수리(數理)는 그래서 온 사방 간에 쓸 수 있다. 그 방법론으로 이야기를 꾸밀 수 있었다. 전제는 천부경의 그 내용이 그 시절에는 왜? 또 어떻게 전달되고 쓰였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2. 스토리텔링…?
직역하면 ‘이야기를 말하다.’ 라고 한다면 스토리 [이야기]와 텔링 [말하다]를 구별하는 것이 먼저 일 것이다. ‘이야기’ 스토리와 ‘말하다’ 텔링은 어떻게 다른가?
스토리 story 명사 ‘이야기’ , ‘줄거리’로 순화.


스토리의 흐름
스토리를 엮다
스토리를 꾸미다
주말 연속극의 다음 스토리가 궁금하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별로인데 화면이 아름답다.
이 소설은 앞의 몇 장만 읽어 보아도 스토리가 뻔하게 보인다.


텔링 Telling
형용사
1. 효과적인, 유효한; 현저한, 뚜렷한, 인상적인; 강력한
a telling blow 따끔한 일격
2. 감정[속사정]을 (저도 모르게) 나타내는, 드러내는; 명확히 하는
a telling analysis 명확히 하는 분석


명사
말[이야기]함; 셈함
왜 스토리텔링인가?
이야기를 해주는 것. 효과적인 전달.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기억을 저장시키는 가장 오래된 수단으로 인간의 기억 저장 방식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 사고(思考)의 방법론에 근원 한다. 즉 스토리텔링은 왜, 무엇, 언제 등등 인간이 갖는 물음에 대한 답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 --------------- !
물음이다. 스토리텔링을 설명함에 앞서서 스토리텔링이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의문부호 ?다. 의문부호 ?에 대한 !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근본 이유다.


인간 객체의 하나인 ‘나’는 기억의 저장 장치에 어떠한 것을 기억하고자 할 때 단순히 ‘그것’만을 저장할 수 없다. 마치 ‘나’를 설명하면 부모님부터 고향, 하는 일 등등 여러 사회적 관계를 부가 설명해야 하듯 어떤 ‘그것’을 저장하기 위해서 그러한 설명이 필요하다. 순전한 ‘그것’만을 간직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는 !를 얻기 위해 스토리를 짠다.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있다. 이해(理解) 구조(構造)다. 왜 ?를 설명하는 이해구조가 바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스토리는 그래서 구조다. 화자(話者)인 ‘나’와 청자(聽者)인 ‘너’가 같은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구조체다. 요과적인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1) 스토리텔링과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현장에 가면 첫 번째 듣는 얘기는 물음이다.
당신 뭐야?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그러면 뭐라고 해줘야 하느냐? “나 개똥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누굽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바로 남보다 잘하는 것이다. 잘한다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효과적이고 강력한 그 구조다. 강한 설득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는 것이다. 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은 근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을 하고 있다.


2) 세상과 완벽하게 분리된 참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떠한 존재이고 어디에서 어떻게 와서 무슨 존재로 어디서 어떻게 왜 살고 있는가. 나는 ‘나’에 대한 자의식을 분해해보기로 한다. ‘나’는 ‘나’가 아닌 다른 것과 다른 ‘나’를 찾아야 했고, ‘나’는 다른 것과는 구별되기 위해 ‘나’가 속한 세상과 단절된 ‘나’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나’를 찾는다. ‘나’와 ‘나’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를 살피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설 1 :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인간에 있어서 진정한 송신자를 ‘참 나. 眞我=자의식=의식적 주체’로 보고,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사전달 또한 자의식과 신체, 감각기관, 또다른 나=의식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한다.


가설 2 : 송신자의 ‘참 나. 眞我=자의식=의식적 주체’와 이외의 것의 의사소통을 커뮤니케이션으로 규정한다.


세상과 단절된 ‘참 나’를 발견하기 위해 먼저, 나는 내 세상을 연결하고 있는 것을 끊어보기로 했다. 내가 세상과 연결된 채널들. 정확히는 내가 세상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이다. 내가 세상을 느끼는 창구를 없애면 세상과 소통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 시각 ㉡ 청각 ㉢ 후각 ㉣ 미각 ㉤ 촉각


그렇다. 감각기관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내가 세상을 느끼는 것의 원류이고, 그 오감은 내가 세상을 느끼는 채널이 된다. 이들 감각 기관들은 곧 내가 세상을 향한 표현의 채널이 되기도 한다. 시각을 없애니 보이는 것이 없어지고, 청각을 없애고 나니 들리는 것도 다 없어지고…. 그리고 후각도 미각도 촉각마저 없어지니…. 내가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들이 다 없어진 것 같다. 이걸까? 그럼 오감은 곧 내가 세상과 교류하는 채널이 되는가.


내가 세상을 느끼는 모든 감각을 없애고 나니…. 그렇게 쉽게 내가 느끼는 세상이 없어진다. 거기 ‘참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3) 오감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참 나’인가 아니면 뇌의 스냅스인가?
뇌세포와 체내 사이에 신경전달물질은 4가지로 분류된다고 자연과학자, 특히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아미노산류. 아민류. 펩티드류. 지방산류. 이러한 화학물질이 신경의 스냅스에서 분비되어 신경세포 간의 정보 전달에 관여한다. 이러한 물질들로 말미암은 화학반응으로 감정이 발생한다고 한다.


도파민(억제성으로 작용), 노어에피네피린(기쁨, 불안, 학습) 교감신경계의 목표기관에서는 흥분성으로 작용 brain과 spinal cord에 있는 뉴런들에 대해서는 억제성으로 작용한다. 이는 아민류의 신경전달물질로써 교감신경전달에 관여하며 심장과 기관지 등에 주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신경전달물질은 ‘나’의 모든 감정을 나타내고 신체에 반응하게 한다. 즉 뇌 신경 구조에서 신체구조로 물질이 전달되면서 또는 뇌 신경 스냅스의 형성으로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사유=생각하는 ‘나’ 말고 ‘신경물질체=생각하는 나’가 존재할 수 있다.


“자, 잘해보자. 잘할 수 있어!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어.”
혼자서 생각으로 나는 나를 격려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나’와 의사소통하고 있다. 즉 정신계의 ‘나’는 물질체로써의 ‘나’, ‘나’를 구성하는 각 지체와 통신하고 있다. 다른 세상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많이, 다양하게. 이러한 통신이 잘되면 신체 건강하고 반응이 제대로이며 반듯한 인간다운 인간으로 보일 것이고, 이러한 정신계의 ‘나’는 물질체로써의 ‘나’의 소통이 바르지 않다면 바로 장애가 된다. 신체장애와 정신적 장애가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이다. 바로 나와 내가 바르게 소통되지 않는 것.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는 내 신체 각 부위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의사전달을 한다.
‘팔 올려!’
팔이 올라왔다. 즉 신체와 의사전달을 하는 뇌와 그 신체는 신호체계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의식하든 안 하든. 피드백도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신체 반응은 원활하게 일어날 때와 부조화 상태일 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다. 즉 내 신체, 감각기관들은 ‘나’의 완벽한 의사전달의 수단이 되지 않고 때론 잘 못 전해지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원고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쓰면서 나의 뇌에서부터 손가락 끝으로 전달된 신경물질의 작용으로 내 손가락들은 좌판을 두드리고, 그 손가락의 끝에서 전달되는 촉각에서 ‘아, 좌판이 제대로 두들겨졌구나!’ 그 작용을 내 시신경은 모니터를 통해 쓰이는 문자로 다시 재확인한다. 뇌 속에 그려놓은, 쓰고 있는 글 그대로 손가락이 좌판을 건드려 PC의 다양한 프로그래밍 기능과 한글이라는 OS를 통해 다시 모니터에 표현된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흐뭇해하고 뿌듯해한다.


‘나’는 ‘나’와 무수히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뇌 신경 스냅스가 바로 ‘참나, 眞我’인가? 아니면 그 스냅스 마저도 채널 또는 채널을 움직이게 하는 방식, 또는 물질의 구성인가?


4) 세상의 모든 것과 내가 다르지 않다?
물질로써의 ‘나’의 가장 소구조는 무엇인가? 즉 ‘나’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물질은 무엇인가? 수분이 약 70%에 달한다는 내 몸의 근원은? 물론 분자구조 다음에 원자구조, 더 나아가보면 전자와 핵, 더 들어가면 최소입자, 6개의 입자, 또는 더 들어가 ‘힉스’라고 일컬어지는 최초 미립자, 반입자가 아닐까?


‘나’와 지금 내가 두드리고 있는 컴퓨터 자판과의 차이는? 핵과 전자…. 즉 근원적으로는 구별이 없다. 여러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 구성체의 가장 근원으로 가면 내가 지금 두드리고 있는 컴퓨터 자판과 다르지 않다. 어떤 밀도로 어떤 원소구조로 구성되었는가의 차이일 뿐 물질 근원으로서의 핵과 전자…. 그리고 핵과 전자 사이의 공간과 전자의 움직임, 핵의 인력 나아가 그들의 배열과 구성체의 수 등등 아무리 보아도 구조는 + - 그 사이의 변화다. 삼태극이다. 세 개다. 두 개와 둘이 운행하게 하는 그 무엇. 그것이 화(化)다. ‘[  ]화’되는 것. 조화(造化). 단순 양자가 아닌 조화롭게 하는 변화하게 한 그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은 세상. 물질체로써의 세상이나 ‘나’의 물질체의 특성은 같은 것 같다. 물질체인 ‘나’를 견인하고 있는 그 무엇을 포함하여.


LHC(거대 하드론 충돌기)는 두 개의 입자 빔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킴으로써 빅뱅 직후의 상황을 재연할 계획으로 만드는 것이.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 지대 지하 100m에 설치되는 길이 27㎞의 LHC는 2008년 9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물질의 기본이라는 원자는→원자핵→양성자,중성자→쿼크 렙톤 등의 순서로 더 분해된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질량의 기본이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작은 입자의 유무를 밝혀야 했다. 그러다가 ‘신의 입자’라고 흔히 불리는 힉스입자를 알게 된 것.


힉스는? 바로 에너지보존의 법칙과 질량보존의 법칙을 설명한다. 힉스 입자는 가설적인 것으로서 질량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입자다. 힉스 입자가 자신이 가진 질량을 주는 것은 아니다. 힉스 입자의 작용에 의해 질량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설적으로 설명하면, 우주 대부분은 우리가 관측 못 하는 상태의 에너지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도 공간 에너지가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그 특성이 나타난다. 공간에너지는 균일한 상태가 아니라 마치 미세한 입자와 같은 상태로 존재할 수가 있다.


힉스 입자는 일반적인 입자와 공간에너지에 의해 나타난 가상적 입자 사이에서 작용하여 입자화(양자화) 된 공간 에너지를 입자화 되지 않은 상태로 변형시킨다. (가설적 내용)
그러면 힉스 입자가 많거나 오래 있는 물질일수록 양자화된 공간 에너지를 변형시켜 일반적인 파동으로 바꾸어 다른 차원으로 흐르게 하거나 중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가설)
이렇게 되면 공간이 왜곡(양자화된 공간 에너지의 변형)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중력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질량 보존 법칙은 그대로 성립되며 힉스입자는 단지 공간 에너지에 작용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상당 부분 가설이나 현재 힉스 입자 자체도 발견된 것이 아니므로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힉스입자’를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참나, 眞我’를 발견하려는 나의 노력은 같은 목적이다. 즉 공간 속에 있는 에너지와 파동, 그리고 중력=어느 쪽으로 기울어짐과 이끌림이다. 이러한 원초적인 요소를 찾아내면 우리 세상의 근본 구조적 원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물질계와 정신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었던 시기, 물질체로써의 ‘나’와 정신체로써의 ‘나’를 연결하거나 이어지게 하는 ‘힘=에너지 구조체’를 찾고자 했다.


5) 아버지의 세상은 없어졌는데 내 세상에 변화는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천붕(天崩)인데 하늘도 무너지지 않고 슬픔을 나타내기엔 내 세상에 아무 변화가 없는, 그 낯설지만 징그러운 풍경에 놀람이 너무 컸다.


한 사람, 아니 여러 사람이 생멸을 거듭하는 이 세상. 그러나 나의 세상과 그들의 세상이 다른지 여전히 내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럼? 내가 이 세상과 단절되어도 그들의 세상에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


결국, 내가 지금 인지하고 있는 세상은 나 혼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첩되어 있지만 중첩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에서 나는 어떠한 주인이고 주인공이며 주인장인가? 그런 세상의 나는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면 세상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아니다. 세상은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한 적이 없다. 내가 행복하면 그저 세상도 행복해 보이는 것일 뿐. 내가 불행하면 세상도 불행해지는 것일 뿐이다. 나에 의해 변하는 세상의 감정은 곧 나다. 내가 곧 세상이다. 그 세상이 그러나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유지 운행되고 있으니. 사이버 세상에서 회원가입하고 로그인해서 아바타를 만들고 살고 즐기고 그러다 아이디를 접고 로그아웃하면 그 아바타의 그 세상은 없어졌지만, 그 사이버세상 여전히 돌고 있다. 내가 모르는 그 세상. 그러다 나는 다시 아바타를 찾아 그 세상으로 향한다. 거기. 영적 세상에서 물질 세상으로 나온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어떠한 까닭인가? 그 사이버세상. 2진법의 디지털 숫자들의 조합이다. 세상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없애고 또 만드는 세상이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떤 끝을 향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느낌을 단절하면 세상은 없는 것이 아닌가? 내 느낌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 오감은 이제 감각기관을 넘어서 세상과 내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임을 알게 된다. 오감이 없으면? 세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 오감은 바로 세상과 내가 커뮤니케이션하는 채널이 된다.


6) 월드와이드웹
우주 생성의 근본물질인 힉스입자를 찾기 위해 LHC(거대 하드론 충돌기)는 만들어졌다. 물질은 얼마나 잘게 나눌 수 있을까. 이를 연구하는 두 라이벌 연구소가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와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가 바로 그곳이다. 이들이 밝혀낸 입자세계의 비밀은 무엇일까.


1994년 4월 26일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FermiLab)는 자연에 존재하는 마지막 소립자인 톱쿼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톱쿼크는 1988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5천6백억eV의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기를 이용했으나 탐색에 실패했던 것. 이를 비웃듯 페르미연구소에서는 1조8천억eV의 테바트론을 이용해 쿼크 가족의 막내를 찾아냈다. 원자핵은 강입자(하드론)라고 불리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다시 쿼크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쿼크는 업(up)·다운(down)·참(cham)·스트렌지(strange)·바틈(bottom)·톱(top) 등 6개가 존재해야 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유독 톱쿼크만이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바틈쿼크가 발견된지 17년 만에 톱쿼크가 페르미연구소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톱쿼크의 발견은 이듬해 3월 3일 페르미연구소의 CDF 연구그룹과 D0 연구그룹에 의해 최종 확인됐다.


톱쿼크의 발견이 기정사실화됐던 그해 9월 CERN에서는 반입자(양전자와 반양성자)를 이용해 9개의 반원자(반수소)를 합성하는데 처음 성공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반물질 세계로의 길을 연 것이다. 또 우주의 생성과 구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중요한 열쇠를 얻은 대사건이었다. 반원자의 합성 사실은 1996년 1월 4일에 공표됐다.


반물질의 고향 CERN의 거대한 시설 - 거대 가속기에서 새로운 물질, 우주 빅뱅을 실험하고 있다.
입자물리학은 물질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입자는 무엇이며,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학문이다. 이는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기본입자들을 알아낼 수 있다면 우주의 생성에 관한 비밀이 풀리기 때문이다.


빵을 쪼개면 빵가루가 되고, 이를 다시 쪼개면 녹말분자가 된다. 녹말분자를 쪼개면 탄소원자와 수소원자들이 튀어나오는데, 이 원자들은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고, 이처럼 계속 나눠가면 결국 쿼크와 같은 입자들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입자물리학이다.


입자물리학에서 에너지와 입자, 즉 입자로 질량을 가지는 물질의 발생이 곧 창조의 신비. 세상 만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해소이다.


CERN이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는 것은 세계 각국의 대학과 산업체에서 전자공학, 기계공학 등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CERN이 자랑하는 가속기와 검출기는 이러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얻어졌다. 오늘날 인터넷의 대명사가 된 월드와이드웹(WWW)도 협력체제의 부산물이다.


인간 세상, 즉 우리 우주가 만들어지는 형성원리를 응용해 만든 가상의 작업공간 이것이 월드와이드웹(WWW)이니 과학자들이 밝혀놓고 만들어본 그 사이버 인터넷 세상에서 우리 우주의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www. 마치 우리는 이 세상의 구조와 비슷한 가상현실체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세계에 진입한 나는 그 세상을 만드는 주체이면서 그 프로그램 하에 녹아 있다. 그 프로그램에 반하는 가상의 ‘나’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원래 구조는 0과 1 즉 2진법의 디지털 숫자 세계다. ‘나’ 또한 2진법의 프로그램 언어이다. 아바타. 영적 세상에서 현상계를 본다면 우리가 사이버 공간 인터넷에서 보는 아바타 같은 것인가?


7)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다.’라는 나의 존재법칙 ‘7’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기에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인가. 아니면 커뮤니케이션 하기에 존재하는 것인가?


생각을 버리면? 사유하는 ‘나’는 기억의 스냅스를 연속선상에서 누린다. ‘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최소단위체를 분석해보면 6개 정도의 물질이요 이전에 질량체로 구성되게 하는 힉스입자를 찾고자 한다. 그 신의 입자처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오감의 방식과 ‘참 나’와 ‘참 너’의 영적 커뮤니케이션 즉 육감에 이어 원래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신의 영역, 즉 창조의 원리적 커뮤니케이션, 일명 우리 민족의 칠성적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구분해야 한다. 창조의 수리는 ‘7’이다.


창조적 수리, 7가지 요소는 다양한 복합적 작용으로 채널을 형성한다. 즉 단선 채널이 아닌 이미 복합적 감각으로 작용하는 인간 뇌 구조의 스냅스로 인한 복합적 수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미 복합적 송신 또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의식. ‘참 나’는 의식의 주체가 된다. 그 의식의 주체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진정한 송신자이다. 그 송신자의 의지는 곧 정신주체와 더불어 물질체인 ‘여러 가지 나의 감각기관=신체적 특질부분들=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기본 채널’을 통해 전달된다. 진정 완벽한 통신, 대인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채널과 간섭 없이 송신자인 진정한 ‘나’의 의식적 주체로부터 수신자인 진정한 ‘참 너’가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의 주체인 ‘나’와 감각기관의 오류와 간섭이 없이 완벽한 전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바로 이러한 까닭이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다. 메시지의 완벽성보다 수용자에 대한 이해만큼 보다도 더 송신자이자 수신자인 인간 자의식의 이해, 특히 세상과 교류하는 의식의 주체로서의 ‘참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내가 존재하는 세상의 주인공은 ‘나’다. 나는 내 시야만큼을 보고, 들리는 만큼 듣고 느껴지는 만큼 느껴진다. 그 느낌의 총체가 내 세상이다. 내 우주다. 그 우주, 내가 사라지면 사라진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세상을 만들던 내 우주는 내가 주인공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다 같은 말이다. 석가도 예수도 자신의 세상, 그 우주의 주인이 자신임을 깨달은 것이다.


다른 이들의 세상 또한 그러하리라. ‘참 그’가 보고 있는 만큼의 세상, 듣고 있는 그만큼이 바로 그가 느끼는 총체적 세상의 소리이다. 그가 주인공이다. 그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 ‘참 그’의 세상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참 나, 眞我’가 나 또는 나와는 다른 것들과의 의사소통이다. 그렇게 나는 커뮤니케이션함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비밀이다.


3. 근초고대왕…?
천부경을 위서라고 하고 환단고기를 유사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천부경의 내용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근원적인가에 대한 연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그 근본원리에 대해 이해를 하면 위서와 유사역사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위서면 어떻고 유사역사면 어떤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인데 이를 외면하는가? 이는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경우와 같다. 무궁한 하늘의 조화를 어찌 사특한 역사 왜곡 관점의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것인가?


1) 천부경의 스토리텔링
고운 최치원의 81자를 장(章)으로 썼다고 해서 천부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원리는 소설 [근초고대왕] 곳곳에 녹아 있다.


홍익인간
홍(弘) ㉠크다 ㉡넓다 ㉢넓히다 ㉣높다 ㉤너그럽다 ㉥널리, 넓게 ㉦너그러이 ㉧활 소리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활궁(弓☞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宏(굉)의 생략형(省略形)인 마늘모(?☞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로 이루어짐. 활시윗소리, 또한 宏(굉)에 통하여, 넓다, 크다의 뜻으로 쓰여짐

익(益) ㉠더하다 ㉡이롭다, 유익하다(有益--) ㉢돕다, 보조하다(補助--) ㉣많다 ㉤넉넉해지다, 풍부해지다(?富---) ㉥진보하다(進步--), 향상되다(向上--) ㉦(상으로)주다 ㉧가로막다 ㉨이익(利益) ㉩괘 이름 ㉪성(姓)의 하나 ㉫더욱, 한결 ㉬점점, 차츰차츰 ⓐ넘치다 (일)
회의문자, 물수(水(?, ?)☞물)部와 皿(명)의 합자(合字). 그릇 위로 물이 넘치고 있는 모양. 넘침의 뜻에서 더함의 뜻이 됨


인(人) ㉠사람, 인간(人間) ㉡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딴 사람 ㉣그 사람 ㉤남자(男子) ㉥어른, 성인(成人) ㉦백성(百姓) ㉧인격(人格) ㉨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일손, 인재(人才)
상형문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음

간(間) ㉠사이 ㉡때 ㉢동안 ㉣차별 ㉤틈 ㉥간첩 ㉦혐의 ㉧사사로이 ㉨몰래, 비밀히 ㉩간혹 ㉪사이에 두다, 끼이다 ㉫섞이다 ㉬이간하다, 헐뜯다 ㉭간소하다(=簡) ㉭검열하다(檢 閱--) ㉭범하다(犯--) ㉭살피다 ㉭섞이다 ㉭엿보다 ㉭차도가 있다 ㉭참여하다(參與--) ㉭틈을 타다
회의문자, 簡(간)과 통자(通字). 옛날엔 門(문)속에 月(월☞달)을 쓰거나 또는 門(문)속에 外(외)를 쓰기도 하였음. 중국(中國)에서는 집의 대문이나 방문을 모두 門(문)이라 함. 閒(한)은 방문으로 달 빛이 비치다→틈, 후에 間(간)자가 생겨 間(간)은 사이, 閒(한☞閑(한))은 여가(餘暇)ㆍ조용함으로 나누어 사용(使用)함


인간(人間)은 ①언어(言語)를 가지고 사고(思考)할 줄 알고 사회(社會)를 이루며 사는 지구(地球) 상(上)의 고등(高等) 동물(動物). 사람 ②사람이 사는 곳. 세상(世上) ③사람의 됨됨이 ④(주로, 이, 그, 저, 이런, 저런, 그런 등(等)의 관형어 뒤에 쓰여) 마땅치 않은 행동(行動)을 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여기 이야기가 숨어 있다. 홍익인간은 어떤 인간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사람인가? 사람=인(人)이니 인간은 ‘사람+@’가 아닌가? 다순히 사는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이 인간이라는 뜻이 있다. 세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무엇인가? 홍익정치, 홍익 리더, 홍익인간의 재세이화된 세상은 어
떤 세상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원리적 측면에서 근초고대왕은 그 주제의식이 천부(天符)의 본뜻, 즉 홍익인간 재세이화에 닿아있다. 근초고 여구는 자신의 변화로 말미암아 하늘의 큰 뜻을 깨달아 세상을 밝은 나라, 밝달 환국의 꿈을 꾸고 마침내 정심(正心)을 근원으로 하여 백제 사상 가장 강성했던 시대를 이룬다.


그 근초고의 백제는 단순한 백제가 아니다. 다문화 즉 동아시아 일원의 문명을 선도(先導)하는 새로운 문명자였으며 문화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이것이 근원정신 측면에서 근초고대왕이 보통의 역사소설과 다른 천부경을 스토리텔링한 이유이기도 하다.


칼과 활, 전쟁으로 세상을 얻은 것이 아니라 홍수와 가뭄으로 배고프고 병든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 것이다. 무기의 원료 철정을 화폐로 바꾸는 부가가치를 높이고 필요성을 극대화하여 부(富)와 재화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유민을 구제해서 백성을 만드는 방법은 바로 천손민족인 우리 한민족에게 하늘이 부여한 사명이 아닌가? 그러한 방법론이 바로 천부다. 그러한 길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하는 그 길, 바로 천도(天道)가 아닌가.


천부경은 시작이 아닌 시작을 얘기한다. 그 시작 자세히 보면 무(無) 글자가 무(巫) 글자라는 설도 있다.
아무리 보아도 비행기 날아가는 모습이 오늘날 무(巫) 글자와 유사하다. 하여튼 그 의미에서 시작하는 것이 시작이 아니다. 즉 소설의 시작은 그냥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갈등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것 같지 않은 시작인 동시에 고조선 홍산문화, 즉 적봉의 거대 적석총을 무대로 큰 곰 별자리와 하늘 별자리를 관찰했던 무(巫)에서 시작했으니 해석의 차이를 담아서 끝 아닌 끝, 거기 무(巫)에 대한 견해를 담고 있다.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들을 이끌어야 했던 큰 무(巫), 큰 왕(大王)으로서의 근초고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처음과 끝은 서로 맞닿아 있으니 이는 시종일관한 것이요. 곧 천부경의 무한승승의 원리를 담아낸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그것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이어져 있고 인터넷 사이버 세상처럼 중첩되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주고받고 때론 개별적 인생살이가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이루어진다. 이는 하늘 속에 있는 삼차원적인 원리가 어울리고 땅에 속한 삼차원적인 근본 원리가 내내 신물질, 신발명품, 새로운 부가가치로 백제 부흥의 원리로 작용한다. 새로운 방법론은 그래서 천지인의 어울림이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 부모에 의한 인간의 만들어짐과 그 인간에 의해 천지가 변화하고 운행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쉽게 보면 일, 이, 삼 ... 열에 이르는 숫자이기도 하고, 그 숫자를 빗대어 무예도법화 하는 등 다양한 천부 수리를 활용하고 있다. 한자와 한글의 표음 표의문자 의미를 우리 민족 고유 역사적 소설 영역으로 들여놓기도 했다. 이는 다시 하나 두울 셋으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천부경 수리(數理)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그 정신을 담으려 했고, 나아가 그 본질이 곧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실현에 있음을 누누이 곳곳에 펼쳐놓고 있다.


또한, 근초고대왕에는 역사의 반복과 환역(桓易)이 등장한다. 환역의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 역(易)을 통해 고대국가에서 통치자가 무엇을 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그 시대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2) 우리 민족의 고대사, 왜 잃어버리고 있는가? 왜 중요한가?
중국과 일본. 그들은 한민족의 상고사를 왜곡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역사를 통해 오늘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현재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우수한 민족의 고대 상고사는 민족에게 자긍심을 부여한다. 이러한 자긍심은 현대 사회에서도 발전의 모티브가 된다. 이는 오늘날 현재의 주도권을 다투어야 하는 세력의 형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도 강력하게 역사 왜곡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우수한 민족에 대한 열악한 민족의 왜곡은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역사 바라 찾기는 매우 중요한 일이건만, 우리는 밖에서뿐 아니라 안에서도 치열한 기득권 세력에 의해 우리 역사의 왜곡을 경험하고 있다.


고대사는 어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현재의 일이다. 고대 상고사로부터 이어져 오는 민족의 정신이 바로 오늘날 우리 민족 발전의 에너지가 되어왔다. 이제 남의 뒤를 쫓아가면 되던 시대에서 남들을 이끌어야 가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 민족 자긍심의 발로인 민족 고대사에 대해 냉철하고도 철저한 고증과 검진 나아가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제2대 조선총독으로 사이토(齊藤實)가 와서 문화정치를 표방한다. 이때 발표한 ‘교육시책’에서 사이토는 이렇게 발표했다.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 등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아버지와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跡)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 일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이다."


이러한 근본정신 속에서 일제는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약칭 조선사편수회)를 만들고 1938년까지 35권에 달하는 『조선사』를 편찬했다. 진짜 목적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없애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상고, 삼한시대부터 다룰 듯 거론하다가, 차츰 연대가 낮춰지고 다시 삼국 이전이 됐다가 결국은 통일신라 이전부터 다루는 것으로 결정되기에 이른다. 조선사 편찬을 위해 쌀 10만 가마니 이상의 당시 돈을 썼다.


토인비는 “어떤 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말살하는 것이 식민주의자들의 철학이다.”라고 했다. 일제는 36년 동안의 식민통치 시절 우리나라 역사를 철저히 파괴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고서 모든 서적을 일제히 수색했으며, 다음 해 1911년 말까지 1년 남짓 동안 무려 20만 권의 서적을 강탈해갔다고 한다. 역사책이 최우선적으로 압수되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51종 20만 권 정도를 가져갔다.”라고 한다. 사료수집가 이상시 씨는,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관련 기록을 중점적으로 약탈해 갔다는 사실을 신문지상에 발표하여 일제의 무도함을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낸 바 있었다. (1985년 10월 4일 자 조선일보).


3) 외세에 의한 왜곡에 부응하는 민족 내부의 문제
우리 역사에 대한 핵심문제는 외세에 의한 왜곡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다 인가? 아니다. 외세에 의한 왜곡보다 더 큰 문제가 바로 우리 민족 내부에서의 부응이요, 동조요, 기득권 지키기다. 특히 역사학자들과 문인들의 놀라운 활약(?)은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불편하게 한다.


단군은 신화다. 이런 문구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곰의 후손이다. 이런 정신 가치관을 누가 심어왔고 누가 이어왔는가?


역사학자 이병도는 이마니시류(今西龍))의 수서관보가 되어 ‘조선사 편찬’이라는 우리 역사 왜곡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 문교부 장관까지 지냈다. 일제 식민사관 수립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그 식민사관을 해방 후까지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학계에는 직접간접으로 이병도의 제자 아닌 사람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 기득권층이 문제다.한국 역사는 주체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 의해서 유지되었다는 반도사관론이 팽배하다. 이 반도사관에 더해진 것이 바로, 증거가 있어야만 인정한다는 식의 소위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을 채택해 우리 역사 왜곡을 공고히 하고 있다. 사료를 빼앗고 불태우고 나서.


1920년대 ‘조선사편수회’의 학풍을 이어받은 이병도는 나중에 고대사 연구에 “일본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바 적지 않았다.”라고 스스로 회고했다. 더욱이 이병도는 죽기 직전,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반성문을 발표한다. 그간 최태영 박사, 송지영 KBS 이사장,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 등의 설득으로 과거 자신의 역사관을 크게 수정하여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 자에 논설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를 바라보던 제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어떤 이는 ‘노망드셨네!’ 하며 비웃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기 650년부터 신라는 당나라 고종의 연호를 빌어다 썼다. 통일신라 때에도 당나라의 연호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 후 고려 시대는 송나라의 연호를, 조선 시대에 와서는 명나라, 청나라의 연호를 쓰는 것이 국시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쓰는 학자들이 우리의 주체적 입장에서가 아닌 다른 관점이 두드러지게 된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 언제부터 우리는 중국을 중국이라고 했을까? 중화주의에 물든 사대주의 역사관을 우리는 왜 가지게 된 것일까? 친일파 사학자들의 주장과 더불어 교묘하게 실로 오랫동안 주입된 모화사상 사대주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우리 역사의 왜곡과 폄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4) 현존하는 가장 오랜 역사서 「삼국사기」(1145년), 역대 최고의 사대주의 사서마저도
고려 중기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데 앞장섰던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썼다. 그는 고구려가 수나라와 전쟁을 “아(我)가 교오불공(驕傲不恭)해서 제장토지(帝將討之)라.”고 했다. 고구려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불손하여, 임금께서 장차 토벌하려고 했다. 이 부분은 누가 보아도 중국에 편중된 역사 서술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면서, 우리가 교만하고 오만해서… 는 식으로 쓸 수는 없다.


신라 650년 진덕여왕 4년에 당나라 고종의 ‘영휘’라는 연호를 처음 쓴 부분에 대해서도 주석을 달기를, “옛날에 법흥왕이 연호를 스스로 썼는데, 아, 편방의 소국으로서 왜 연호를 쓰나? 당 태종이 꾸지람해도 연호를 고치지 않다가, 650년에 고종의 연호를 쓰니, 허물을 능히 잘 고쳤다고 할 수 있도다.” 이런 식이다. 이것이 국보로 보존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사대주의 책이라고 비판받아도 피해 갈 수 없다.  이 삼국사기에 보면 “진덕왕 3년(649년) 정월에 처음으로 중국의 의관을 쓰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모든 관직이나 명칭에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복장제도를 바꿔 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한민족의 가치관과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고, 오직 중국에서 뿌리와 사상을 찾으려는 중화 사대주의 정신의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이리 왜곡을 한다고 해도 진실을 다 숨기거나 왜곡하지는 못한다. 삼국사기에서 그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거기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알 수 있는 위대한 백제가 숨어 있었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은 고구려·백제 전성 시에 강병 백만이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를 흔들어 백제가 중국의 큰 좀[두]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高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오나라와 월나라가 어디인가? 유, 연, 제, 노 나라의 영역을 그려보면 백제에 가장 박하다는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대학자가 제시한 그 기록을 따라 대륙에 색칠하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오, 월나라는 양자강 일원을 장악했고 제나라는 산둥이 근거이며 연나라는 요서, 화북 지역이 아닌가? 그런데 가장 박한 삼국사기의 통일신라 학자의 말을 지도로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강역도를 중국 지형도와 참고하면…. 거기 오나라 양자강 중상류에 난공불락의 성이 있다. 천 년 넘게 내려온 그 이름이 백제성이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책 속 한쪽에 숨겨져 있는 대백제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식에서 출발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역사 전문가들은 발견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사학계에만 그럴까? 문학은? 문인들은 어떠한가? 왜 우리는 삼국지와 초한지, 수호지에 열광하는가? 왜 서울대 대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1위가 삼국지여야 하는가?


5) 찌질이 백제와 위대한 백제, 그 진실은 무엇인가?
TV, 미디어 매체의 역사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항상 궁금한 것이 있다. 백제는 왜 그리 못 났을까? 왜 그리도 한 많은 것만 있을까? 겨우 서동요만이 신라 선화공주를 얻어오는 그 얘기를 빼고 나면 참 민망한 스토리들이다.


KBS TV 역사대하드라마 [근초고왕]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져 온다. 과연 그랬을까? 그렇게 아비가 자식을 어미가 배다른 자식과 남편을. 그리고 오직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집권층을 믿고 백제가 그리도 오랜 세월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기록들은 어디에 있는가? 백제에 가장 박한 삼국사기에서도 비류왕 때 계속 가뭄을 걱정하여 백성을 위무하고 곡식을 나눠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 왕의 아들로 백제 최대 전성기를 만들었다는 근초고왕이 과연 드라마에서처럼 그랬을까?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 어떤 사료에도 없는 창작품인 드라마 근초고왕은 왜 그리도 찌질한 백제를 그려야 하는가?


왜 백제만 패망한 역사인가?
근초고왕 다음에 광개토대왕이고. 2012년 태종무열왕을 방송한다는 계획을 보면서 왜 백제 이야기는 위대할 수 없는가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시절 백제는 어떠했을까?


백제는 특히 근초고 시대 백제는 위대한 문명국가였다. 칠지도 하나만 보아도 최강의 제련 제강 기술과 금을 상감하는 특수합금 형상 기술 등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당시 최고급 문명을 알 수 있다.
백제는 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소금의 주산지다. 당시 소금은 국력이었다. 소서노의 아비 연타발부터 염전원인으로 불리는 소금상인이었다. 수리농업 기술을 가진 최대 곡창지대와 야철터 즉 철기시대 철광생산지를 갖고 있었으며 삼(蔘)과, 양잠 밭이 널려 있던 경제 대국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다문화 국가였다. 한국의 고대국가 중 국제화에 가장 접근한 것은 백제다. 그것은 근초고 시대에서 최전성기를 이룬다. 백제는 바로 고대 한류의 중심지였다.


동진(東晋)의 왕조를 보면 근초고 시절 제12대 애황제(슬플 哀: 재위 361~365), 제13대 폐황제(폐위할 廢: 재위 365~371), 태화[太和], 제14대 태종(太宗) 간문황제(簡文皇帝) 재위 371~372)이다. 시호에 슬픈 애와 폐위할 폐가 있고 다시 창업 군주 태종이 ‘편지 쓴 황제’로 나온다. 이는 근초고 시대에 동진과 백제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오나라 월나라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동진의 황제 이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삼국사기에 기록된 최지원은 동진이 장악했다는 오나라 월나라를 백제 최전성기의 영역으로 표출하고 있는가?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잘못 배웠다.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 가장 백제에 야박(?)한 삼국사기 백제 이야기를 뼈대로 중국의 송서(宋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통전(通典),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백제 영역을 근거로 지형도를 바탕으로 강역을 만들었다. 만주원류고에서 중국 동해안 일원이 다 백제라 하였는데…. 일명 정통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자료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 내의 한강 이남으로 백제를 축소하고 기타 자료를 부정하는 일제 강점기 치하의 역사인식을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다.


정통 사학계 말대로라면 2010년 10월 말. 북한강 최상류인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에서 발견된 3~4세기 백제 유물, 도시 집터와 병마구, 등자 등등 그 많은 유물은 어찌 된 일인가?


기존 역사학자들의 반도사관론에 입각된 주장은 한강 이남에만 국한된 백제다. 그러면 한강 최상류. 그것도 추가령 계곡 그 길을 따른 그 다량의 백제 유물 발견으로 그동안 반도사관의 사학계 주장이 허위였음이 여실히 증명된다. 재야 사학자들은 오래전 원산방면으로 원산시 북쪽 문천시에 속고봉(速高峰), 속고산(速高山 722m = 신증동국여지승람 ; 所依達山, 즉 쇠달산) 같은 백제 초고대왕의 별명인 속고왕(速古王)의 이름을 딴 지명에 주목하고 있었다. 함흥시 동쪽에는 초고대령(草高臺嶺)도 있다.


3~4세기 유물이 발견되고 한강 이남 백제만을 주장하던 일명 정통 역사학자들의 반성이 있었나? 아니 다시 침묵과 외면, 그리고 망각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 그러나 역사소설 근초고대왕 책 지도에서는 자신있게 북한강 최상류는 원산 함흥으로 가는 길목, 근초고의 백제 영토로 그려져 있다. 전략적으로 백제 최강성기 때 근초고라면 반드시 고구려와 신라의 군사적 교류를 막았을 것이고 그 길목 중의 길목인 원산 함흥을 노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작가적 관점은 가장 오랫동안 전승 되는 지명 연구를 빌어 근초고의 백제영토에 그 지역을 편입시킨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사료를 바라보는 상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고 우리 역사계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양심이다.


6) 위대한 백제의 꿈, 환(桓) 동이족의 나라
역사소설 근초고대왕의 시작은 적석총이 있는 홍산이다. 그 이유는 바로 위대한 백제인의 꿈이 환한 나라 환국(桓國)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홍산문명은 고조선 문화이며 우리 동이족 문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거기 환국이 있었다.


먼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사학계에는 “반도적 시각(半島的 視覺)”과 “반(半)의 반도적 시각(半島的 視覺)”이 횡행하고 있다. “한반도”라는 말 자체가 반쯤 섬이라는 대륙의 냉소적 관점이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우리 스스로 그것을 두 동강 내고 남한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랬을까?


고려 후기 때 편찬된 일연의 『삼국유사』(1281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조선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한 구절에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의 환국에 대해 주를 달면서 환국과 불교의 환인이 글자가 비슷해 보이므로 ‘위제석야(謂帝釋也)라’ 하여 환인천제의 환국을 국가가 아닌 불교의 수호신 제석천 (帝釋天, 釋帝桓因陀羅)으로 바꿔놓았다. 다시 말해서 고려의 강산을 불국토로 만들려고 「고기(古記)」 원문에 없는 말을 제멋대로 갖다 붙인 것이 되었다. 이 왜곡은 철저히 일제에 의해 자행된다.


일제의 뜻대로 한국 고대사를 주물렀던 주모자였던 당시 교토대 강사 이마니시 류(今西龍:후일 경성제대 교수)는 이병도 등과 더불어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의 조선사를 제멋대로 왜곡했다.


‘조선사편수회 회의록’을 통해,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가 ‘삼국유사’의 단군고기 중에 ‘昔有桓L’(석유환국)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昔有桓因’(석유환인)이라고 고친 사실이 드러났다. 이마니시류가 소장하고 있던 1512년의 삼국유사 정덕본에는,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그 나라에 높은 서자 벼슬을 하는 환웅이 있었고 마지막 환웅 대에 단군이 나타나 조선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었다(현재 일본 천리대 소재,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그러나 이마니시류는 변조된 내용을 경도제대 (경성제대를 뜻함) 영인본이라고 하여 발표한다. 그리하여 현재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판본에는 환국(桓L)이 환인(桓因)으로 변조되었고,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뿌리 역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이는 원래의 환국 시대가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것에 반해, ‘桓因’이나 ‘帝釋’으로 바뀐 것은 불교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며, 시대적으로도 맞지 않은 명백한 조작이다. 지금으로부터 4336년 전에 세워진 단군의 고조선이 3000년 전의 불교의 부처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이전의 사실이라는 점, 환국은 불교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점 등에서 환인 제석은 맞지 않다. 이를 기존의 역사학자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근초고대왕은 그 환국을 모델, 지향점으로 하여 쓰여 있다.


세계사에서 내해적 역사 관점은 유럽의 지중해 역사와 등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중해와 못지않은 인구적 또는 지리적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는 황해(黃海)는 찬란한 역사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역사적 학설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유물이 증명한다. 고조선 청동기 초기 철기 유물은 황해 일원에 폭넓게 퍼져 있다. 유럽적 용어인 극동(far east), 즉 황해 일원은 찬란한 청동기, 철기 문명을 갖췄고 더 많은 인구가 거주했고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있었다. 자연적 조건은 물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성숙한 토대를 갖고 있었는데 내해문명이 없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대한 백제는 지향점이 있다. 내해환국(內海桓國). 바로 황해 바다를 누빈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꿈을 담고 있다. 산둥반도에서 한반도 서해안까지 편서풍과 황해 해류를 타고 넘나들면 빠르면 3일에서 7일이면 넘나든다. 그 물품과 인력을 만약 육지로 건넨다면 최소한 한 달에서 두 달은 넘어야 할 것이다. 왜 지금 우리는 그 뱃길을 이용하고 그 시절 우리 조상은 그 뱃길을 이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한반도 내에서 만의 생각으로 백제에서 신라 경주로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험한지 수천 명의 군사를 보내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이지 나제통문을 지나면 여실히 알 수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사실을 우리는 외면한다. 백제는 다문화 다인종 사회였다는 점에서 해류를 이용한 해운강국, 해상강국 백제를 읽게 된다.


흔히 중국의 역사를 북방민족과 한민족 간 투쟁의 역사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동천(東遷)의 역사로도 볼 수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의 수도는 시안이었고 원(園)의 수도는 장안이었다. 그 이후 북경 등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 도시들은 중국 서쪽의 도시들이다. 동쪽에는 자연조건이 훨씬 좋았고, 그 결과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수도를 서쪽에 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의도적으로 그 시대의 동쪽의 역사를 숨겨 역사적 공백기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산너머 동쪽에 있던 동이족의 나라, 환국(桓國)
동서남북. 우리는 방위조차 잘 모르는가? 서융, 북적, 남만, 동이... 그 동이들이 사는 곳. 산너머 동쪽. 거기가 동이족 본거지가 아닌가? 산동(山東), 거기 제수(濟水)가 있고, 제수 남쪽 제남(濟南)이 있으며 제(齊)나라가 있었고 그 제(齊)나라 패자의 이름이 환공(桓公)이었다.


백제의 8대 성씨, 대륙의 족보만 찾아보아도
중국정사인 수서에 보면 백제에는 다음과 같은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苗氏 協氏)" 8개의 큰(大) 성씨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상한 점은 현재 이들은 한반도에는 없고 거의 대륙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양자강 중상류에 있는 난공불락의 성(城) 이름은 백제성인데... 남조 역사 왜곡 시작
최근 발굴된 유물 싸고 팽팽한 한국과 중국 학자들의 문답이다.


“백제 도읍인 부여성 바깥에 쌓은 나성을 동아시아 최초로 추정하지요.”
“무슨 말씀인지… 중국 남조에도 도시 외곽 성터는 이전부터 있었어요.”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중국제 항아리 안에 복어 뼈가 있었어요. 복어 젓갈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도 있어요. 저장성 사오싱(소흥)에서는 옛적부터 복어 젓갈을 삭혀 먹었지요.”
“그럼, 중국에서 젓갈도 수입했을 가능성은…”


남조 유적은 이미 10년 전부터 국내 학계에서 답사 교류를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갈 때마다 ‘백제 고유의 문화재가 하나씩 없어진다.’라는 농을 던질 정도로 백제 유물과 빼닮은 막대한 육조 유물·유적들이 잇따라 쏟아지는 상황이다. 2000년대 초부터 난징의 도시 재개발로 옛 유적에 대한 발굴이 확대되고 있는 까닭이다. 워크숍에서도 난징시박물관 연구원 왕즈가오가 시내에서 처음 확인된 옛 남조 왕성의 성벽 윤곽과 함께, 한국 고대 삼존불상과 똑 닮은 불상의 출토 경위를 공개해 분위기를 술렁거리게 했다. 백제 문화와 잇닿는 와당, 시유 도기, 정원석, 절터 등은 한국 학계의 관심 덕분에 중국 쪽에서 뒤늦게 연구에 나서게 됐다고도 한다.


양자강 대운하 길목인 난징 인근 양저우와 장두의 박물관 답사 또한 새 발견의 연속이었다. 무령왕릉 출토품과 똑같은 자루 달린 다리미와 백제 금동대향로와 기본 꼴이 같은 박산 향로, 닭머리 흑유병, 청자 사발 등을 볼 수 있었다.


거기, 양자강 중 상류에 난공불락의 성 이름이 천몇백 년을 넘게 이어져 온 백제성이 있다.


여왕국의 비밀과 일본 대화(大和)정부의 시조, 일본무존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체격과 용모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계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근초고대왕은 비류왕 시대에 일본에 가서 야마토타케루, 일본무존(日本武尊)이라는 뜻이다. 또는 왜국의 건국자로서 왜건명(倭建命)이라고도 했다. 근초고대왕이었던 일본무존의 빈 고분 기록에 의하면, 295년에 태어나서 333년에 일본을 떠났고, 374년까지 80세를 살았다. 일본무존의 고분은 일본무존이 백제로 떠난 뒤에 만들어진 빈 고분으로서 인덕천황기에도 확인된다.


일본의 역사에 있는 여왕국의 비밀과 도래인(渡來人) 이라는 방어적 시각의 표현에서 일본의 역사학자들의 고난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슈, 웅본성과 박달항 등 일본 내에 있는 환국의 흔적을 이어 대륙과 한반도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원에서 펼쳤던 위대한 백제인의 내해환국의 큰 꿈을 바라본다.


7) 왜 지금,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여는 위대한 백제의 꿈인가?
삼국지를 보면서 유비 제갈량, 관우, 조조 등 그 영웅들 이야기에 가슴 설레며 중화사상에 저절로 빠져들던 시절이 있었다. 삼국지에 해전이 없다. 동이(東夷)가 대륙 동쪽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적벽대전이다. 수십만은커녕 수만 척 배도 정박할 수 없는 그런 적벽대전에서 대전쟁이란다. 나관중의 상상력이 조금 과하다.


중화 입장에서 동북공정의 한계 때문에 이제 중국에서는 단군을 자신의 조상에 편입시키고 고구려 백제 신라를 지방정부 역사라고 하기 시작한다. 고대 문명의 유물들을 발굴하려면 단군 고조선 시대와 삼국시대를 편입시키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이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뻥 이라도 쳐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역사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조차 터부시하고 있다. 왜 이러고 있는가? 왜 우리는 우리 조상을 멸시하고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가? 왜 패망한 역사, 궁중 암투에 빠진 이야기에 허우적거리게 하는가? 조상이 멸시당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 황실 서고에 약 30만 권의 우리 민족의 고서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더 숨기지 않고 꺼내어 동아시아의 역사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나관중의 삼국지처럼 우리 이야기가 동아시아 일원에 퍼져야 한다. 그래야 그 스토리를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이 파헤쳐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동아시아의 종주국이 된다. 숨길 수 없다. 우리 문화적 유전자에 도도하게 흐르는 단군 조선과 동이족,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조차 모르고 그저 헐겁게 배운 것으로 덮으려 한다. 왜곡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인 정통적 관점인가? 강원도 원천리 유적처럼 파헤쳐서 밝혀지면 그것이 비로소 정통 역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한반도에 없는 백제 8대 성씨의 족보를 바탕으로 뒤져만 보아도 대륙백제의 진실은 쉽게 영역도와 함께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도들은 뭐 하고 있는가?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 역사, 그 정신을 지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


History는 ‘Hi+story’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읽히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아져 높아지면 역사가 된다. 삼국지연의를 바라보는 우리 청소년들은 그것이 마치 위대한 역사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 시대 우리 문인, 대가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무력이 중심인 시대 경제전쟁과 동아시아를 공동체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총력전으로서의 국력 신장을 다루고 이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중국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 부류와 분명히 차원이 다른 우리만의 역사다.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 영웅 스토리를 만들어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삼국지에 열광할 것인가? 언제까지 초한지를 읽으며 모화사상, 사대주의에 물들어야 하는가?


이제 정치적 의도가 있던 없든 간에 문화 콘텐츠에서 신라 중심의 협소한 사고에서 벗어나, 황해 바다를 누빈 위대한 백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우리 역사의 위대한 영웅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 위대한 백제 이야기는 그래서 위대한 환국에의 꿈이 담겨 있다. 그래야 단순히 근초고대왕만의 역사가 아닌 위대한 백제인들 나아가 내해환국을 같이 살았던 백제인들, 신라인들, 고구려인들과 현재의 동아시아인들 모두에게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근초고는 싸움만 잘하는 왕이 아니다. 그런 왕이 아니라 천 수백 년을 훌쩍 넘는 백제성 백제현 백제향이라는 이름을 남긴 위대한 왕이었다. 바로 하늘. 2009년 양자강이 태풍 두 번에 넘쳐났다. 그때 양자강이 넘쳐서 문명화된 지금 시대에 이재민이 9천만이 발생했다.


근초고 시대에는 그런 홍수, 태풍 두 번 안 발생했을까? 왕조는 유지될 수 있을까?
삼 년 가뭄에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임금 즉 왕의 할 일 중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늘의 뜻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하늘 뜻. 바로 천재지변, 가뭄과 홍수가 나는 것을 아는 것인데 역(易)이 바로 그 원리다. 천부의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의 사이클, 반복의 데이터베이스. 그 비밀. 그 수리. 언제 다시 가뭄이 오고 홍수가 나는 것인가를 아는 것. 그것으로 세상 사람들을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되도록 바로 서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근초고가 큰 왕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천부경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방법론이며 소설 근초고대왕의 원리다.
오늘날 우리는 홍익인간 재세이화에 있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떻게 해야 홍익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가? 어떤 이가 홍익 리더요, 지도자인가? 어떤 것이 재세이화한 세상인가?
그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그 방법론인 천부경, 천지도수. 수리법으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역사소설 [근초고대왕]이다.


환율전쟁, 경제전쟁이 세계와 아시아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대한민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이 군사 강국 영토대국이 아니고 동아시아와 세계에서의 균형자 역할로 볼 때, 과연 그런 문화 강국, 해상강국의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영웅 모델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있다. 우리에게 있었다. 소설 근초고대왕에 대한 구상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002월드컵유치엽서 보내기 범국민운동을 기획하여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앞에서 120만 장의 그림엽서 전시와 홍보활동에 참여했었다. 2002 월드컵이 집행위원들의 합의로 한일 공동으로 개최되자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한·중·일 동아시아공동체 시대가 예감되었다. 그러한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근초고대왕은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 나아가 대만과 동아시아 일원을 경략하는 데 성공한 백제의 대 정복군주였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날조에 대응하여 새로운 동아시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역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대백제 최대 전성기, 근초고를 꺼내 우리 민족의 대 영웅으로 그들에게 또 세계에 제시해야 했다.


왕이 아니라 대왕이다. 지방왕과 제후를 거느렸으며, 백성을 넓게 품은 큰 왕이었다. 중국 역사책들을 보아도 백제 땅에는 중국인, 가야인, 일본인이 섞여 거주한다고 했다. 백제의 문화는 그래서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피워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무력이 난무하던 시대. 서로 살리는 상생의 문화와 교류의 백제는 이제껏 나약함과 무력함이 아닌 화려한 문화선도국가다. 이제 세계 1등 국가, 선진국으로 도약하여 지향해야 할 우리의 비전은 한민족 인류문화 선도국가가 아닌가? 근초고는 1700년 전 동아시아 백성을 아우른 큰 왕이었다. 그런 지도자를 우리는 만들어야 한다.

 

○ 일시: 2011년 5월 3일 (화) 저녁 7시 ~ 9시
○ 장소: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전화: 070 -7126 -4720)
○ 강사: 윤영용 (미래문화연구소 대표)
○ 주제: [천부경의 스토리텔링. 근초고대왕]
○ 주최: (사)국학원(
www.kookhakwon.org)
○ 문의: 국학원 학술담당(010-7299-6043)
○ 참가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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