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고국 환웅의 ‘해’ 사상과 세상을 밝히는 지도자상
안동대학교 임재해 교수
1. 건국시조의 이름과 ‘해’를 뜻하는 상징
고조선 건국본풀이의 주인공을 일컫는 환인천제(桓因天帝) 또는 환웅천왕(桓雄天王)의 호칭은 모두 하늘과 연관되어 있다. 환인제석(桓因帝釋)이라 했을 때도 환인은 제석천의 하늘을 뜻한다. ‘환인+천제’ 또는 ‘환인+제석’, 그리고 ‘환웅+천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를 다스리고자 동경하는 천상적 존재이다. 한자말 ‘천제’나 ‘제석’, ‘천왕’이 뜻으로서 하늘의 황제 또는 하늘세계의 왕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환인’이나 ‘환웅’은 모두 우리말 소리값을 한자로 나타낸 이두식 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천제와 천왕이란 말이 모두 하늘의 제왕을 서열에 따라 나타낸 한자말인 것처럼, 환인과 환웅도 같은 뜻을 우리말 소리값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환인은 ‘한닌’, ‘한님’ 곧 하늘님, 하느님, 한울님을 뜻하고, 환웅은 하눙, 하눌, 하늘, 곧 한울을 뜻한다. 환인과 환웅의 후손들은 해를 숭배하는 한(桓·韓) 부족이다. 한족은 ‘한울님’의 아들이나 자손이라고 생각하며 해와 밝음, 빛, 동녘을 숭배한다. 따라서 환인과 환웅의 ‘환’은 곧 환한 빛을 뜻하는 광명의 하늘이자 밝은 우주를 일컫는다.
우주로서 하늘은 늘 밝지만 땅은 가끔씩 어둡다. 우주에는 밤이 없지만 지구에는 밤과 낮이 있다.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 바로 한울님이고 하늘을 밝히는 주체가 한울님이다. 한울님은 천제(天帝)로서 하느님이자 환인(桓因)으로서 천신을 나타내는가 하면, 천체로서 물리적 대상인 태양 곧 해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늘과 하느님의 문제는 건국시조본풀이에서 한층 구체적으로 다루어지므로, 본풀이 내용을 따라가며 검토할 필요가 있다.
환웅천왕이라 일컫는 것처럼, 천왕 환웅은 사실상 천신이자 하느님이며 햇님이나 다름없다. 하느님을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 일컬어 유일신을 일컫는데, 한국 문화문법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하느님이라고 하면 유일신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것도 잘못이지만,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따님과 대조를 이루면서 천지관계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존칭어로서 땅의 지신과 하늘의 천신을 나타내지만, 유일신으로서 하느님을 일컫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라는 수사에 ‘님’을 붙여서 만든 우격다짐의 조어일 따름이다. 하나에 상대되는 둘과 셋의 수사를 두고 ‘두님(둘님)’이나 ‘세님(셋님)’과 같은 말이 성립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열님’과 ‘온님’도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하나’라는 수사가 ‘님’과 같은 명사와 결합할 때는 ‘한’으로 바뀐다. ‘하나+사람’, ‘하나+마을’, ‘하나+나라’는 말이 되지 않지만, ‘한 사람’, ‘한 마을’, ‘한 나라’는 말이 된다. ‘하나국’은 말이 안되지만 ‘한국’은 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같은 문법적 논리로 ‘하나+님’은 말이 안 되지만, ‘한+님’ 곧 ‘한님’은 말이 된다. 한님은 곧 하느님이자 한 분이신 님이다. 그러므로 ‘환인’은 ‘환닌’으로서, ‘한님’의 우리말을 한자음으로 음차한 이두식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환웅도 하늘 또는 한울의 음차로 볼 수 있으며, 굳이 ‘환’자를 쓴 것은 ‘환하다’, ‘밝다’는 광명의 하늘, 해의 하느님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한 것은 환인과 환웅 이후 부여와 고구려, 신라, 가야에 이르기까지 시조왕에 대한 이름이 모두 해와 빛의 밝음을 나타내는 일관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해의 밝은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은 신시고국의 환웅에서 머물지 않고 고조선의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과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시조까지 이어진다. 단군왕검은 환인천제나 환웅천왕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어 ‘단군+왕검’으로 분석된다. 단군을 뜻하는 ‘단(檀)’의 박달나무는 ‘밝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단군은 ‘밝달족 임금’이자 햇님임금으로서, 우리 민족을 두고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도 그 내력을 여기서 찾는다. 환인과 환웅의 ‘환’이나 단군의 ‘단’은 모두 밝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뜻의 다른 이름을 일컫는데, 이것은 중복에서 오는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일 뿐 후대에까지 해를 뜻하는 시조이름으로서 지속된다.
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漱)와 그 아들 해부루(解夫婁)는 해씨(解氏) 성을 지녔다. 이 성은 곧 해의 밝은 빛과 뜨거운 열기를 상징한다. 해모수는 천제로서 ‘해모습’ 자체이며 아들인 해부루는 곧 ‘해불’로서 태양의 뜨거움을 상징한다. 천제 해모수는 천제 환인과 같은 뜻의 이름이다. 환인과 환웅이라는 이름이 해의 밝은 빛을 소리값대로 나타낸 것이라면, 부여의 해모수와 해부루는 해의 이름씨를 그대로 살려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밝다는 뜻의 환인이나 환웅, 단군과 구분하기 위해 해모수 또는 해부루라 했을 뿐 천제나 천왕이라는 햇님 곧 하느님을 나타내는 뜻은 같다. 다시 말하면 신의 정체성은 같으나 다른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으며, 여러 이름으로 불러야 기도와 제의의 영험이 있다는 것이다. 왕명의 경우도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처럼 가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2세 또는 3세라고 일컫기도 한다.
신화나 제의에서 하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신은 어떤 신이라도 호명되는 순간부터는 그 이름에 의해 사실(real)이 될 뿐 아니라 실제(reality)가 된다. 고대에는 이름과 그것을 지칭하는 실체가 동일시되었다.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곧 존재의 소멸을 뜻한다. 따라서 이름이 지니는 상징과 의미 사이의 잠재력은 결정적이다. 적절한 호명의 자리에서는, 물체와 그 이름, 그리고 구체적 대상과 이미지 사이에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상징이나 이미지로 호명하거나 실체와 물체로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사실 같은 존재를 일컫는 것이다.
해를 해라는 실체의 이름으로 일컫거나 밝은님 또는 한울님으로 일컫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을 어떻게 부르고 건국시조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가 하는 것은 그 정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서 내려온 건국시조의 이름이 곧 그 정체를 자리매김하는 의미이자 이미지이며 상징이다. 건국시조인 한울님 곧 태양을 신시고국(神市古國)에서는 환인과 환웅 또는 천제와 천왕으로 일컬었고, 고조선에서는 단군으로 일컬었으며, 부여에서는 천제와 천제의 손, 또는 해모수와 해부루로, 고구려에서는 동명(東明)과 유리(琉璃)로 일컬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천제 해모수 곧 해의 아들이기 때문에 동명왕이라 하였다. 동명은 곧 ‘동녘의 밝은 빛’ 곧 해를 뜻하는 말이다. 동명왕의 아들 유리왕자 또한 햇빛을 상징한다. 유리는 빛을 반사하는 기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모두 해와 관련된 이미지로서 빛, 밝음, 뜨거움, 붉은 색, 불, 큰 알 등을 나타낸다. 이처럼 건국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강림할 뿐 아니라, 이름이 제각기 다르되 하늘의 해를 상징하는 뜻을 지녔다고 하는 점에서 모두 같은 존재이다. 결국 건국시조의 이름은 신시고국,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까지 한울님 곧 해를 상징하는 뜻을 지녔다. 그러므로 그 동안 건국시조를 일컬어 천손강림이라 했는데, 천손이 아니라 사실은 천제 자체인 해님, 또는 햇빛을 상징한 존재라고 해야 더 적절하다.
그 뿌리는 신시고국의 시조인 환인에서부터 비롯된다. 환인은 ‘환한 님’, ‘하느님’, ‘밝은 님’을 나타내는 말인 까닭에 ‘태양’ 곧 ‘해’를 뜻하는 것으로 추론되어 왔다. 따라서 환인 = 천제 = 제석은 같은 대상을 나타내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정한 종교적 세계관에 따라 특정한 소리값 또는 상징을 끌어와서, ‘주님, 하느님,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 야훼, 알라’ 등으로 일컫는 까닭에, 마치 서로 다른 이름처럼 인식되지만, 사실은 하느님을 일컫는 같은 뜻의 말인 것과 같다. 따라서 ‘환인’을 일컫는 ‘천제’는 곧 상제님이자 하느님이며, 물리적 실체와 관련해서는 태양 곧 해로서 ‘환한 님’이자 ‘밝은 님’인 ‘빛’일 수 있다. 그러므로 환인은 사실상 천제이자 태양신으로서 하느님을 일컫고 섬기는 ‘빛 사상’, 곧 ‘광명사상’의 원조라 하겠다.
하늘과 해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 한정되는 실체나 상징물이 아니다. 세계 전체가 공유하는 대상이자 신격이다. 이런 인식으로 보면 해님인 한울님의 건국은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환웅의 신시고국은 바로 인간세상 전체를 다스리는 나라를 상징한다. 따라서 환웅천왕은 세상에 머물러 살면서 이치로서 교화를 한 까닭에 재세이화(在世理化)했다고 한다. 이때 ‘재세’의 세상은 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는 인간세상을 포괄하는 것이다.
신시고국 시조인 환웅이 실제로 하늘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홍익민족’이 아닌 ‘홍익인간’의 이상을 추구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홍익인간은 배달민족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 환인과 환웅이 한울님으로서 인간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식한 것처럼, 고대인들은 자기 국가를 곧 세계나 우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특정 국가나 민족의 지도자로서 시조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류의 지도자로서 한울님을 인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시 말하면, 다른 나라에 다른 한울님, 곧 다른 국가에 다른 천제나 천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 ‘해’를 뜻하는 건국시조와 나라이름의 일관성
건국시조를 해로 인식한 까닭은 단순히 나라를 세운 건국자가 아니라 세계 수립자이자 세상의 지도자로서, 한울의 중심 곧 우주를 밝히는 태양이라 여긴 데 있다. 세계 창조의 주체이자 우주생명의 근원을 태양 곧 해님으로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건국시조는 모두 해를 일컫거나 상징하는 말로 호명되었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기록에는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나라에 등장하여 착종을 보이기도 한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이 부여의 시조 해모수와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 그러한 보기이다. 고구려의 동명왕본풀이에 해모수가 천손으로 등장하는데 단군이 해모수와 같은 인물로 이야기되는 것이다.
<단군기(壇君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서하에 있는 하백(河伯)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 하였다”고 했는데, 지금 이 기록을 살펴보면 해모수가 하백의 딸을 사통하여 뒤에 주몽을 낳았다고 했다. <단군기>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했다” 하므로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일 것이다.
하백녀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은 사람은 단군과 해모수 두 사람이다. 하백녀를 중심으로 보면 단군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은 부루이고, 해모수와 관계하여 낳은 아들은 주몽이다. 기록에는 부루와 주몽을 어머니가 다른 형제라고 하였으나, 사실은 어머니 하백녀는 같고 아버지가 단군과 해모수로 다르다. 부루와 주몽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일연의 설명이 잘못된 셈이다.
그러나 일연(一然)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보면, 윤내현의 해석대로 ‘단군과’ ‘해모수’는 같은 인물이다. 부루와 주몽 형제의 아버지가 같다면 그를 낳은 단군과 해모수는 사실상 같은 인물이다. 다른 기록에도 단군과 해모수가 모두 ‘부루’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삼국유사> ‘북부여’조에는 해모수가 부루를 낳았다고 하고, <제왕운기(帝王韻紀)> ‘전조선기(前朝鮮紀)에 보면, 단군이 부루를 낳았다고 한다. 두 기록을 옮겨보자.
“천제가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와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도읍을 정한 뒤에 스스로 왕을 칭하였으며, 국호를 북부여라 하고 자칭 해모수라 하였다. 아들을 낳아 부루라 하고 해(解)로써 성씨로 삼았다.”
<단군본기(檀君本紀)>에 이르기를, “비서갑(非西岬) 하백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부루라 하였다.
중요한 것은 천제인 해모수가 강림하여 북부여를 세우고 아들 부루를 낳았고 단군도 아들 부루를 낳았다고 하는데, 부루를 기준으로 보면 아버지 해모수와 단군은 같은 인물이다. 해모수가 스스로 천왕을 칭했으니 단군왕검과 같은 이름, 곧 보통명사로 본다면 가능한 일이다. 단군이든 해모수든 천왕이 부루를 낳았다고 하는 점에서 보면 두 인물은 사실상 같은 존재를 나타내는 동일인물일 수 있다. 문제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단군왕검처럼 나라를 세우는 데서 머물지 않고 부루를 낳은 뒤, 성을 ‘해’씨로 하였다는 점이다.
해모수는 천제 또는 천제의 아들로서 태양을 상징하는 인물인데, 그 이름도 ‘해모습’ 또는 ‘해머슴아’를 표현한 것으로서 환인이나 환웅처럼 우리말 소리값으로 밝은 해를 나타낸다. 단군도 박달나무 ‘‘단(檀)’자를 통해서 ‘밝달 임금’ 곧 ‘밝은 님’을 뜻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해모수가 그렇듯이 ‘단군도 해의 아들 곧 일자(日子)라는 것이다. 고조선 사람들은 해를 하느님으로 인식하여 단군을 해의 아들로 불렀던 셈이다. 따라서 고조선 사람들이 하늘의 상징인 해를 하느님으로 받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단군의 ‘조선’ 건국 이전부터 환웅족들은 해를 천신 곧 ‘하느님’으로 인식하고 ‘환님’ 또는 ‘한님’으로 부르면서 그들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인천제의 후손을 표방하는 한족은, 곰족 또는 범족과 달리 동물토템이 아닌, 천신과 광명을 신앙하는 해토템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해토템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지만, 환웅족은 해 상징 민족 또는 해 숭배 민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환웅이 처음 터잡은 태백산이나 고조선의 도읍지 아사달(阿斯達)의 지명 또한 밝은 빛이나 양달, 해, 아침 등을 뜻한다. 아사달은 곧 ‘아침 땅’을 뜻하는 것으로서 한자말로 나타내면 국호 ‘조선(朝鮮)’이 된다. 아사달 조선은 시간적으로 해 뜨는 땅이지만 공간적으로 양지바른 땅을 뜻한다. 따라서 고대 중국인들은 고조선을 밝은 조선이라는 뜻으로 ‘발조선(發朝鮮)’으로 일컬었다. 고조선의 국호가 중국문헌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관자(管子)> ‘경중갑(輕重甲)’편에 보면, 고조선의 국호를 ‘발조선’으로 기록해 두었다. 밝은 조선을 달리 말하면, 해 뜨는 조선이란 뜻이다.
백두산이나 백악산, 백산, 태백산 등의 백(白)은 모두 밝은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밝달의 한자 표기를 백산(白山) 또는 백악(白岳)으로 했다. 태백산과 백두산은 큰밝달이며, 백악산 아사달은 아침 햇빛을 받는 양지쪽을 뜻하는 것으로서 ‘밝달 조선’이며 ‘발조선’과 같은 말이다. 바다이름 발해나 나라이름 발해도 발조선의 전통을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발해가 고구려의 적통을 이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연호를 하늘의 법통을 잇는다는 뜻으로 ‘천통(天統)’이라 일컬은 사실도 참고할 만하다.
실제로 고조선은 ‘발조선’ 또는 ‘아사달’이라 일컬을 만하게 지리적으로 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동방의 땅이다. ‘아사달’에서 비롯된 국호 ‘조선’은 해가 처음 떠오르는 시점(時點)과 해가 가장 잘 비치는 지점(地點)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뜻을 담고 있다. 국호 ‘조선’ 곧 아사달이라는 이름에서도 이미 태양신 하느님을 시조왕으로 삼은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고조선족은 하늘과 해, 빛, 아침, 동녘, 양지를 존중하는 민족으로 해석한다. 해를 상징하는 말과 나라이름도 일정한 연관성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부여의 건국시조 성씨가 해씨이자, 우리 민족 최초의 성씨가 해씨라는 점이다. 부여의 시조 해모수, 해부루 부자의 성(姓)인 해씨(解氏)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해모수가 곧 해인 것은 천제의 아들일 뿐 아니라, “아침이면 일을 보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세상에서 천왕랑(天王郞)이라 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해모수의 행동양식은 곧 아침저녁 해의 출몰과정과 같다. 세상사람들이 해모수를 두고 천왕랑이라고 일컬은 것도 해를 뜻한다.
해모습을 한 ‘해모수’가 햇빛의 밝음을 상징한다면, 그래서 사실상 ‘환한 님’, 환님과 같다면, 해의 뜨거움을 나타내는 ‘해부루’는 곧 ‘해+불’의 음차로서 해의 불꽃같은 열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해부루의 ‘부루’와 ‘부여’의 나라명도 일치한다. “전기 부여는 중국 고문헌에서 ‘부루(符婁)’, ‘불이(不而)’, ‘비여(肥如)’ ‘불이(不二)’, ‘부역(鳧繹)’, ‘부여(扶黎)’ 등으로 기록”되었다.따라서 해부루는 해불이 아닌가 한다. 부여 또한 ‘불’과 같은 소리값을 지니면서 해의 뜨거움을 상징한다.
이러한 사실은 시조의 잉태과정에서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 또한 해의 감응으로 태어난 까닭이다. 주몽은 해부루와 달리 성을 ‘해’씨라 하지 않았지만, 천제 해모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 못지않게 ‘해’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더 구체화하여 밝히고 있다. 유화부인이 햇빛을 받아서 주몽을 잉태하고 닷되 들이 큰 알을 낳았다는 것이 그러한 근거이다.
주몽이 천제인 태양신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 관계를 비롯하여 유화의 주몽 잉태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국유사>에서는 주몽 스스로 천제 해모수의 아들이라 했고, <세종실록>에서는 주몽 스스로 천제의 손자라고 한 사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하늘 또는 해와 관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주몽이 천제의 아들인가 손자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천제의 후손이자 햇빛 감응에 의해 잉태된 ‘아해’이자, 태양신의 표상인 큰 알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금와왕은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여 버리게 하였으나, 말들이 알을 비켜가고 백수(百獸)가 보호하였을 뿐 아니라, “구름이 낀 날에도 알 위에는 늘 햇빛[日光]이 있어서, 도로 어미에게 보내어 기르게 했다”고 한다. 따라서 주몽은 천제 해모수 곧 태양신의 아들이자 태양 자체로서 해부루와 같은 존재이다. 주몽도 본디 성은 해모수에 따라 해씨였으나 천제의 아들로 햇빛을 받아 태어났다고 하여 스스로 ‘고’씨라 하였던 것이다. 해가 높은 곳에 있는 사실을 근거로 고씨라 한 것 같은데, 해씨나 고씨나 모두 천제 해모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일 뿐 아니라 한결같이 태양신을 상징하는 성씨라 하겠다.
3. ‘해’를 상징하는 건국시조 전통의 지속성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천제, 천왕의 ‘해’ 상징 전통은 부여와 고구려로 건국시조에서 머물지 않고 신라와 가야에까지 이어진다. 신라의 건국시조 본풀이는 6촌촌장의 출현에서부터 비롯된다. 박혁거세 이전에 신라 건국의 토대를 이루었던 6촌촌장들의 본풀이도 신시고국을 세운 환웅본풀이의 서사구조와 같다. 환웅이 하늘에서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강림하여 신시고국을 세우듯이, 6촌의 촌장들 또한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강림하여 일정한 수준의 공동체국가를 세우고 특정 성씨의 시조가 되며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6촌촌장의 출현은 신시고국의 천왕인 환웅의 출현과정과 같을 뿐 아니라, 큰 산을 구심점으로 일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적 입지까지 같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환웅족과 사로국 촌장들이 하늘의 해를 천신 또는 천왕으로 섬기고 그 정기를 받은 신성한 인물을 시조왕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따라서 고조선과 신라 사람들은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 역사적 뿌리와 세계관, 천신신앙 등을 공유한 동일문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웅본풀이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는 촌장본풀이는 신라인들이 고조선의 유민(遺民)이라는 사실을 잘 입증한다.
박혁거세 출현과정도 주몽처럼 알로 태어나며 해 또는 빛을 뜻하는 ‘아해’로 묘사된다. “‘계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땅에 비치고”, “자주빛 알이 있었으며”, 알에서 나온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니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도 맑고 밝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열쇠말은 번개빛과 자주빛, 알, 동천, 광채, 밝았다 등이다. 자줏빛 알도 해를 상징하지만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도 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밝히는 왕이라는 뜻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 또는 불구내(弗矩內)라 일컬은 것이다. 한결같이 세상을 밝힌다는 이름으로 일컬었다.
해와 같은 붉은 알에서 나왔을 뿐 아니라, 몸에서 밝은 광채가 났기 때문에, 세상을 밝히는 존재로 일컬어진 ‘박혁거세’나,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을 품은 ‘환웅천왕’이나 사실은 같은 존재를 상징하며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시조왕으로서 같은 구실을 했다. 건국시조라는 것은 결국 해처럼 세상을 환하게 밝혀서 인간세상의 삼라만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신시고국의 환인과 환웅에서 부여의 해모수와 해부루, 그리고 환웅의 홍익인간 사상에서 박혁거세의 세상을 밝히는 불구내사상으로 나아갔는데, 이러한 역사적 전개 과정은, 한층 시조왕의 인식이 ‘해’ 중심으로 실체화되어갔으며 건국시조로서 지도자의 이념도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로 구체화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박혁거세는 물론 ‘불구내’ 또한 ‘붉은 해’ 또는 밝은 빛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은 홍익인간 이념을 해의 기능을 통해 한층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줏빛 알이 박을 닮아서 성을 박씨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붉고 밝은 알은 박과 닮은 것이 아니라 붉고 밝은 해를 닮았다. 단군도 밝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박달나무 단자를 쓴 것처럼, 박혁거세의 박도 박의 모양을 따온 것이 아니라 해와 같은 자주빛 알의 밝음을 나타내기 위해 ‘박’을 성씨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박은 성씨가 아니라 혁거세의 또 다른 우리말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한자말로 혁거세라고 기록했지만 우리말로는 ‘밝은 누리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처럼, 우리말과 한자어를 결합하여 ‘밝음+혁거세’ 또는 ‘밝+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결과적으로 ‘혁거세’를 우리말로 ‘밝’[朴]과 ‘붉은해’[弗矩內]로 다양하게 일컬었던 셈이다. 이미 해모수와 해부루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의 기능과 상징이 다양한 까닭에 그 특징을 제각기 살리면 같은 시조왕을 여러 이름으로 일컬을 있다. ‘박’이 해모수처럼 해의 빛을 강조하여 ‘밝은 해’를 나타낸 이름이라면 ‘불구내’는 해부루처럼 해의 뜨거움을 불 또는 색깔에 견주어 ‘붉은 해’로 일컬었을 가능성이 있다.
해의 상징은 빛이자 붉은 색이고 뜨거움이지만, 형태로는 알이다. 박혁거세와 석탈해는 해의 상징과 더불어 알의 형태까지 갖추었는데, 김알지는 금궤 속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중요한 사실은 금궤에서 크고 밝은 빛이 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광명을 주는 실체는 곧 해인데, 그 해를 상징하는 것이 황금이자 금빛이다. 알지의 성 김(金)씨는 밝은 빛을 낸다는 점에서 혁거세의 ‘박’과 같다. 알지도 닭이 울고 난 뒤에 출현한 아기로서 알 곧 해를 상징한다. 닭이 울면 알도 낳지만 해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림은 계림이 되고 신라의 초기 국호도 ‘계림국’이었다.
신라의 옛이름은 서라벌(徐羅伐)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원래 ‘사라바라’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서라벌이나 상주의 옛지명인 사벌(斯伐)은 모두 ‘밝은 해’ 곧 ‘사라바라’에서 비롯되었다. ‘하라’ 또는 ‘바라’는 ‘해’를 나타내는 고어이다. 일본어 하라(hara)는 해가 밝은 것을 뜻한다. 나라[國]의 어원도 해 또는 하늘을 나타낸다. ‘나’ 또는 ‘라’가 곧 나라를 뜻했다. ‘신라’라고 하는 이름도 ‘새 해’ 또는 ‘새 나라’를 뜻한다. 시조왕인 박혁거세를 곧 새로운 태양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시조왕의 태양 상징은 가락국(駕洛國)의 시조본풀이에서도 황금알을 통해 한층 구체화된다. 알 상징의 박혁거세에서 황금 상징의 김알지를 거쳐 두 상징을 함께 아우르는 황금알로 발전한다. 해의 모양과 빛의 밝음을 한층 실감나게 상징하는 것이 가락국 시조들이다. 김수로본풀이에서 시조왕은 아예 해를 상징하는 황금알로 출현한다.
자주색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땅에 드리워져 있었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으로 된 합이 보여, 그것을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6개가 있었다.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출현 이야기를 보면, 마치 박혁거세와 김알지 본풀이의 종합편을 보는 것 같다. 하늘에서 드리워진 자주색 줄은 곧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이상한 빛이 비추었다거나 자주색 빛이 비추었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그 빛이 비친 자리에 알이나 금궤가 놓여 있었다고 하듯이, 여기서도 자주색 줄이 닿은 곳에 금합이 있었다고 한다. 금합 안에 황금알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와 금궤 속에서 나온 김알지를 아우른 셈이다. 금합에서 나왔기에 성을 김씨로 했다는 사실도 김알지와 같다. 황금에서 비롯된 김씨도 해씨나 고씨처럼 사실상 하늘의 해를 상징한다.
더 주목할 내용은 황금알이 ‘해처럼’ 둥글었다는 사실이다. 황금빛이 가지는 태양 상징의 기능을 한층 구체화하기 위하여, 황금알을 예사 날짐승의 알 모양과 구분하기 위해 아예 해처럼 둥근 모양으로 생생하게 기록해 두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해 모양의 황금알 곧 태양을 상징하는 존재로부터 가락국의 시조들이 출현한 것이다. 한층 구체적으로, 대가야의 시조인 뇌질주일(惱窒朱日)은 천신인 아버지 이비가(夷毘訶)를 닮아서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시조왕의 얼굴모습까지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시조왕은 해 곧 태양신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알에서 태어나고 세상을 밝게 하는 박혁거세의 상징이나 다르지 않다. 결국 수로왕을 비롯한 가락국의 6왕들 또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해모수처럼 태양신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해와 같이 세상을 밝히고 삼라만상을 살리는 역량을 지닌 지도자가 시조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건국시조의 정체와 ‘해’ 상징의 지도자상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들은 한결같이 하늘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강림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흔히들 ‘천손강림’ 신화라고 하는데, 건국시조를 천손으로 인식하여 일컫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천손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늘이 인격적인 존재여서 사람을 낳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천손이란 단지 신성한 존재란 뜻이기만 한가? 그 동안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막연히 신성한 존재로 인식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말았다.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온 시조의 정체성은 하늘의 세계관적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하늘이 어떤 세계인가 하는 것이 밝혀지면, 천손이라는 개념이 아니라도 하늘에서 내려온 시조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한층 뚜렷할 수 있다. 그런데 시조왕들은 한결같이 하늘의 해가 이 땅으로 내려온 것처럼 서술된다. 해는 곧 크고 붉은 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천손이 아니라 천신, 곧 한울님, 천제, 천왕으로서 해이다. 해가 곧 시조왕을 상징하는 것처럼, 해는 우주생명의 중심이자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인간생명의 시조로 인식된다.
환웅천왕의 신시고국, 단군의 아사달 조선은 물론 해모수와 해부루의 부여도 천신으로서 하느님 곧 ‘해’를 건국시조로 숭상한다. 사실은 건국시조가 아니라 세상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삼라만상의 어버이가 해이다. 해가 없으면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가 있은 연후에 세상이 있고 생명도 있다. 해와 같은 신격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곧 인간세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를 상징하는 시조왕은 곧 나라를 있게 한 최초의 왕으로서 세계를 창조한 존재이자, 온 국민의 삶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해와 같은 존재였다.
연오랑(延烏郞) 세오녀(細烏女) 본풀이도 태양시조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야기이다. 해를 상징하는 연오랑이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되었다는 것이 구체적인 보기이다. 달을 상징하는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남편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따라서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한다. 신라에서 해와 달 구실을 하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연오와 세오의 ‘오(烏)’로 나타나는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삼족오가 그러한 상징의 전형이다. 따라서 ‘연오’는 해 속에 까마귀가 산다는 ‘양오(暘烏, 陽烏) 전설’, 세오는 ‘쇠오’ 곧 금오(金烏)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모두 태양신 또는 해를 상징하는 지도자를 나타내는 말이다.
해처럼 세상을 밝히는 존재는 그가 누구든 하늘에서 내려온 분이자 세상을 다스리는 시조왕으로 우러렀다. 해는 하늘을 다스리는 한울님이자 태양신으로서 고대인들의 섬김의 대상이 되었고, 지상에서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훌륭한 지도자도 으레 한울님으로서 천제나 천왕으로 일컬어지고 해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양숭배사상이 태양시조 사상으로 발전한 것이 건국시조 본풀이이다.
해가 하느님이자 세상의 지도자로 상징되는 대상으로 인식된 까닭에, 사람들로부터 해는 늘 섬김과 관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세상을 두루 밝히고 뭇생명을 살리는 해의 섭리와 변화 양상에 대한 천문학적 지식을 잘 알기 때문에 태양시조 사상을 확립했을 가능성도 높다. ‘해’에 대한 이러한 세계관적 인식과 과학적 이해 때문에 상고시대 한국인은 ‘해[太陽]’의 공전주기를 기준으로 ‘한 해[年]’를 설정하는 태양력의 역법도 마련하였으리라 추론된다. 이러한 추론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우리 민속에는 태양력을 근거로 한 24절기가 있고 동지가 과거에는 아세(亞歲)로서 설 구실을 하였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관념은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따라서 지금도 동지를 작은설이라 한다. 결국 가장 밤이 긴 동지가 일년의 처음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인식은 자정 곧 자시가 하루의 처음이고 자방이 방위의 기준이 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한 달의 처음도 달이 완전히 기운 그믐 이후 초사흘까지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하루의 처음인 자시와 한 달의 처음인 초하루가 모두 어둠의 극점이듯이 연중 어둠의 극점인 동지도 일년의 처음이자 시작인 설이다. 이처럼 동지를 설로 삼았듯이 과거에도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해를 설정했을 것이다.
둘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태양(太陽)을 나타내는 말과 연(年)을 나타내는 말이 같기 때문이다. 우리말 ‘해’는 역법으로서 한 해를 나타낼 때나, 천체로서 해 곧 태양을 나타낼 때나 꼭 같이 쓰인다. 천체 태양도 ‘해’라고 하고 역법의 연(年)도 ‘해’라고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뜬 달도 ‘달’이라 하고 역법의 달도 ‘달’이라고 한다. 이것을 근거로 볼 때 우리말이 성립되던 시기부터 태양과 태음의 두 역법을 함께 쓴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우리와 달리 태음력 경우에는 다소 같은 말을 쓰지만, 태양력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말을 쓰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법이 아주 발달했던 중국의 경우도 달의 경우는 천체의 달(月)과 역법의 달(月)을 같이 쓰지만, 해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말을 쓴다. 중국의 한자말은 역법으로 한 해를 나타낼 때는 연(年) 또는 세(歲)를 쓰지만, 천체로서 하늘의 해를 나타낼 때는 일(日)을 쓴다. 일본의 경우도 이와 같다. 영어의 경우에도 한 해를 나타내는 ‘year’와 태양을 나타내는 ‘sun’은 전혀 다른 소리값의 말이자 전혀 무관한 기호의 문자로 표기한다. 서양에서도 태음력을 먼저 썼던 사실은 언어에 그 자취가 남아 있다. 한 달을 나타내는 ‘month’는 천체 달을 나타내는 ‘moon’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천체> <역법> <천체> <역법>
한국어: 달 달 해 해
한자어: 月 月 日 年
영 어: moon month sun year
일반적으로 달과 역법은 일치하되 해와 역법은 불일치하는 언어 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역법의 해라는 말이 천체의 해와 무관하게 형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달의 공전주기가 관찰 가능한 대상이므로 태음력을 먼저 사용하다가 뒤에 일년주기의 정확성을 위해 태양력을 사용한 것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천체의 ‘해’를 뜻하는 말이 해모수 시대에 이미 성씨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고대 한국인들의 우주적 하늘 인식과 건국시조의 정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은 천체를 관찰하여 수립한 태양력의 역법 ‘해’와,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성한 존재 ‘해’를 끌어와 시조의 왕명이나 성씨로 삼은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
7. 태양시조 사상에 터잡은 정치적 이상
진정한 지도자는 해와 같이 모든 생명을 다 살리는 존재이다. 정치를 곧 ‘다스린다’고 하는데, 다스리다의 어원은‘ 다 살리다’이다. 다?리다 → 다?리다 → 다스리다로 변화되었다. ‘다스리는 것’ 곧 ‘다 살리는 것’이 해의 생명성이자 민주적인 지도자상이다. 다 살리는 것은 잘 사는 사람을 더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못 사는 사람을 잘 살게 하는 일이다. 무성하게 득세한 생명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다 살리는 일이다. 그것이 다스림의 이상이자 정의의 실현이며 어두운 곳을 밝히는 혁거세의 ‘불구내 사상’이자 환웅의 홍익인간 이념이다.
환웅의 홍익인간 사상은 곧 뭇생명을 다 살리는 사상으로서 홍익생명 사상과 다르지 않다.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자 해의 기능이다. 해는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을 다 살리고 다 이롭게 한다. 박혁거세 또한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의 존재로서 태양시조 사상을 지닌 인물이다. 환웅의 홍익인간 사상이 곧 세상의 빛이 되는 박혁거세의 지도자 사상이자 태양시조 사상이다.
건국 시조왕들처럼 세상의 빛이 되어 모든 생명을 다 살리는 지도자가 가장 훌륭한 현실의 지도자이자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지도자상이다. 환웅과 해모수, 박혁거세는 모두 고대의 시조왕으로서 역사적 인물에 머물지 않고, 진인출현설처럼 민중이 주체가 되어 출현을 소망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의 지도자로 나타나야 할 인물이다. 그러므로 본풀이에서 노래되는 시조왕은 건국시조로 추대된 태초의 지도자상이자, 지금 여기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지도자상, 곧 미래의 생태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지도자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