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회 국민강좌] 한국기록문화의 우수성과 그 의미
한영우 | 한림대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우리 민족은 기록하기를 좋아하고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의궤에 이르기까지 옛 선조의 기록문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을 연구하여 한국 기록문화의 우수성에 관한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강의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정치는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민본사상에 충실했던 조선시대에 우리의 기록문화는 더욱 발전하였다. 백성의 신뢰를 얻으려는 기록을 철저하게 하여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고, 후세의 평가를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각 관청은 업무일지를 매일 기록하여 등록이라는 것을 편찬하고, 춘추관은 각 관청의 등록을 모아 ‘시정기’라는 통합일지를 주기적으로 편찬했다.
국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은 왕이 관청에 내린 문서와 관료 및 초야의 유생들이 왕에게 올린 정책건의문과 승정원에서 보고들은 일들을 모두 일기로 기록했다. 이를 ‘승정원일기’라고 한다. 지금은 조선후기의 일기만이 남아 있지만, 그 수량은 3,047 책, 약 2억 4천만 자에 달한다.
사초는 기록관의 집에 보관했다가 임금 승하 후
실록에 반영, 기록에 대한 간섭 막아 진실성 확보
특히 조선의 왕은 기록관이 없는 곳에서는 정책을 논하지 않았으며, 독대(기록관 없는 왕과 신하의 대화)는 매우 특별한 경우에만 인정되었다고 한다. 즉 밀실정치를 근원적으로 차단하였고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록관에 의해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만든 현장기록을 ‘사초’라고 하며, 사초는 기록관의 집에 보관했다가 왕이 죽고 실록을 편찬할 때 정부에 바쳐서 참고자료로 삼았다. 이를 관청에 보관하지 않은 것은 기록에 대한 간섭을 막아 기록의 진실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실록은 모두 4부를 만들어 서울의 춘추관에 1부, 지방에 3부를 나누어 보관했다. 임진왜란 때 전주실록만이 남아 이를 다시 재간하여 서울에 1부, 지방에 4부(오대산, 태백산, 정상산, 정족산)를 나누어 보관했다. 정족산 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밖에도 국가의 특별한 행사 - 관혼상제, 행차, 토목공사 등이 있을 때마다 도감을 설치하고 그 행사과정과 참여자의 비용, 그리고 행사의 모든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넣어 상세한 보고서를 따로 만들었다. 이를 의궤라고 한다.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친영 반차도), 헌종 효정왕후 가례도감의궤(친영 반차도)를 보면 그 규모와 세부적인 천연색 그림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계기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세계기록문화의 정수‘의궤’속 왕실 결혼식, 장례,
화성축조과정 등 묘사 섬세해 언제든 재현 가능
특히 수원화성의 건설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는 토목실명제를 도입한 1,400쪽 분량의 방대한 건설보고서이다. 여기엔 설계도를 비롯하여 사용된 재료의 종류와 양, 도구뿐만 아니라 공사에 참여한 5천 명의 기술자, 노동자의 명단과 지급된 품삯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세계인들은 런던타워브릿지에 설계자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놀라워했으나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에 성벽에는 건설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와 기록의 상세함에 유네스코에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성역의궤≫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 기록을 통해 평민, 노비인 백성도 반나절 품삯까지 철저히 지급한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조임금의 수원화성행차도와 그 기록에도 행차 중 논밭을 밟아 피해가 생길까 농한기에 가고 미리 암행어사를 보내 귀한 물건을 뇌물로 바치는 것을 감시했다. 흔히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잘못 평가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러한 기록문화를 통해 본 조선사회는 철저한 민본사회였다.
기록문화전통은 지식정보화 선진국될 인프라
그림을 담당했던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은 초상화, 의궤편찬, 지도 작성이 주요 업무였을 정도로 기록관리 업무는 국가의 핵심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화원의 지도 작성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지도를 만든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인의 기록문화전통은 일본강점기와 해방 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무너졌고, 그릇된 역사관으로 인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피해의식은 그러한 기록문화의 전통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민족의 기록문화는 철저한 기록을 통한 정치적 투명성 확보와 행정적 낭비를 막고 역사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지식정보화 산업사회의 선진국이 될 인프라를 구축하는 바탕이 된다고 한영우 교수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