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회 국민강좌]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우리의 대응
이장희 | 한국외국어대 법대 교수 (국제법)

나라가 바로 서려면 주권과 역사가 온전하게 바로 서야 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근 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역사의 주체가 제 역할을 다했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 중 독도문제는 영유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문제이기도 하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때부터 우산국의 부속도서였고 조선시대에는 안용복 사건으로 일본 막부 스스로도 ‘조선인의 것’으로 인정하여 지도에 표기까지 했다. 때문에 일본 어부가 독도 부근으로 고기잡이를 갈 때면 반드시 면허증을 소지해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독도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6명을 파견 배치했다. 러시아 발트함대를 물리치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이후의 모든 문서에서 과거의 역사를 모두 뒤집고 독도를 시마네현에 소속된 다케시마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본 측 주장의 근거는 고유 영토설, 1905년 무주지 선점,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들고 있다. 이를 살펴보자.
우선 일본이 독도를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무주지 선점이라는 말 자체는 모순이다. 조선은 15세기경에 도둑들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주민보호를 위해 섬을 400여 년간 비워두는 공도(空島)정책을 썼다. 이는 영토의 포기가 아니라 실효적 지배의 한 형태로 2년마다 수토 검열상 관리를 파견해 지속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으므로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었다.
한편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일본과 48개국이 1952년에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A조 제2항에서 일본의 통치권이 제외되는 지역에 ‘독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두고 미국이 독도를 일본 것으로 인정한 처사라고 우기는 것이다. 당시 일본이 주일미군에게 독도를 미군전투기 훈련연습장으로 공여하는 조건으로 조약에서 은근슬쩍 독도를 제외시킨 것이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위기가 올 때마다 독도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전후로 독도를 점거하고 1952년 6·25 동란 중 일본의 영토인 양 독도를 미군에 공여했다. 또한 한국이 IMF위기 상황이었던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위치를 약화시켰다.
독도, 영유권과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문제
일본의 독도침탈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항상 조용한 외교, 무시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독도가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를 근거로 독도문제를 국제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일본의 계획에 휘말릴 것이라며 자제한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판례상 ‘실효적 지배’란 해당국가가 자국의 영토에 대해 국가기관이 관할권을 평화적, 실제적, 지속적으로 충분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독도를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에서 우리나라의 EEZ(배타적 경제수역)의 기점을 울릉도로 잡고, 독도를 섬으로서의 좌표도 없이 암초도 대륙붕도 아닌 중간수역으로 두었다. 또한 어업권과 영유권 분리 조항 등 독도영유권 훼손이 명백한 독소조항을 넣었다.
이 협정은 일본의회에서는 기립박수로 찬동했고 우리 국회에서는 날치기로 비정상적인 통과를 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국제법적 지위가 대등관계로 변했고 이후 국제사회에서 ‘독도’보다 ‘다케시마’라는 용어로 표기하는 경우가 6배가 넘었다.
솔직히 우리는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계기로 자극받기 전에는 독도를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외교상 민감한 곳이란 이유였다. 일본에 의해 무수히 저질러진 우리나라의 해양조사를 방해한 행위는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실효적 지배라고 할 수 있는가. 그동안 국제사법재판소 판례상 영유권에 대해서 자기권리주장을 묵인하거나 방치했을 때 모두 졌다. 조용한 외교를 전제로 한일어업협정의 독소조항은 이미 독도 영유권을 훼손한 지 9년이 넘었다.
일본정부와 학계는 적극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준비를 하고 20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은 독도 선점 100주년 기념으로 다케시마 날 조례를 제정하는 한편 청 내에 독도자료실까지 설치했다. 최근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독도 인근에 해상보안청 경비대를 상시 주둔시키며 2007년 5월 18일 시마네현 오키군 교육위원회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부교재를 초·중학교에 배포하였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해 우리 정부는 독도의 국제법상 도서로서의 지위를 조속히 회복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독도를 유인도화(有人島化)해 가야 한다. 또한 신한일어업협정의 국회통과에 대해 무효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함과 동시에 국제법학계 학자들이 한일어업협정의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하고 정부도 점진적으로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가 국가 간 미묘한 외교문제로 나설 수 없다면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독도문제를 명확하게 처리하지 못한 역사적 책임을 묻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