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강좌

국학을 쉽고 재미있게 배우실 수 있습니다.

Home > 국학배움터 > 국민강좌

[58회 국민강좌] 조선후기 향약과 마을 공동체 문화 2009.10.05  조회: 3290

[58회 국민강좌] 조선후기 향약과 마을 공동체 문화
박경하 |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

 



예로부터 우리의 마을마다 두레, 품앗이 등 궂은 일, 기쁜 일을 함께하고 공동제사를 지내며 신명나게 축제를 벌이는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뿌리 깊게 이어져 왔었다. 이러한 공동체적 결속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조선시대에는 공식적인 법률로 경국대전이 있었으나 백성의 삶에 직접 관여하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지역의 사족(士族)과 백성 사이에는 향약(鄕約)이 있었다.


상품화폐사회의 변동 속에 토호의 침탈로 인한 농민의 토지이탈이 심해지자 공동체적으로 결속시켜 부세의 과도한 부담을 줄이고 토호의 무리한 침탈을 방지하고자 향약이 권고되었다. 우리나라의 향약이 중국의 여씨 향약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이는 잘못이다. 여씨 향약, 주자 향약의 영향을 받았겠으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선생이 만든 향약은 양반들에게는 특권을 제한하고 지도층의 책임을 강조하는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坐視不救者(좌시불구자. 굶는 이웃이 있는데도 부자가 보고만 있는 것)를 처벌하거나 가난해 노처녀로 있는 처자를 돈을 모아 혼인시키지 않으면 지방관을 처벌하는 등 함께 나누기 위한 순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시행의 일관성도 없고 법 아닌 법으로 지역 양반이 하층민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지방관이 향촌의 양반이나 지역민을 수탈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특히 18세기 후반 노론정권 당시에는 관직을 사서 지방관이 되는 경우가 많아 관직을 산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향약을 철저하게 악용해 몇 배를 거둬들이기도 해 그 폐해가 심각했다.


마을마다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문화 발전


실제 백성 간의 자치적인 공동체 조직은 촌계(村契)였다. 그 내용이 너무도 당연했기에 따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고 민속으로 남았다. 촌계의 대표적인 기능은 마을수호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신공동체(祀神共同體), 노동공동체적 기능으로 두레, 황두 등의 조직이 있었고,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사는 생활공동체의 역할이 있었다.


마을 제사에서는 각기 자신이 사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수호신과 신격이 다양하게 변했다. 예를 들어 장승이 경기지역에서는 마을입구에 세워두는 문지기 역할에 지나지 않지만 산세가 험한 충청도에서는 질병과 호랑이를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주격 신이다. 이는 수호신이란 대상이 주체가 아니라 그 마을 사람이 주체로서 마을에 맞게 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문화를 획일적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마을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형태로 발전시켜왔다.


마을 공동제사는 놀이요 축제였다.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여 사물놀이로 온종일 또는 밤을 새워 노는 열정적인 모습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극적인 삶의 연극이라 하겠다. 우리에게는 어깨춤이 절로 일어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신명의 전통이 있었다. 또한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부엌의 조왕신에게 쌀이 떨어지지 않고 멀리 외지에 나간 자식들이 굶지 않도록 정성을 드리고 장독대의 철륭님에게 음식의 기본인 간장, 된장이 잘 돼서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비는 소박한 정성의 비손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강점기때 미신으로 폄하된 마을공동체 전통문화 되살려야


이러한 우리의 풍속은 일본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서 또 가톨릭과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미신으로 폄하되었다. 일본은 조선사회가 얼마나 후진적이며 정체되고 미신적인가를 증명함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즉 전근대적인 조선이 근대화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들은 조선 말 우리의 민속에 관한 사진을 많이 찍어 자료로 남겼는데 이는 포교를 위해 조선이 얼마나 미신적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의 마을 공동제사문화를 미신으로 몰아붙인 일본은 삼국시대 때 백제로부터 전수받은 이 문화를 ‘마쯔리(祭)’란 문화상품으로 전 세계에 자랑하고 있다.


식민교육의 잔재로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를 전근대적 미신으로 치부하고 그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비록 일제의 억압에 눌리고 오늘날 초고속 정보화시대에 떠밀려 지금은 흔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수천 년을 이어 온 문화가 시대를 달리하며 촌계로 살아남아 작은 규모나마 아직도 지방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가족의 건강은 물론 마을 주민의 건강과 무사함을 기원하는 행위로서 생활공동체에서 전승된 생활 일부요, 마을의 정신적 유대요, 기반이었던 마을 굿(洞祭)은 우리의 소중한 정신문화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 간에 서로 의지하고 돕는 전통시대의 마을공동체적 생활방식은 수많은 자연재해와 권력층의 수탈 속에서 민족적 생명력을 지탱해 주었던 삶의 지혜였다.


이러한 마을공동체의 인정과 의리, 협동과 상호부조는 우리가 새롭게 재조명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귀중한 전통문화유산이다.

이전글 [59회 국민강좌] 서울의 생활과 풍습
다음글 [57회 국민강좌]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우리의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