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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회 국민강좌] 서울의 문화유산- 근대건축물 2009.10.05  조회: 2844

[60회 국민강좌] 서울의 문화유산- 근대건축물
김란기 |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공학박사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아기자기한 산세와 한강으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서울이 현대식 건물로 빽빽하게 들어찬 것 같지만 1928년에 지은 한전 본사가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된 것을 비롯해 근대건축물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손병희 선생이 감독한 천주교 교당과 덕수궁 석조전, 서울역, 명동 국립극장, 운현궁, 러시아 대사관, 시청, 구 벨기에 영사관, 동대문운동장,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학교건물과 우체국, 관공서와 관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서울에 근래 용산이 한창 뜨고 있다. 지금 용산은 역세권과 철도부지 개발사업, 한강 르네상스 워터프론트타운 조성사업, 민족공원조성사업 등 미군부대 주변개발을 유도하며 근대역사 깨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 100여 년 전에 지은 병원건물을 철거하고 고층빌딩을 지으려 하는 것을 지역주민과 관청이 합세하여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 그‘용산 동인병원’(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1907년에 일본이 중국대륙을 목표로 경의선 철도부설권을 탈취해 철도공사를 하면서 부상자 치료를 위해 세운 건물이었다. 이 건물을 시작으로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한강교 현장사무소를 비롯한 근대건축물이 골목마다 즐비했으나 지금은 아파트로 탈바꿈되었다. 특히 용산은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광복 때까지 주둔했으며 일본군이 철수한 자리에 다시 미군이 들어와 차지했다. 외국군대가 들어와 130여 년간이나 주둔하는 셈이다.

 

가슴 아픈 역사의 기록도 보존하여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나라를 빼앗긴 시대는 가슴 아픈 역사이나 수치의 역사도 역사적 사실이다. 일제잔재라 해서 개발을 앞세워 없애는 것은 옳지 않다. 무분별한 정책에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동대문운동장도 공원화하겠다고 하더니 급기야 이젠 세계적인 명소란 엉뚱한 발상으로 변기모양의 해괴한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이에 체육계가 반발하고 그 반발에 서울시는 대체야구장을 짓기 위해 근대건축물인 구의동 정수장도 허물었다. 동대문 운동장(전 경성운동장)은 그 자체가 근대유산이다. 1925년 처음 문을 연 경성운동장은 근대 체육의 발상지로 88올림픽을 있게 하고 4강 신화를 일구어낸 2002년 월드컵을 가져올 수 있었다. 체육뿐만이 아니라 광복 후 격변기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 여운형 선생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등 우리의 민족적, 정치적 행사의 산실로서도 의미가 큰데 어처구니없게도 헐리는 중이다.

 

구의 정수장은 1936년 제1정수장, 1956년 미군원조로 제2정수장을 설치하여 근대 상수도역사를 시대별로 고스란히 간직한 근대산업유산이자 토목유산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아리수 고급화 계획’으로 정수장을 상류로 옮기고 방치된 이 시설물은 물 박물관이나 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알려주는 산 교육장으로써 활용해야 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서울시의 계획안을 받아들여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발굴조사나 전문기관의 구조안전진단도 무시한 채, 엽기적인 개발을 방치하고 있다.

 

서울시청도 마찬가지다. 새 청사건립은 1995년부터 논의되어 청계천 복원이 마무리될 무렵부터 전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동안 다섯 차례의 계획안이 무산되고 올 2월 18일 6번째 설계안이 최종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변과의 조화는 여전히 썩 어울리지 않고 공간과 편리성도 충족되지 않았다. 도서관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되고 3개 층을 터 정문을 만들고 구청사의 상징 첨탑을 유리 돔으로 바꾸며 핵심부분인‘태평홀’도 철거한다. 이는 청사 건립 명분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서울시는 언론을 통해 구 청사의 돔과 전면만을 두고 신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문화재는 오래된 것이나 보기 좋은 것만이 아니다. 근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 우리 역사와 밀접한 것은 문화재이며 이는 우리 당대의 소모품이 아니다. 숭례문이 600여 년을 지켜온 것처럼 문화재란 우리 세대가 잠시 보관했다가 후대에 넘겨줘야 할 것이므로 가급적 원형대로 보존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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