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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회 국민강좌] 한국사관을 만들자 2009.10.05  조회: 2426

[64회 국민강좌] 한국사관을 만들자
기대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

 

21세기 한국의 현실

1997년 6.25이후 최대의 환란이라던 IMF체제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IMF의 시작은 경제부터 시작된 문제였다. 한국은 OECD에 가입하면서 그 기구에 걸맞지 않는 체제로 한국경제를 운영하다 그런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때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반성하고 앞으로 문제에 대하여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땜질식으로 응급처방을 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키워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역사문제였다. 이 역사문제는 단순하게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고 한국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어떠한가? 당연히 세계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위상은 우리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다. 이번 중국 북경올림픽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났던 일이다.


이번에 중국에 많은 혐한파들이 있었다. 이 혐한파들은 한국이 너무 성장하였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 하나 국가의 혼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출발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고, 그 영향권에 있다가, 근대에 들어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지금은 미국의 영향권아래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두 말할것도 없이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다.


전통시대 한국의 위상

고려시대, 조선초기까지는 우리 사관이 있었다. 그 실증적인 예가 고구려의 수, 당 전쟁, 그리고 고려의 대요, 금, 원과의 전쟁을 볼때 분명 그들만의 사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학이라는 학문이 이 나라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 사관은 없어졌다.

우리 사관이 없어진 후 모든 생각을 중국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 중국에 포함되어보고자 노력하였던 것이 스스로 동이라 부르고. 소중화를 외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자주성을 부정하였는데 그 시기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500여년 조선 역사속에서 국가대국가전쟁에서 이긴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임진, 정유재란때는 명나라가 버팀목이 되어 7년을 버텼지만, 그 버팀목이 없었던 병자호란은 단 45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런 결과 구한말 국운이 위태로워지자 자주적인 살길을 모색하지 않고 누구를 끌어 들일까 고민하던 것이 대한제국시절의 분위기였다. 결국 신흥강국인 일본이 주둔하였다.


조선의 후예들은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이역에서 본토수복을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 결과 역시 외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본토를 수복하였지만,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이런 오늘날의 현실은 결국 스스로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국가적 비극인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한 대비

오늘날 우리는 세계에서 상위권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문제가 있다. 2류까지는 모방이 가능하다. 그러나 1류는 모방이 안된다.

학교에서도 4등까지는 남을 따라서 할 수 있다. 그러나 3등부터는 모방이 안된다. 1등부터 3등까지는 아차 실수로 생기는 거지 실력차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1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사관과 사고방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금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체 정비이다. 우리식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으로 역사를, 또 세계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현재 우리 역사 연구를 돌아보자.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조선연구를 돌아보자.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통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은 그저 참고자료이고, 외국인, 즉 중국이나 일본학자들이 기록 한 것이나, 연구한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고조선역사를 좋게, 있는 그대로라도 기술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분명 관계사입장에서 그들과 사이가 좋았을 때는 좋은 묘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나쁘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대부분 국경을 맞댄 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고조선을 기술하였다면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 사료를 우선시 한다는 것이 너무 이해가 안가는 장면이다.


우리 가정의 일을 이웃집 갑돌이 에게 물어보는 것과 같다. 전통사관을 계승하여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 중국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독특한 사관, 즉 그들만의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춘추필법이라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을 세계제국으로 둔갑시킨 이론적인 근거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무능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무능과 약소함도 춘추필법에 의하여 윤색되고 만 것이다. 아니 완전하게 전말이 바뀐 것이다.


이런 중국의 사고방식은 결국 오늘날 중국을 만들었고, 그 토대로 영원한 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대륙진출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사관을 정립하였다. 그들은 대륙을 정벌하기 위하여 먼저 역사적인 근거를 만들었다. 그런후 대륙으로 진출하였다. 비록 그들은 실패를 하였지만 오늘날 까지도 일본은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 역사는 우리 사관으로 보자

중국사관, 일본사관, 유태인사관을 모두 벗어나자.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나오는 우리 사관, 귄근이 응제시에 불렀던, 양성지가 생각했던 그 사관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우리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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