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회 국민강좌] 한류의 인식과 우리문화의 정체성
임재해 | 안동대학교 교수
(사)국학원에서는 제66회 12월 국민강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오는 12월 0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임재해(53) 안동대학교 교수를 초빙하여 [한류의 인식과 우리문화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제 66회 국민강좌를 개최합니다.
임재해 교수는 조동일(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교수의 뒤를 이은 한국 민속하계의 거두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속연구학회인 한국비교민속학회 회장과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교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의 대표인 굿.장승. 탈춤 등의 민속을 꾸준히 연구하여 온 학자로, 전통문화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는 한류의 인식과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바랍니다.
○ 일시 : 2008년 12월 09일 (화) 저녁 7시 ~ 9시
○ 장소 :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강당
○ 강사 : 임재해(안동대학교 교수)
○ 주제 : [한류의 인식과 우리문화의 정체성]
○ 찾아오시는 길: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경복궁 동문 주차장 건너편)
1. 현재의 ‘한류’와 고대문화 인식의 길
인간은 누구나 두 가지 기본 모순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는 일이며, 둘은 자기 일생의 첫 시기를 알지 못하는 일이다. 눈이 얼굴에 붙어 있는 까닭에 구조적으로 자기 눈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기 눈으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자기 태초의 역사도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자기가 직접 겪은 최초의 경험이자 가장 충격적인 체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이, 출생의 경험과 갓난아기 시절의 자기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인간의 두 번째 모순이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너무 가까워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간적으로 태초여서 일생의 첫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두 가지 기본적인 모순이라 할 수 있다.
문화 읽기도 이와 같은 두 가지 모순에 빠져 있다. 지금 우리 문화의 특징인 ‘한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이해하며, 민족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문화의 정체도 주체적으로 포착하지 못하고 식민사학의 눈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 대중문화를 한류라고 일컬으며 열광하고 있는데도, 정작 우리 학자들은 한류를 한갓 ‘서구문화 따라하기’ 또는 ‘선진문화 흉내내기’의 식민지 근성으로 해석하거나, ‘천박한 B급 문화자본의 파생물’로 규정한다. 하지만 우리 한류의 가치를 이웃나라 사람들이 거울처럼 되비추어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대국으로 군림하였을 뿐 아니라, 유교문화권의 중심국가로서 늘 새 문화와 사상의 물줄기 구실을 하였던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대중문화와 기술상품이 중국을 휩쓸고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와 손전화에 열광하며 한류열풍의 진원지 구실을 하는가 하면, 게임 프로그램에도 열광하고 있다. ?대장금? 특선요리가 중국식당의 고급메뉴로 불티나게 팔리는 데다가 신부들의 혼인 기념사진에는 장금이가 입었던 한복이 빠지지 않을 만큼 크게 유행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국가이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며, 아시아 대중문화의 선두주자였다. 따라서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적 경험과 일본 대중문화의 위력을 고려하여, 최근까지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을 망설이며 주저해 왔다. 그런데, 도리어 우리 대중문화가 일본열도를 석권하며 한류열풍의 도가니를 이루고 한국어 붐까지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서구세계까지 그런 거울 노릇을 하게 되어 그 영향이 미국과 남미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러한 한류의 도저한 흐름에 대하여 오히려 한국인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연구소 일을 하고 있는 이아무개 박사는 “요즘 외국사람들을 보면 마치 눈에 콩깍지가 씌운 것 같아요. 한국사람들을 무조건 좋아한답니다. 한국인을 보는 눈빛부터 크게 달라졌어요”라고 할 만큼,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그런 까닭에 거울에 비친 우뚝한 자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어 놀랄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리둥절해 하거나 외국인들의 눈에 콩깍지가 씌운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연구실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한 박사로서, 국내외의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활동을 하다가 현재 파리에서 연구소를 운영하며 7년째 살고 있다.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한 경험이 있고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한 까닭에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잘 알고 있다.
우리 고대사 이해는 더욱 모호하다. 민족사의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바이칼호에서 비롯되었고 고대문화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기원되었다고 해석하기 일쑤이다. 북방문화 전래설로 설명되기 어려운 문화가 있으면 남방문화의 전래로 해명한다. 어느 문화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하지 않는다. 고대문화는 그렇게 이웃나라보다 한참 뒤떨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 고대문화의 뿌리를 제대로 알게 되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질을 고대부터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우리문화를 눈여겨보면, 오늘의 한류나 다름없는 문화적 역량이 오롯이 포착된다. 고대 사서의 기록이나 고고학 발굴보고서를 통해서 그러한 논거를 두루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 한류를 자리매김한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중국이듯이, 고대문화의 경우에도 중국쪽 사서의 기록과 발굴보고서가 그 위상을 잘 보여 주는 거울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료 읽기를 넓게 하지 않고 자력적인 눈으로 읽으려 들지 않는 까닭에 주체적 시선을 놓치고 있다.
현재의 한류를 비롯한 당대의 우리문화를 읽는 눈길도 마찬가지이다. 종속적 식민주의 시각으로 우리문화를 보니, 한결같이 우리문화는 외세문화의 허울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자기문화를 자기 시각으로 당당하게 읽지 못하고 한결같이 외세문화의 영향이나 종속으로 읽어야만 비로소 자기문화의 정체성을 해명할 수 있는 지식인이야말로 식민지 지식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한류가 지닌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읽는 데도 고대문화에 대한 정확한 포착이 필요하다.
다행히 중국측 고대사료에는 단편적이나마 우리 고대문화에 관한 기록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어서 다행스럽다. 게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고대 유물들이 발굴되어 고대문화 해석에 긴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고대사료의 증언들과 유물들을 증거로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를 새롭게 포착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지금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 고대문화의 정체성를 읽으려고 한다. 하나는 거울 속에 비친 지금의 우리 얼굴인 한류 현상을 우리 눈으로 읽으며 본디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추론하고, 둘은 이웃의 증언 속에 담겨 있는 민족문화 형성기의 고대문화를 우리 시각으로 해석하여 지금 우리문화의 창조적 원천을 포착해 내는 일이다. 두 방법은 공시적 시각이 서로 엇갈리지만 통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상호해석이 가능하다. 달리 말하면 공간적 반영의 거울효과와 역사적 전통의 지속효과를 함께 주목하는 것이다.
2. 고대문화에 갈무리된 ‘한류’의 문화적 유전자
3. ‘군취가무’의 문화적 유전자와 ‘한류’ 재인식
4. 문화적 정체성의 지속과 현실문화 읽기
5. 문화적 정체성의 지속과 현실문화 읽기
(중략)
한국은 중세에 중국의 영향으로 신분사회를 형성하고 근대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계급사회로 바뀌었다. 그러나 현대는 신분도 계급도 넘어서서 해방세계를 추구한다. 우리 고대문화에는 신분사회 이전에 형성되었던 정착생활과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군취가무를 두루 누렸던 문화원형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따라서 고대문화의 유전자를 통해서 현대문화 창조의 선편을 잡은 것이 ‘한류’라 할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소원하던 ‘문화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잃어버린 우리문화의 본디 모습을 되찾고 고대부터 지속되는 신명풀이 해방문화의 유전자를 민족적 창조력으로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김구 선생의 소원대로 문화의 세기에 한류열풍으로 문화의 세계화를 열어가고 있다. 문화의 세계화를 지속하려면 민족문화의 원형을 적극적으로 찾아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화의 세기에 맞는 인간해방의 문화를 새로 만들어가는 데 특별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