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 국민강좌] 국사교육 이대로 좋은가
유석재 | 현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전 문화부 학술담당
■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던 국사 과목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제대로 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교육과정이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2010학년도 대학입시를 치를 때 수능의 국사과목을 꼭 봐야 주요 대학의 인문계 학과에 들어갈 수 있다. 현재는 국사를 필수로 정한 서울대 인문계를 제외하고는 수험생들은 국사를 응시과목으로 꼭 선택할 필요는 없다.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의 입학처장들은 2007년 5월 22일 "국사과목을 수능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인문계열 입시에 반영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숙명여대한국외대도 국사 과목을 필수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대학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사는 2004학년도 입시까지 수능에서 인문자연계의 공통 필수 과목이었다. 그러나 2005학년도부터 입시 제도가 바뀌면서 자연계 학생은 아예 안 보고 인문계 학생은 안 봐도 되는 과목이 됐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을 배우는 교육과정을 적성과 특기에 맞는 과목을 배우는 '선택 중심'으로 바꾸면서, 수능 방식도 바꿨기 때문이다.
이후 국사과목 기피 현상이 생겼다. 다른 과목에 비해 어렵다고 느끼는 학생이 많고 서울대를 지망하는 최상위권 학생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인문계 학생의 46.8%가 국사를 선택했지만 2007학년도 수능에서는 절반가량인 22%만 국사 시험을 봤다.
입학처장들은 "특히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등급만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하는 국사과목을 더 기피할 것으로 보여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학생들의 국사에 대한 지식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교사와 교수들은 말하고 있다. 입시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교에서는 국사 수업을 받는 학생이 줄었다. 국사는 1학년까지만 필수과목으로 배우고 23학년에서는 극히 일부 학생만 배우는 과목이 됐다. 자연계 23학년에게 국사를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
■ 역사를 모르는 학생들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을 구별하지 못한다." "김유신 장군과 이순신 장군 중 누가 앞 시대의 인물인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입생들을 가르쳐 본 각 대학 한국사 전공 교수들의 탄식이다. 수능에서 국사 과목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전환된 뒤에 나타난 현상이다.
심지어 고조선-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왕조사(王朝史)의 흐름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이다. 수능에서 국사를 필수로 지정한 서울대조차 이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국사 과목이 사회탐구영역에 포함돼 여기저기 분산된 뒤부터 신입생들의 한국사 이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국사편찬위원회가 실시한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채점 결과, 문제가 중·고교생 수준이었음에도 1만5395명의 응시생 중51.6%에 해당하는 7949명이 70점 미만의 성적으로 무더기 탈락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대사 왜곡에 나서고, 일본이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앞으로 각계로 진출해 활동할 어린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 왜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하는가
학자들은 대체로 7개 사립대의 '국사 과목 필수 지정' 합의가 늦었지만 다행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입시에서의 필수·선택 여부가 학생들의 학습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이번 합의가 불충분하긴 하지만 국사 교육 강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좀더 근원적인 교과과정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사실상 '근·현대사' 부분이 선택과목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현재의 국사 과목은 19세기 이전 전근대(前近代) 시대만 다루는 불충분한 교과 과정이 돼 버렸다"며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근·현대사 부분까지 모두 필수 과목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회·지리 분야의 교사들이 단기간의 교육을 받은 뒤 곧바로 국사를 가르치는 현실에서 교육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이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 과목에서 배제돼 버린 각종 고시에서도 다시 '국사'가 부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사를 모르고 법관이나 외교관이 된 사람이 어떻게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의식이다.
■ 현대사는 역사도 아닌가?
한국인들은 한국 역사에서고대(古代)와 17~18세기 근세(近世) 부분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반면, 정작 현재와 가까운근현대의 역사에는 무척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2006년 11월 25일 치러진 국사편찬위원회 주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문항별 수험생 반응률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조선시대 후기(17~19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문제의 정답률이 80%에 가까운 것으로나타난 반면, 19세기 후반 개항기와 광복이후에 해당하는 문제에선 50%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그 동안 근현대사를 소홀히 다루고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때 치러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34급(중고교생 수준)과 56급(초등생 수준)의 네 가지 유형으로 그중 객관식 문제는 모두 156문제였다. 이를 ▲상고(上古) 시대(삼국시대전) ▲고대(삼국시대부터 후삼국시대 전까지) ▲고려시대 ▲조선 전기(15~16세기) ▲조선 후기(17~19세기 전반) ▲개항기(고종순종기) ▲일제시대 ▲현대(광복 이후) 등 모두 8개의 시대별 영역으로 나눠 정답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선 후기가 79.2%로 가장 높은 정답률을 보였고, 상고(76.4%)와 고대(75.9%), 고려시대(73.1%), 조선 전기(71.6%)가 시대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개항기는 53.9%, 일제시대는 62.2%, 현대는 53.2%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두 명 중 한 명 꼴로 오답을 택한 셈이다.
전 시대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역시 개화기에 해당하는 4급 32번 문제로, 정답률이 고작 16.0%에 그쳤다. 1882년의 명성황후 일기 자료를 제시한 뒤 당시 구식 군인의 차별 대우, 도시 하층민의 가담, 청나라의 내정 간섭 등이 임오군란과 관련이 있음을 짚어 내게 하는 문제였다. 정답률 19.0%에 그친 4급 41번 문제는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1947년 5월)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사이에 들어갈 역사적 사실을 묻는 현대사 문제로 정답은 제주도 4.3 사건(1948년 4월)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유영렬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처음에는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뒷부분으로 가면 별로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소홀히 했기 때문이고, 거기까지 학교에서 잘 진도가 나가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장석흥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는 "최근까지 대학에서도 좀처럼 근현대사를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있었다"며 "근대의 직접적인 연장선이 우리의 현재인데도 그걸 잘 모르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 정답률은 문화사가 76.2%로 가장 높았고, 경제사(75.0%)와 사회사(72.1%)가 그 뒤를 이었다. 정치사는 66.2%로 가장 낮았다. 모두 15개의 객관식 문제가 출제된 고구려-발해 관련 문제의 정답률은 고대사 전체 정답률보다 6%포인트 정도 낮은 70.9%에 그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관심을 무색하게 했다.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과의 역사 문제에 겉으로만 목소리를 높일 뿐 정작 내실 있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세태를 반영한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