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국민강좌] 한국 고대복식의 창조성과 아름다움
(신라 금관의 아름다움과 함께)
박선희 교수 | 현 상명대학교 교수
(사)국학원에서는 제69회 3월 국민강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이번 강좌에는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선희님을 특별초청했습니다. 단국대 사학과와 국립대만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 학과장을 역임하였으며 우리나라 古代服飾 硏究에 큰 획을 그은 “韓國古代復飾”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강의주제는 [한국 고대복식의 창조성과 아름다움]으로 , 최근 신라 금관연구 결과를 곁들여서 진행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민족 고유의 복식문화 연구에 힘을 쏟은 박선희교수의 흥미롭고 뜻깊은 강의가 기대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주제 : 한국 고대복식의 창조성과 아름다움(신라 금관의 아름다움과 함께)
○ 강사 : 박선희 교수(현 상명대학교 교수)
○ 일시 : 2009년 3월 10일 화요일 오후 7시
○ 장소 : 대한출판문화협회 (전화:02-735-2701~4)
고대 복식 연구는 한민족의 사회와 문화의 원형을 지니고 있는 고조선시대부터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기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날의 복식사 연구는 한국 고대 복식 연구의 출발점을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부터 잡고 있다. 그것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삼국시대는 그 초기부터 중국이나 북방 및 일본 등의 지역과 접촉이 활발했다. 그러므로 종래의 복식사연구에서는 삼국시대에 사용된 복식의 재료와 양식은 당연히 중국이나 북방지역으로부터 수입되었거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했다. 또한 한국 고대 복식의 관한 연구가 그 시대의 한국과 중국 및 북방지역의 복식과 충분히 비교·분석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국 고대 복식의 원형은 중국이나 북방 호복계통에서 원류하였던 것으로 통설화 되었다. 전파론의 방법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요소끼리 찾아서 줄긋기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 복식의 기본이 되는 의복의 재료로는 가죽과 모직물, 마직물, 사직물, 면직물 등이 있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이들 재료들이 대부분 중국이나 북방 지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가죽과 모직물 및 마직물의 경우 고조선은 중국이나 북방 지역보다 그 가공과 직조의 시작 연대가 앞설 뿐만 아니라 그 기술 수준도 높아 중국에 수출하는 교역상품이었다. 먼저 복식 재료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래의 연구에서 한국과 중국 및 일본 학자들은 한결같이 고대 한국의 양잠 기술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과 같은 시기인 서기 전 2700년경에 실크 섬유를 독자적으로 생산하였고 이러한 실크 섬유의 생산은 그 후 계속 이어져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제품들이 생산되어 대중화되었다.
면직물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짜여 진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면 종자를 들여온 것이 그 시작이라고 보아왔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달리 고대 한국에서는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문익점이 원나라로부터 들여온 것과 다른 품종인 초면으로 면직물을 생산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초면을 이용하여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섬세한 면직물을 생산하여 중국에 예물로 보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한국 고대 복식의 원형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종래에는 한국 고대의 관모에 대해서 그 원류를 스키타이계로 보았고 금관에 대해서도 스키타이와 시베리아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관모와 금관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고대에 한민족이 널리 사용하던 관모의 변화 위에 고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어온 한민족 고유의 장식 형제가 계승되어 금관의 주요 양식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날의 복식사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웃옷과 겉옷의 경우 여밈새와 소매 폭 등을 기준으로 삼아 중국 계통은 오른쪽 여밈과 넓은 소매로, 북방 계통은 왼쪽 여밈과 좁은 소매로 구분하여 왔다. 이 가운데 북방계통의 요소가 우리에게 들어온 것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고대 한국 복식의 성격은 원래 호복 계통으로 구분되며 그 후 중국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에서는 소매가 큰 옷을 입었으며 이는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에 그대로 이어졌다. 이 같은 여밈새와 소매에 관한 비교와 검토의 결과는 고대 한국 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의 호복 계통으로부터 이루어졌다는 종래의 통설을 수정하도록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나 북방 지역의 복식 양식에서 보이지 않은 고대 한국 웃옷과 겉옷의 고유한 선(?)의 양식과 옷고름의 여밈새 처리 방식 등은 고조선시대부터 줄곧 이어온 고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복식 형제임을 밝혔다.
종래의 연구에서는 고대 한국의 아래옷인 바지는 북방 민족 계통에서 유입된 것이고 여자의 치마의 원류는 중국 계통의 의복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고대 우리 민족의 바지와 치마는 중국이나 북방 지역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조선시대부터 계승해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복식 양식임을 확인하였다.
그간 복식사와 고고학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의 복식에 나타나는 허리띠는 북방 계통이라는 견해를 가져왔다. 그러나 고조선은 북방 지역과 달리 허리띠를 묶는 모습과 위치가 자유스러웠고 신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종류의 허리띠를 맺다.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옷을 입는 우리 민족의 고유성을 지닌 복식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에 우리 민족과 중국은 모두 목이 없는 이(履)를 신의 기본 양식으로 하였다. 그런데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중국과 접촉을 가졌으면서도 중국의 혜(鞋)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이 북방이나 중국과는 다른 고유한 문화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유한 복식문화권을 고조선의 문화권이라는 차원을 넘어 고조선의 정치권 즉 통치지역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간 고조선의 무기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갑옷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였다. 이는 고조선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갑옷이 생산되지 않았으리라는 선입관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선입관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갑옷은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이르러서야 생산되었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사국시대에 착용한 갑옷들을 고조선으로부터 계승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원류를 북방 민족의 무장형태에서 찾거나 중국 계통의 무장 방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는가 하면 북방 계통의 무장 모습을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중국 계통의 무장 방법을 들여와 복합적으로 형성시켰을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조선은 뼈, 가죽, 청동, 철 등을 재료로 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독자적으로 다양한 갑옷을 생산하였다.
고조선의 뒤를 이어 건국된 여러 나라의 갑옷은 고조선의 갑옷을 계승하여 나라마다 약간의 특징을 지닌 갑옷으로 발전시킨 것이며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북방 지역 갑옷보다 훨씬 우수하였다. 여러나라시대 동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의 대외활동은 이 같은 주변국보다 뛰어난 무구와 무력의 우월성이 그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 갑옷의 경우도 고구려에서의 말 갑옷 생산 시기는 중국이나 북방 지역보다 적어도 2세기 정도 앞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내용에서와 같이 비교연구를 상세히 해보면, 그동안 중국이나 북방민족의 영향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진 문화현상들이 실제로 우리민족이 창조해낸 독창적 문화라는 사실로 새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근래에 확인된 과학적인 자료와 상식에 기초하여 전래설이나 영향론을 펼쳐야 하는데, 우리의 문화는 당연히 중국이나 북방지역에서 왔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전제로 자료를 찾고 해석하는 까닭에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복식문화를 비롯한 한민족 문화의 연구에서 과학적인 학문에 기초한 새로운 근거들을 외면하고, 중국이나 북방지역 등의 복식문화와 줄긋기를 통해 우리의 것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들을 찾아 전래설을 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또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복식문화의 연구결과들이 학계의 고정관념 때문에 논쟁적 연구로 발전시키지 않은 채 학문적으로 왜곡되거나 외면되어져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