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 사건의 재조명은 역사의 재창조 작업이다
역사적 사건의 재조명이라고 말하면, 흔히들 이미 이전에 있었던 사실을 드러내는 문제라고 바라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물론 이런 입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역사, 특히 고대사에 관련되어서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역사적 사건을 드러내기만 하면 그것이 역사가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란 역사적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들의 총체이자 총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래와 시멘트, 석재와 목재 등의 재료가 쌓여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집이나 건축물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것들이 서로 요소요소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그것도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경우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집이나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역사는 단적으로 말해서 역사적 사건들의 나열들이 아니라 하나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인간의 삶의 과정으로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역사적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수많은 역사 학자들이 그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가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역사란, 수많은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이고, 그것은 결국 역사의 재창조 작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어떡하든지 간에 수많은 사건들을 하나로 긴밀하게 결합시키자면 그 각각의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를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해석은 결국 새로운 역사 이해이자 창조 작업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각 사건들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를 새롭게 의미 부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파악을 뜻하고, 그것은 결국 인간의 삶에 새롭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재창조 작업을 한다고 하면서 있지도 않는 사실을 자의적으로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역사 연구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것은 역사 왜곡이니까요. 하지만 어떤 사실에 근거하여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풍부히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역사의 이해는 항상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고 하니, 그럼 진정한 역사적 실체가 있기는 하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답하자면 당연히 그 실체는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인류가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삶을 이루며 살아 왔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인류의 삶을 어떤 고정 불변한 것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정 불변적이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하여 부단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하여 과거의 경험도 참조하면서 미래를 개척하여 나간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역사에 대한 이해도 그에 맞추어 변화 발전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단적으로 한 인간의 경험만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결정하게 될 때 지난날의 삶을 총화하고 그에 따라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그 판단 속에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모든 과정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내려지는 결론이 달라지는 것도 그 총화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이 이러하다면 인류의 삶의 과정, 즉 역사의 발전 과정 또한 이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난날에는 별로 큰 사건이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 시대에 따라 새롭게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 사건으로 자리 매김 되기도 합니다. 고려의 대몽 항쟁 기에 단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하였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나, 또 일제 침략 시기에 신채호 선생님이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 일천년 이래 최대 사건으로 그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던 것은 다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옛날의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 그 이해를 더욱 풍부히 해 나간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인간의 삶이 부단하게 발전하는 추세에 맞게 역사 과정 속에 존재하는 사건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상 역사를 알려고 하는 것은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여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 이해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 파악은 죽어 있는 역사 이해로서 결국은 현실의 삶을 개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이 재조명되어야 하고, 바로 그랬을 때 그것은 결국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으로 귀결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재조명하여야 하는가?
3. 단군조선의 건국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4. 단군조선의 건국에 대한 재조명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중략)
5. 맺음말: 역사적 사건의 재조명은 민족의 존엄을 세우는 작업이다
우리 민족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정확히 밝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민족의 영광된 기록을 남기는 것인데도 도리어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민족의 뿌리와 관계되어 있는 부분들마저 자신들의 역사인 것처럼 꾸미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요? 그러면 예로, 치우천왕은 아무리 봐도 우리 조상들의 얘기로 보이는데, 중국에서 이것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게다가 중국 길림성 왕청현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고 불리는 웅녀상이 세워진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흔히 역사를 생각하면 그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들이라고 바라봅니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옛날의 사건들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역사란 것을 자연과학 대하듯이 한다는 것이죠.
물론 역사의 기술 자체가 합당해야 하니 과학에 근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사람의 가치가 개입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주변국들을 침략하여 자기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엄청난 제국을 형성한 사람을 보고 영웅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주변 국가들을 못 살게 군 침략자라고 낙인찍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신사참배를 두고 말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뭘 말해주는 겁니까? 그것은 결국 자기의 역사를 자신이 제대로 정립하지 못할 때 얼마든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왜곡하고 심지어는 침략의 길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이의 예는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에 대한 이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광개토호태왕에 대한 대부분의 이해는 강력한 정복군주라든지 광활한 영토를 넓힌 군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광개토호태왕릉의 비문을 보면 그 핵심적인 내용이 단군조선의 전통을 이어받아 천손의 나라라는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세우고 모든 단군족을 단합하여 영원토록 번영과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그 토대를 쌓았던 것에 대한 업적과 치적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광개토호태왕의 지향점은 지난날 단군조선이 차지했던 모든 영토와 주민을 하나로 통합시켜 명실상부하게 단군조선을 계승한 나라인 천손의 나라를 세워 영원토록 번영 무궁하려는 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광개토호태왕은 이런 전통이 계승되도록 고심하고선, 직접 수묘인연호를 엄명하였고, 그 결과 비문의 1775자 중에 무려 637자가 그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대왕의 업적이나 왕릉의 보호 차원이었다면 이토록 많은 글자를 수묘인연호에 할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천손의식이 끊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이어지도록 하는 고심의 입장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군조선에 대한 계승의식이 뚜렷한 광개토호태왕이 존재했던 고구려 나라를 두고 중국은 자신들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또 일본은 그 비문의 내용 일부를 왜곡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도구로 이용했으니······. 도대체 이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엄을 세우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존엄은 자신이 세우는 것이지 어느 누가 대신 세워주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 민족사를 우리 입장에서 재조명하지 못하면 그걸 기화로 우리 민족사를 훼손하고 심지어 우리 민족사까지도 도둑질해 간다는 것입니다.
민족사가 훼손당하고 도둑질 당한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요? 자신이 존립 근거와 기반을 다 뺏겨 놓고서 무엇으로 살아갈 것입니까? 그러니까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지키는 것은 자신의 존엄을 세우는 문제이자 동시에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계화시대에 그 무슨 시대착오적으로 민족이라고요? 그럼 세계화가 되면 나라와 민족이 없어집니까? 솔직히 세계화라는 것이 우주로 가자는 것은 아닐 것이니, 그럼 결국 다른 나라로 진출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런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 나라와 민족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근거와 기반을 잃고 버리고서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자신을 존엄을 세울 것이며, 그 무슨 힘으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화라고 말을 많이 외치지만, 분명한 것은 돈은 눈이 없지만 돈을 가진 사람은 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돈은 돈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때일수록 더욱 자신의 존엄을 자기 자신이 세워야 합니다.
게다가 사회와 역사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개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성이 더 발휘되는 것이고, 또 집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고, 나라와 민족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나라와 민족의 존엄이 더욱 빛내어 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더욱 다방면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존엄을 빛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단군조선의 건국 사건을 재조명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일환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강사 : 정호일 작가(소설 단군왕검 저자)
▷ 주제 : 역사적 사건의 재창조 ? 부제: 단군조선 건국에 대한 재조명
▷ 일시 :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오후 7시
▷ 장소 : 호연재 HRD센터-뮤지컬하우스 6층 (전화:02-2234-3687~9)
▷ 찾아오시는 길 : 3호선, 6호선 약수역 8번 출구에서 2분 거리 (약도 바로가기)
▷ 참가비 : 무료
▷ 문의전화: 02-2016-3251, 010-2644-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