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국민강좌] 한국춤의 원형과 선도문화
이애주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1. 한국춤이란
1) 자연의 춤
모든 생명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에 근원한다. 사람도 자연에서 태어난 한 생명의 종이다. 춤을 인간 삶의 몸짓이라고 할 때, 특히 자연에 바탕을 둔 한국춤이란 모든 존재의 근원인 자연의 몸짓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춤은 우주공간에서 움직여지는데,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움직여지는 인간의 몸놀림이다. 천?지?인 삼재(天 ? 地 ? 人 三才)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사위, 땅사위, 삼태극사위라고 할 수 있다.
몸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에 내맡겨진 몸이 자연과 함께 움직여지는 것이다. 예컨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물이 흐르는 모습 등 자연 만물의 움직임이 춤의 몸동작이 되는 것이다.
2) 내면의 정신이 드러나는 몸사유의 춤
팔다리를 움직여 춤추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몸의 형상이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사유의 정신을 보는 것이다. 바로 춤이란 움직임 안에 내면의 정신이 함축된 몸사유?몸사상의 춤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춤사위로 설명하면 춤의 처음과 마지막에 절드림을 하게 되는데 몸을 굽혀서 웅크리게 된다. 몸을 굽힘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이고, 그 굽힘이 연결되어 모든 것을 비우게 된다. 이애주, <우리 몸짓과 소리를 통하여 본 민족의 정체성>, 한국정신과학학회논문집 제8호 제2권(한국정신과학학회, 2004), 11~24면 참조.
바로 춤에서 기본 몸짓이 되는 절드림의 몸짓만 보더라도 한국춤이란 내 자신을 숙이고 낮춰 모든 것을 비움으로써 무(無)의 세계로 가는 정신적인 사유의 몸짓이다.
2. 인류문명사 속에서 보는 한국춤
1) 춤은 역사와 함께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스러지는 것의 끝없는 반복과 순환이 역사라고 한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 나타난 한 작은 움직임이 춤이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法性戒≫
이라는 어구에 잘 나타나있듯 한 찰나의 생각이 영원한 무량겁으로 이어지듯이 그 작은 몸짓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하여 삼세를 일관하는 영원의 몸짓이 되는 것이다. 곧 춤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고 그 역사의 구조는 춤의 구조가 된다. 따라서 춤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춤과 인류문명사
한국춤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하는데 바로 한국 민족의 시원에서 출발한다. 춤은 태고부터의 몸짓이 함축되어 역사의 축적과 함께 현재에 이른다.
또한 한국춤은 동북아시아(요하, 몽골, 바이칼 등을 포함)?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과 비단길(실크로드)을 통한 유럽 문명과의 연계성, 미주 대륙과의 연계성 등과 함께 인류문명권의 큰 틀에서 조망할 수 있다. 다음 기회에 이 부분에 대하여 연구를 넓혀갈 예정이다.
만년 이상의 역사와 함께 구성된 문화종주국으로서의 한국문화 그리고 그 문화의 근원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춤은 문화적으로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또한 학문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3. 생명의 몸짓과 바탕
1) 춤은 생명의 몸짓
춤은 삶의 몸짓이라고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춤을 추는 것은 생명가진 존재의 생명의 움직임이다. 생명(生命)의 의미는 명(命 ; 일, 역할)이 생겨나는(生) 것으로 곧 춤의 움직임은 일의 나타남이 된다. 생명력이란 일(명)을 하기 위한 기운이 퍼지는 것임으로 춤은 생명력의 드러남으로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춤은 생명의 몸짓이다.
2) 춤의 바탕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中庸≫
라는 말은 춤의 바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란 하늘의 명(命 ; 역할)을 성(性)이라 말함인데, 춤이 생명의 몸짓이라면 성(性)은 춤의 바탕이 된다.
다음으로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는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말함인데, 성이 하늘의 명이고 춤이 생명의 움직임이라면 그 모든 것이 자연이라 할 때, 그 자연의 움직임을 따름을 도(道)라 하고 있다.
그 다음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는 배움이란 도를 닦는 것을 말함인데, 자연의 움직임을 따르는 것이 도라면 자연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것이 춤의 배움이 된다. 거꾸로 본다면 춤은 자연(性)을 따르는 것이고, 춤을 익힌다는 것은 몸을 통한 수행(修道)이 되어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4. 한국춤의 갈래와 의미
1) 한국춤의 갈래
한국춤을 대략 몇 가지 갈래로 나누어 보면 큰 특성과 함께 굿춤, 독춤, 풍물춤, 탈춤, 무예춤, 곡예춤, 소리춤, 놀이춤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각 갈래의 춤은 역사와 지역 환경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며 형성되어 왔다. 이 부분에 대하여도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2) 춤과 무(舞)의 의미
위의 모든 춤을 뜻글자로 쓰면 무(舞)라 한다. 그 무(舞)자의 근원을 살피면 첫 번째로 무(巫)의 의미를 들 수 있다. 무(巫)의 글자를 분석해볼 때 천지 즉 (하늘)과 (땅)을 (잇는) 人人(사람)이 춤을 추는 형상의 글자이다. 바로 춤이란 하늘 ? 땅의 우주공간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것으로 그 춤은 특히 무당춤이나 굿춤에 잘 나타나 있고 다른 모든 춤들도 같은 이치(理)이다.
무(舞)자의 또 다른 의미는 같은 발음 ‘무’에서 ‘武’를 들 수 있다. 무(武)는 무예, 무도에서 나타나는 무(武)의 성격과 같이 일순간에 닫히고 열리는 강건하고 역동적인 춤의 본성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舞)의 총체적이고 융합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無)를 들 수 있다. 앞서 절드림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몸을 숙여 낮추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 무아(無我) ? 무심(無心)의 경지인 ‘無’라 표현할 수 있다. 이 無는 외형적 춤의 움직임을 통해 내면의 정신으로 들어가는 형이상(形而上)적인 춤의 정신세계를 이름이다.
이와 같이 뜻글자인 한자로 舞, 巫, 武, 無의 4무는 서로 조화하고 융합하여 춤의 본질을 확연히 드러내며 대동의 춤 세계를 빚어낸다.
5. 춤추는 몸
1) 불립문자(不立文字)
사람은 말과 글로 표현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때 몸을 움직여 자기 의지(의사)를 나타내었다. 바로 내면의 깊은 깨달음을 말이나 글로 대신할 수 없을 때 춤의 몸짓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춤은 불립문자의 속성을 지닌 것으로서 내면의 깨달음을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춤추는 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불립문자의 속성을 가지고 춤을 추는 몸짓은 몸에 의해 가시화되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몸짓 즉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큰 의미의 춤이라 할 수 있는데, 몸짓을 하는 바로 그 몸은 무엇인가 살펴보도록 하겠다.
몸의 의미는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심기신’(心氣身)이라는 대목에 잘 나타나있다. 즉 몸(身)은 심(心)과 기(氣)가 조화된 몸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운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 의하면 심기신(心氣身)의 본성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성명정’(性命精)으로 나타난다.
심(心) 곧 마음은 성(性)을 바탕으로 나타난 것이고, 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氣)는 명(命)에 의한 것이고, 몸인 신(身)은 정(精)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명정이라는 본성이 심기신의 몸을 통해 나타나 움직여질 때 몸짓이 되고, 그 몸짓은 춤이 된다.
6. 춤의 탄생과 숨쉼
1) 몸짓의 탄생
몸짓의 탄생은 생명의 탄생에 의한 것이라 할 때 춤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즉 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어머니 뱃속의 태아 때부터 그 태동의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춤의 수많은 몸짓은 태아의 웅크린 형상 이애주, <민속춤의 역사>, ≪한국민속사입문≫(지식산업사, 1996), 545~566면 참조.
에서 근원하고 또한 그 모습을 본뜨고 있다. 다시 설명하면 그 웅크림을 펴며 들이쉬고 다시 웅크리며 내쉬는 숨이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2) 숨쉬기의 중요성
생명체의 대사는 들이쉬는 숨의 산소로 밖에서 받아들이는 영양소를 연소시켜 기운(에너지)을 얻게 된다. 그 작용이 기본이 되어 숨쉬기는 생명을 관장한다. 따라서 춤을 출 때의 숨쉬기는 몸사위를 빚어내는 기본이 된다.
태아가 숨 쉬는 것을 관찰하면 알 수 있듯이 복식호흡이 기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숨쉬기는 점점 위로 올라가 가슴으로 쉬게 되고, 드디어 생명이 다해갈 무렵에는 목으로 간신히 얕은 숨을 쉬다가 생을 마감한다. 따라서 생명력을 키우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한 춤은 몸을 웅크리고 펼 때 제대로 된 복식호흡의 숨쉬기를 바탕으로 해야 함은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한편 숨쉬기는 단순한 공기의 출입(出入)만이 아니라 사람을 둘러싼 우주의 기운을 주고받음을 함께 한다. 그 기운은 특히 회음과 백회가 중요한 출입처다. 하늘?땅의 관점에서 숨쉬기를 설명할 때 하늘의 기운은 백회를 통해서 받고, 땅의 기운은 회음을 통해서 들어와 몸 전체로 퍼지게 되므로, 그러한 사실을 앎이 춤의 본질적 인식이 된다. 바로 그 기운의 출입이 생명의 근원인 숨쉬기의 본질이다.
7. 생명과 춤의 법도
1) 춤이 가는 길
춤이 움직여지는 길을 춤길이라 할 때 그 길은 시 ? 공간에서 펼쳐지는 길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 된다. 삼재(三才)의 관점으로 보면 천도(天道)?지도(地道)? 인도(人道)의 길이며, 그 길은 우주에 존재하는 자연의 춤길이 된다.
2) 춤과 역(易)의 원리
역은 변화를 뜻한다. 춤사위도 변화가 바탕이므로 춤은 곧 역(易)이다. 앞서 살핀바와 같이 춤의 변화는 자연히 도를 따르게 되고, 그것은 한 마디로 ‘역종도야’(易從道也)라고 할 수 있다. 춤의 변화원리는 우주의 변화원리인 변역(變易)?간이(簡易)? 불역(不易)으로 말 할 수 있다. 變易의 의미는 만물이 변화하듯 모든 움직임이 변함이고, 簡易는 그 변화의 진리가 쉽게 변함을 뜻한다. 이와 같이 쉬운 원리로 만물이 변하면서, 그 안에는 不易이라는 불변하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몸짓은 시종일관 변하면서 그 변화는 굽히고 펴듯 쉬운 원리로 변화하는데 그 내면에는 아침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가면 오고, 오면 가는 불변의 원리가 있다.
8. 춤과 신성
1) 춤과 신(神)
앞서 춤은 몸으로 춘다고 하였는데 몸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하여 몸을 놀리게 되는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춤을 추는 사람은 무엇으로 춤을 추는가. ‘우아일체 범아일여’(宇我一體 梵我一如)라 하였듯이 우주와 내가 하나고, 모든 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의미는 곧 모든 생명과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에서 보이듯, 신과 인간이 하나로 ‘신인합일’(神人合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의미한다. 즉 ‘신즉인 인즉신’(神卽人 人卽神)으로 풀어진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내 작은 몸은 우주와 또 그 우주 안에 계시는 하늘님의 성품을 포함하고 있고, 그 우주와 신성의 하늘님은 작은 미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즉 人卽神 神卽人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춤은 신즉인 인즉신인 내가 신성(神性)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신기(神氣)와 신명(神命)으로 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춤은 신의 명(命)을 받은 몸이 신기로 추는 신춤이 된다.
9. 맺음말
지금까지 본 바에 의하면 춤은 ‘격물치지’(格物致知)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춤은 형상적 움직임(物)을 통해서(格) 춤 내면의 이치를 인식해 가는 것(致知)으로 자연스러운 춤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이르는 길이다. 즉 춤이 자연의 움직임이고, 나아가 자연 그 자체임을 바로 알아감은 수행 그 자체로서의 춤을 뜻한다. 즉 格物致知는 자연스럽게 ‘지행합일’(知行合一)로 연결되는데 바로 그것이 춤임을 인식한다.
따라서 춤은 눈에 보이는 형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까지를 관통하여 ‘행'(行)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그러할 때 몸사상 ? 몸철학으로서 근원적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
○ 주제 : 한국춤의 원형과 선도문화
○ 강사 : 이애주 교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 일시 : 12월 8일 (화), 19:00~21:00
○ 장소 : 호연재 HRD센터-뮤지컬하우스 6층 (전화:02-2234-3687~9)
○ 찾아오시는 길 : 3호선, 6호선 약수역 8번 출구에서 2분 거리 (약도 바로가기)
○ 참가비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