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단기 4347)년 12월9일 개최된 137회 국학원 국민강좌에서이이희진교수가 발표한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 주제로 발표한 자료입니다.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몇년 전 각종 포털 사이트에 ‘잃어버린 고구려 역사 137년을 찾았다’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이 책에서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다.
외국의 초\중\고\대학생 및 교사들이 세계사 수업시간에 즐겨 찾는 유명 교육 포털사이트가 한국의 삼국시대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했던 것을 시정했다. 삼국의 건국 연도를 고구려는 BC 37년 대신 AD 100년으로, 백제는 BC 18년 대신 AD 250년으로, 신라는 BC 57년 대신 AD 350년으로 각각 기술했었다. 이렇게 된다면 고구려는 137년, 백제는 268년, 신라는 407년의 역사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청껏 외국의 무식한(?) 한국사 인식을 비난해놓고 보니 이 내용은 바로 우리 나라 교과서에 쓰여져 있는 그대로다.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 백제는 3세기 고이왕, 신라는 4세기 내물왕 때가 되어서가 비로소 고대국가체제를 갖추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면 무조건 이렇게 외워야만 대학입학시험에서 피해를 보지 않는다. 바로 그런 교과서에 이렇게 써놓고, 이제 와서 외국에다가 너희들이 왜곡된 내용을 써놓았으니, 고쳐내라 했다.
무엇 때문에 사회적으로 ‘왜곡’이라고 비난받는 내용이 버젓이 교과서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식민사학의 영향인 것이다. 그 영향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또 그런 얘기를 함부로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들만큼 막강하다.우리 교과서에서부터 고치자는 얘기가 강력하게 나오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권에서 고대사를 전공한다는 사람들은 식민사학의 영향력을 입에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정도로 그들의 힘에 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역사를 왜곡시켜 현실에서 국가\사회를 자신들 유리한대로 이끌어가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를 조작하는 작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어떠한 형태이건 챙길 수 있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이런 짓을 가장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해먹은 집단이 일본의 기득권층이다. 고대 일본의 야마토(大和) 정권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역사책이 바로 ??????일본서기??????다. 그리고 그 역사책을 통하여 만들어낸 역사관이 황국사관이다.
황국사관이 어떻게 역사를 쓰겠다는 심보인지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국가형태, 즉 만세일계의 황실을 받들어 온 일본민족(국민)의 역사를 구성하고 황실의 존엄과 국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라는 말에 잘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이전 일본의 역사서술 목적을 한마디로 하자면 천황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일본의 기득권 층은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하여 식민사학을 만들어내기 훨씬 전에 자기네 백성을 조종하기 위한 역사부터 만들어낸 셈이다. 그게 바로 황국사관이다.
식민지배의 정당성도 이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황국사관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천황 밑에 있는 일본 백성 등쳐먹으려고 만들어냈겠지만, 근대에 접어들어 일본이 강해지면서부터는 그 차원에서 끝나지 않게 된다. 일본과 별 상관없이 지내왔던 주변 민족들까지 억누르는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다 보면 고대사에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료가 적은 고대사 분야는 각 시대사 중에서 조작하기에 가장 쉬운 분야일 뿐 아니라,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식민사학’이라는 말 자체가 학술용어라고 보기가 어렵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역사가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역사 본연의 자세를 가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교훈을 조작해내는 역사일 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본제국주의자들 좋으라고 멋대로 만들어 놓은 역사를 보고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의아해질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아직까지 일제의 식민사학에 추종하는 자들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인지. 또 그런 자들은 무엇 때문에 식민사학에 집착하는지, 어떻게 그런 자들의 세력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에 근대사학이 성립된 이래 역사학계에 ‘식민사학’이라는 말은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식민사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식민사학의 범주는 식민지배를 위해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조작하는 논리를, 별다른 근거로 없이 쫓아가고 있다면 식민사학의 범주로 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는 온갖 억측까지 동원해서 그런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행각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 사례는 일단 3가지 정도 들 수 있다.
1. 초기기록
2. 뒤바뀐 힘의 균형과 임나일본부
3. 신라가 일본에 저자세 외교를 했다?
이러한 내용을 퍼뜨린 계파의 거두가 바로 쓰다 소우기치(津田左右吉)였다. 이 계파 특징은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는 ??????일본서기??????를 비판한 것만으로도 황국사관에 비판적이며 따라서 식민사학자 부류에서도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를 이용해서 쓰다를 일본 군국주의에 저항한 ‘양심적인 학자’정도로만 기억하도록 하는 사람 많다. 그렇지만 정작 쓰다 자신이 황국사관 자체를 비판할 의도가 없었다.
일본의 근대화시기에, ??????일본서기??????를 비롯한 일본 고대사 기록의 황당한 역사조작은 어느 정도까지 밝혀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래 놓고 보니 고대사에 대한 그림이 여러 군데서 이상해진다. 너무 심하게 과장을 해 버릇하면 빈축을 사게 되니, 쓰다가 걱정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쓰다의 의도는 남들에게 내세우지 못할 만큼 창피할 정도의 과장과 왜곡에 대해서는 스스로 걸러내는 척이라도 하자는 취지였을 뿐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쓰다 스스로 밝힌 입장이 앞서 소개했던 ‘세계에 유례가 없는 국가 형태, 즉 만세일계의 황실을 받들어 온 일본민족의 역사를 구성하고 황실의 존엄과 국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라는 말이 바로 그의 말인 것이다. 지금도 다른 시대 전공자에게 쓰다가 황국사관 추종자였다는 얘기 해주면 놀라는 사람 많다. 그럴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철저하게 쓰다의 정체를 숨겨 주었던 셈이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식민사학의 맥을 잇고 있는 이른바 ‘후식민사학’의 논리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골수 식민사학자들의 논리와는 조금이라도 다르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이 식민사학과 국수주의 양쪽을 모두 극복할 논리를 개발한 것처럼 내세우기도 한다.
이쯤에서 생겨나는 의문도 있을 것이다. 일본 학자는 그게 자기들 식민지배에 필요하니까 식민사학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보급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한국사람이 무엇 때문에 거기에 추종하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에 그런 것을 보급하고 다니겠느냐는 점이다.
인간이 똑똑하다고 하지만, 사람이 배운 바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식민사학 추종자들에게도 바로 이 점이 적용된다. 그들이 망해버린 일본제국에 특별히 충성심을 가지고 있어서 식민사학에 매달릴 리는 없다. 그저 배운 게 세상 진리의 전부인 줄 아는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뿐이다. 연구를 통해 잘못된 정보를 검증하고 수정하는 학자의 특성을 잃어버린 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물론 더 캐고 들어가다 보면 보다 흉칙한 이유도 발견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엉터리라고 하면 그 사람이 학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대부분은 이런 힘든 길보다 쉬운 길을 택한다.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진리라고 고집을 부리는 방법이다. 지금도 여유 있는 나라가 공연히 남의 나라 학생에게 장학금 주어 가며 자기 나라에게 공부시켜 주는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 나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키워 이용해 먹자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일본은 식민지배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에 관한 한 줄기차게 투자를 해왔다. 대한민국의 고대사 학계는 여기 제대로 걸린 꼴이다.
이런 성향이 원로 몇 사람에게서만 끝이 났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굳이 식민사학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식민사학을 심었던 원로들은 연구와 함께 다음 세대의 학자를 키워내는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그랬듯이, 학생은 선생에게 배운 성향을 버리기 어렵다. 당연히 원로 학자들이 배운 식민사학적 성향은 똑같은 과정을 거쳐 그들이 키워낸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좋게 말해서 ‘학파’라는 이름으로 패거리가 지어지게 된다. 대한민국 고대사의 기틀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바로 그 원로학자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 역사학과의 초창기 멤버였다. 당연히 그는 교수로써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그들이 고대사 학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업적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다른 대학에서 그 정도 수준을 연구성과랍시고 내놓았다가는 공개석상에서 망신을 당하고 매장되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을 연구랍시고 내놓고도 무사할 만큼, 또 그런 연구성과가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을 만큼 적어도 고대사학계는 ‘일류대학’의 동문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좋은 학교’ 뿐 아니라, 행세 깨나 하는 대학에는 대부분 그 대학 출신들이 교수로 들어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패거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 그 위세에 눌려 다른 학파는 눈치 보기 바쁘다. 심지어 자기가 살기 위하여 앞잡이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에서 그들이 식민사학 추종자로써의 행태를 보인다고 감히 뭐라할 사람은 별로 없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럴 만큼 일류대학의 이른바 ‘프리미엄’이 말하는 사회다. 그 프리미엄이 식민사학 추종자를 키워내고 지켜줄 만큼의 횡포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