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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회 국민강좌] "한국역사의진실" - 이을형교수 2016.01.28  조회: 2916

2015(단기 4348)년 3월10일 개최된 140회 국학원 국민강좌에서

이을형교수(숭실대학교 법과대학장 역임) "한국역사의 진실" 주제로 발표한 자료입니다.




194종 한민족, 고대 아시아민족은 배달조선족


이을형의 ‘법과 정의’…한국의 상고사 찾기(62)-단군조선(檀君朝鮮)과 고대역사(31)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들어가며 - 고대 숙신국(肅愼氏)의 역사도 바로 잡고가야(2)

 

정인보(鄭寅普) 선생은 우리 한민족의 호칭은 194종이나 된다고 했다. 고대 아시아민족들은 거의가 우리 배달조선민족의 후예인 한민족들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터키에 사는 돌궐족은 원래 투르크족이고 선비족의 후손들이다. 터키는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고대시대 가을추수 후 자리를 같이하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음식을 나눠먹었던 형제들이다. 그들은 우리처럼 역사왜곡이 없이 고대역사를 올바르게 배웠다. 이에 터키인들은 고대 우리와 같이 어울린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보면 먼저 형제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은 수많은 부족국가를 이뤄 대륙에 산재해 살아 호칭이 다양하다. 그러나 중국사서의 조선 관련기록은 조작, 왜곡, 변조가 너무 심하다. 우리는 잘못 된 사서를 보고 너무 무지하다. 중국문헌은 믿을 것이 못 되는 연구이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숙신씨(肅愼氏)의 기록도 모두 없애 우리나라는 아예 숙신씨(肅愼氏)에 대한 역사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 역사에는 숙신국에 대한 항목조차 찾기 힘들다. 주지하다시피 환국(桓國)시대에는 우리한민족의 나라만도 12~16분국(分國)이 있었다.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卑國), 탁위국(?韋國), 통고사국(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 등이 모두 우리 한민족이다.

 

또한 배달국에서 고조선 이후에는 조선, 숙신(肅愼), 직신(稷愼), 발숙신(發肅愼), 발조선(發朝鮮), 번한(番韓), 진한(眞韓), 마한(馬韓), 삼한(三韓), 주신(珠申), 구환()(舊桓()), 구려족(九黎族), 삼묘(三苗), 구이(九夷), 대진국(大震國), 번조선(番朝鮮), 말조선(馬朝鮮), 진조선(辰朝鮮), 동이(東夷), (), (), (?), 부여(夫餘), 동북이(東北夷), 고구려, 신라, 백제, 후고구려, 고려, 발해, 조선, 대한(大韓) 등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 한민족의 호칭은 이처럼 수백 종에 이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사사료가 없기에 역사서에도 없는 것이 되고 있다. 이번 칼럼은 지난 글에 이어 숙신국(肅愼國)의 역사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계(文化系)의 동이족과 야만계(野蠻系)의 동이족

 

우리 한민족은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역사를 통해 오랫동안 강대한 국가를 이뤘다. 이들 역사를 일군 동이족을 좀 더 구분하면 문화계(文化系)의 동이족과 야만계(野蠻系)의 동이족으로 나뉜다. 문화계(文化系)의 동이족으로는 숙신씨(肅愼氏), 고죽국(孤竹國), 부여(夫餘), 고구려가 있다. 회남자(淮南子)에 ‘숙신씨(肅愼氏)는 존경 할 민족이요 특이한 민족’이라고 했다. 이는 문화가 고도로 발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신씨(肅愼氏) 4000여 년 전에 문화국을 건설했다. 수서(隨書, 卷六十七,列傳第三十二 表矩)에는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고죽국(孤竹國)은 문화가 고도로 발전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와 같은 군자(君子)가 출생했다. 고죽국(孤竹國) 3000여 년 전에 문화국을 건설했는데,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다.

 

또 삼국지 동이전에 부여는 조두(俎豆)를 사용하고 배작(拜爵), 세작(洗爵), 읍양(揖讓)의 예의가 있다고 했다. 이는 부여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같이 부여(夫餘) 2000여 년 전에 문화국을 건설했다. 부여는 고죽국의 문화를 계승하고 고죽국(孤竹國)이 숙신씨(肅愼氏)의 문화를 계승 한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가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라 함은 고구려가 결국 숙신씨(肅愼氏)의 문화를 계승했다고 하겠다. 숙신(肅愼)은 우마(牛馬)를 사랑했는데, 고구려 역시 우마를 사랑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우마(牛馬)를 죽이지 않았다. 이는 고구려가 숙신(肅愼)의 문화를 계승한 것을 말한다. 또한 수경주석(水經注釋(卷十四濡水)에는 ‘진시왕(秦始王) 22년 연()을 분할하여 요서군(遼西郡)을 설치하니 영지(令支)가 예속됐다. 영지(令支)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라 했다. 요사(遼史)에 평주(平州)는 은()나라시대에 고죽국(孤竹國),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산융국(山戎國)이라 칭했다. ()나라시대에 요서(遼西), 우북평이군(右北平二郡)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백제가 고죽국(孤竹國)을 직접 계승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고찰하면 우리 한민족은 문화계로서 숙신씨(肅愼氏)의 전통을 계승 한 것을 알 수 있다.

 

야만계(野蠻系)로 분류되는 동이족으로는 읍루(?婁)를 비롯한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 등이 있다. 읍루(?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등은 배를 타고 타민족을 침략하고 추월(秋月)에 독약, 전시(傳矢)를 만들어 짐승을 학살하는 것을 생업으로 했다. 아울러 오줌으로 얼굴을 씻는 추악한 생활을 했다(東夷考略(第一卷 一面 參照)고 전해진다. 요컨대 동이족 중 문화계(文化系)와 야만계(野蠻系)를 구별하면 우리 한민족이 숙신씨(肅愼氏)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 자명해진다. 반대로 읍루(?婁)를 비롯한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 등은 숙신씨(肅愼氏)의 전통을 계승치 못한 것이 또한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단군신화는 숙신씨(肅愼氏)의 역사를 묘사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신화는 실생활을 근거로 나온 것인데, 단군신화가 숙신씨(肅愼氏)의 실생활과 완전히 부합된다. 단군(檀君)이라는 명칭은 단궁(檀弓)을 잘 쓰는 무사라는 뜻인데, 전기 진서(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단궁(檀弓)을 사용했다고 했다. 또 단군신화(檀君神話)에 한민족이 태백산(太白山=백두산)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그런데 산해경 별문(山海經 別文)에 숙신씨(肅愼氏)가 백두산에 살았다고 하고, 또 진서각주(晉書?)에도 숙신씨(肅愼氏)가 백두산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단군신화(檀君神話) 4300년 전에 개국했다는 기록도 있다. 죽서기년(竹書紀年(卷上)에는 숙신씨(肅愼氏)가 순()25(4300년 전)에 만 여리에 동떨어진 중국에 궁시(弓矢)를 수출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는 숙신국(肅愼國)이 대국(大國)임을 가리킨 것이며 단군신화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군조선 건국신화와 숙신씨(肅愼氏)의 역사 묘사가 같다

 

진서각주(晉書?) 4300년 전 대국을 건설했다 함은 숙신씨(肅愼氏) 43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한 것이 단군이 4300년 전에 대국을 건설했다는 신화로 표현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단군이 산신(山神)이 됐다 함은 산악(山岳)을 존중하는 사상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전기진서(前記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동북산에서 석족(石鏃)을 채취할 때에 반드시 먼저 신에게 기도한다고 했다. 산에서 생산되는 석족(石鏃)을 위해 기도하는 신()은 수신(水神), 화신(火神), 일신(()), 천신(天神)이 아니고 산신(山神)이다. 또 단군신화에 범과 곰이 한 굴에 살았다고 하는 것은 짐승도 평화를 사랑해 싸우지 아니하고 한 굴에 사는 도덕이 있다는 뜻이다. 짐승을 존중한 것이다. 실제로 전기진서(前記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말()이 있으나 타지 않고 우마(牛馬) 3년 동안 서남을 향해 졸고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단군신화에 형()을 주()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기진서(前記晉書)에 숙신씨(肅愼氏)가 도둑을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동사강목(東史綱目, 第一, )에 단군시대에 편발(編髮)을 했다고 했다. 여기서 단군신화와 숙신씨(肅愼氏) 신화에 일대 특징이 있다. 이는 홍익인간의 이념인 평화의 세계다. 인류사상 상고부족시대는 평화가 없는 불() 평화시대다. 그것은 많은 부족이 사방에 분립하고 불합리한 감정으로 상대하며 부족투쟁이 격렬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대는 맹수와 독사를 방위할 의학이나 무기기술이 발달되지 못해 맹수·독사의 화()가 참혹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상고시대는 기후가 안정되지 못함으로 장마가 장기간 계속돼 대홍수가 산야를 휩쓸었다. 당시는 홍수를 방위할 기술이 발달되지 못해 홍수의 해()가 심했다. 때문에 타민족의 신화는 부족투쟁, 맹수, 독사의 화()가 해()로 장식한 불평화의 시대다. 그런데 단군과 숙신씨(肅愼氏)의 신화에는 불 평화세계에 관한 문구가 전혀 없고 도리어 신이 인간되기를 원해 신인(神人)이 화합하고 곰과 범이 싸우지 않으며 한 굴에 동거해 짐승끼리도 화합해 살았다고 전해진다. 곰이 사람 되기를 원하여 곰과 사람이 화합했다는 전설도 그 하나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한민족이 세력을 이루는 우리 조상들이 곰 토템족속과 결혼해 출생한 지도자가 나타난 4300여 년 전인 환국과 신시시대에 이어 여러 종족을 통일하고 아사달에 나라를 열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도자가 단군임금이고, 그가 세운 나라가 후일 한자화(漢字化) 해 조선(朝鮮)이라 한 것이다. 이 단군조선을 고조선(옛조선)이라고 한 명칭은 신라(新羅) 이후에 쓰여지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에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개창(開創)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기다”고 했다.

 

단군임금은 ‘홍익인간’을 제창해 인간을 사랑하고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주장하며 세계를 침략하지 않고 교화한다고 했다. 이는 인류역사상 독특한 신화다. 고조선의 개국 시기는 ‘삼국유사’나 제왕운기(帝王韻紀) 등에 고대 중국 요임금과 동시라고 기록돼 있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때 사관인 벡문보(白文寶)가 “우리 동방이 단군으로부터 3600년이 지났다”고 처음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썼다. 서력기원보다 2333년 앞선 단군기원은 요()임금의 즉위년인무진년(戊辰年)을 단군건국연도로 했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당시의 법령으로 공포됐다. 이처럼 역사적 신화는 실생활을 배경으로 나온 것인데, 동이족 중 평화적 실생활을 가진 자는 오직 숙신씨(肅愼氏)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선행문화(先行文化)로 요동에도 선주(先住)한 한민족

 

중국인들은 우리 조상들을 인방(人方), 동인(東人), 혹은 동이에 속하는 종족이라고 하고 숙신국(肅愼國) 혹은 예맥 족(濊貊 族)이라고 일컬었다. 그들이 활을 다루는데 능했음은 맥궁(貊弓), 단궁(檀弓)이라는 기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큰 활을 사용하는 글자 이()로 보아도 알 수 있다. 활은 오fot 동안 우리 조선족의 무기여서 중국은 당대의 당태종도 신라의 활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한 사례가 있다. 어떤 종족이 언제 어디로부터 왔는지 현재 학설은 여러가지로 나누어지고 있어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 조상족인 한민족이 치수 법(治水 法)과 무기개발을 먼저 하고 선행문화(先行文化)를 지니고 중국 한족(漢族)에 앞서 중국대륙과 요동에 선주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우리 나라와 한민족(韓民族) 역사를 지금도 동북공정을 통해 자기들의 역사로 변조하며 우리 한민족을 자기들의 범주 속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한족과는 그 어계(語系)부터 다룰 뿐 아니라 다른 문화전통을 가진 종족이다.

 

우리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문화 시작이 중국의 황하유역보다 수백 년 앞선다는 점과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2000년 이상 앞선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황하문명도 우리 한민족이 일으킨 문명인 것은 이미 전술한 바 있다. 미국의 동양 미술학자 존 코벨(Jon Carter Covell(1910~1996)은 ‘조선 한족(韓族)이 동아시아에 정착한 연대는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중국에 정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문화가 일찍부터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보고 단군의 존재를 인정 했다. “한민족(韓民族) 그 문화가 중국 것이 아니고 독특하다. 단군은 단군이다”고 한 코벨의 지적은 옳다. 환국과 배달국에 이어 단군조선이 제일먼저 개척한 곳은 지금의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연안, 요동평야다. 이들 지역을 고조선 건국 중심지로 보고 있다. 송화(松花)는 고대에는 소밀, 속말, 소머리 등 우수(牛首), 우두(牛頭)라고 했다. 흰 소(白牛)를 잡아 제천(祭天)하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소머리라는 지명은 후일 민족이동과 함께 강원도 춘천, 경주 그리고 일본 각처로 전래된다. 우리 한민족은 환국시대, 신시 배달국시대를 지나는 동안 여러 종족들 간에 곰 상징의 종족과는 융화해 통혼하고, 범을 상징으로 하는 종족 등은 정벌했다. 곰 족과 태양조상을 받드는 환웅종족이 우세해 다른 종족들을 물리치고 무력통일을 이룬 것이다. 환국-신시시대는 여러 부족이 한민족(韓民族)으로 통일되기까지 서로 싸운 기간이 천 수백 년간 계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 배달국의 제14대 자오지 천황이라는 치우천황(蚩尤天黃)은 헌원과 73회나 싸운 전승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우리 한민족은 고대에 강력한 제국을 이룬 민족이다. 한민족은 실로 타민족을 경탄케 할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다. 최초에 문화민족으로 발전하고 최초에 강대 족으로 등장한 한민족은 인류를 지도하려는 대() 이념을 제창했다. 이는 바로 ‘홍익인간’인데, 박애주의로서 인류평화를 실현하려는 이념이다. 지금도 이 이념은 변치 않고 있다. 우리 민족의 대사상인 천민사상, 인간사상, 중물사상의 중핵(中核)은 ‘홍익인간’이다. 이 이념은 숙신국(肅愼國) 시대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고유한 문화사상을 회복하는 중흥운동의 현실과업 또한 민족갱생이면서 동시에 인류평화다.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인간을 부르짖고 그 정신문화의 샘터로 동방을 주목하고 있다. 동방은 바로 우리나라 그리고 한민족이다. 오늘의 인류사상 최초로 인간을 발견한 우리 한국과 한민족에게서 ‘홍익인간’의 대 이념을 실현하는 중흥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우리가 그 중흥운동의 중심에 서 있기에 당연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인간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존 카터 코벨 지음·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하’,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우창수 ‘아사달 상·하’, 김부식 ‘삼국사기’, 임승국 번역·주해 ‘환단고기’. 한창건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南帝 ‘命理속의 哲學’, 김진경 ‘만천년 역사의 비밀’ ‘태백과 압록’, 咸秉春 ‘韓國의 文化傳統과 法-葛藤과 調和-,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金正柱 ‘畿內の緣故遺蹟’,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津田秀夫 ‘日本史’, 三省堂 編修所編· 永原慶二 監修 ‘中學社會歷史’, せいいくど ‘新. 漢民族から大和民族へ’, 坂本泰良 ‘明治維新から現代へ’, 山茂樹山 ‘明治維新と現代’ 외 다수서책을 참조·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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