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단기 4348)년 9월8일 개최된 [제146회 국민강좌] 에서
진나리(전 북한 교원대학교 교수) "사진으로 보는 북한(다름과 같음의 이해)" 주제로 발표한 자료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북한
- ‘다름’과 ‘같음’의 이해 -
진나리
‘목함지뢰’사건 발생으로 남북한에 조성된 긴장은 극적인 타결을 이루었다. 다시금 우리는 휴전국가이며 북한의 이중적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여전히 북한은 통일의 대상이자, 언제든 도발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북한은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보임으로써 체제의 불안함을 여지없이 들어냈다. 지난 사건은 우리들로 하여금 늘 북한을 인식하고, 고민하고, 알아가야 하는 대상임을 새삼 알게 했다. 이로부터 오늘의 주제는 ‘다름’과 ‘같음’으로 정하였다.
유일지배체제인 북한에서는 후계자에 따라 하부 구성 요소들에 굴곡이 생겨난다. 2012년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이행은 수십 년 동안 관습적으로 묵인되고 있던 북한의 교육방법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 교원의 자질과 과거 교육방법에 대한 파격적인 비판은 역설적이게도 김정일 시대를 극복하려는 여러 시도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과거 김정일은 김일성과의 공동의 통치기간이 길고 김일성의 사상이론을 심화 발전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김정은은 오히려 김정일을 극복하고 젊은 지도자로서의 행보를 통해 안정적인 체제유지를 지향하고 있다. 북한은 20년 전의 고난의 행군기와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앞으로 그 변화는 김정은의 행보와 더불어 다양해 질 것이다.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고, 이해하고, 체제가 갖는 태생적 한계를 통해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으로 28년, ‘대한민국’국민으로 10째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28년은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에서 보낸 유년기와 ‘11년제 의무교육’, 이후 7년간의 교육자로서 생활이 전부이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나의 회고에서 북한의 교육은 큰 몫을 차지한다. 북한에서의 나의 성장과 사회활동은 북한의 교육을 포함하는 문화적 흐름과 뗄 수 없이 연결 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북한은 1972년부터 40년간 유지하여 오던 ‘11년제 의무교육’을 2013년부터 ‘12년제’로 부분 적용하고 있다.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북한의 교육에서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의 교육은 김정일 집권 시 2002년 인민학교를 소학교로, 고등중학교를 중학교로 명칭 변경을 하였다. 김정은 집권에 들어서면서 현재는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으로 변경하였다. 여기에 유치원 높은 반부터 의무교육에 포함시켜 ‘12년제’가 된 것이다. 현재 교육에서도 실리를 중시하고 교육방법에서의 자율화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바이다.
1990년대 북한 사회를 휩쓴 경제난은 교육 부문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자연재해와 수년에 걸쳐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의 영향으로 학교교육의 물리적 구성요소인 교육시설과 기자재가 파괴되었고, 인적 구성요소인 교사와 학생 중의 상당수가 장기간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교육의 질 저하와 교권하락 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새천년 북한 교육의 과제는 십년 가까이 진행된 교육의 답보와 후퇴의 상황을 되돌리고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경제난 극복과 국가발전의 발판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었다.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2000년대 북한 교육에는 ‘교육에서의 실리주의’라는 구호로 집약되는 정책기조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경제난 심화와 시장의 확대에 따른 경제적 계층분화라는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이전 시기에 없었던 특정한 교육 양상을 출현시켰다.
2000년대 이후 이전 시기와는 다른 방향성을 띤 교육정책이 전개되면서 북한 교육의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교육비 부담과 교육에 관한 의식 측면에서 사적인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 중의 하나는 사부담공교육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경제난 시기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급격하게 감소되었고, 고난의 행군기를 경유한 후에 공교육의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이것이 곧바로 모든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국가의 교육적 지원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교과서, 교복, 학용품 등 공부를 하기 위해 학생 개인이 소모하는 비용으로부터 학교의 책걸상과 시설의 개보수, 교육기자재 확보 등과 같이 시설의 유지와 관리에 드는 비용에 이르기까지, 경제난 이전 시기에는 국가에서 제공하였던 공교육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금은 학부모가 떠안게 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사부담 공교육비가 증가한 것과 더불어 최근 들어서는 사교육의 등장이라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개인지도’ 형태의 사교육은 90년대 이전에도 예체능 분야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경제난 이후 더욱 확산되고 다양한 부문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전 시기와 구분되는 뚜렷한 양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교육이 눈에 띄게 증가한 데에는 수요와 공급 측면의 요인이 모두 작용하였다. 수요 측면의요인은 제1중학교의 확대이다. 1995년부터 영재교육기관인 제1중학교가 대거 증설되었는데, 특히 1999년에는 전국 시군구역마다 제1중학교를 1개교씩 추가 신설하는 조치에 따라 제1중학교가 200여개로 늘어났다. 이는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효율적으로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등교육체계 전반을 서열화 된 체계로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일반중학교와 제1중학교 간에 국가적 지원과 학생들의 학력, 대학 진학 가능성에 큰 편차가 발생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제1중학교에 입학하지 않고서 실력을 통해 대학에 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는 당 간부가 되려면 당원, 군경력 뿐만 아니라 대학졸업장이 필수적인 항목이 되었다. 한때 대학입학생 중 직통생의 비중이 10%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이 안에 들기 위해서 제1중학교 입학시험, 대학 입학시험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학부모들이 개인교사를 구해 입시준비를 하는 행위가 확산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새 세기를 ‘정보산업시대’, 이후 2010년부터는 ‘지식경제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오늘의 지식경제시대에는 첨단기술의 개척자가 미래의 정복자”라는 강조를 통해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인 인재’를 양성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정은시대의 교육의 변화는 주목해 볼 만 하다. 김정은 등장과 함께 새로운 변화가 교육의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이는 김정일시대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지난 시기의 결함과 한계를 밖으로 드러내고, 세계의 선진 교육 사상과 방법을 용의주도하게 전달하고, 유럽의 교육체계를 받아들이는 등의 파격을 선보이고 있다. 중요하게는 지난 시기의 ‘창조적 인간’에 대한 개념체계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흥미진진한 변화를 주목하게 한다. 그럼에도 창의적 인간 양성의 한계라 할 수 있는 체제적,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연 얼마의 진보가 있을 것인가의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교육현장이 점차 국제적인 기준과 틀에서 점점 가까워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남북의 통일은 기피한다고 해서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과 북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은 관계로 본의 아니게 ‘다름’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름’이 아무리 크다 해도 ‘동질성’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름’이 존재하는 이유는 행동을 일으키는 자극이 사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 방식일 뿐 남과 북 ‘우리들’이 사는 모습은 결코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눈에 멀게만 비쳐지던 북한이 아닌 현실적인 감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간, 공감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통일을 이루어 내고, 이후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 북한 주민에 대한 이해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