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은 과연 어떤 사람을 일컫는 것이며 이화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이 자리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개괄적인 흐름을 한민족 즉 천손민족의 성전(聖典)인 천부경(삼일신고, 참전계경 포함), 그리고 불교의 최고 원리 경전인 실상묘법연화경(약칭 법화경), 그리고 말씀의 종교인 기독교의 바이블, 즉 성경(구약, 신약 포함)을 비교하여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근본 개념의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세 경전 자체가 과거 및 현 세계의 정신문명에 결정적이고 지배적인 영향을 끼쳐왔고, 그러한 정신의 영향 아래에서 현시대의 문명과 문화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원리적이고 근본적이면서도 방대한 내용을 잔학비재한 필자가 적은 지면의 글과 짧은 시간에 다 피력할 수는 없다. 다만, 근본적인 한두 가지 개념에서의 세 경전의 유사점과 차이점 그리고 회통(會通)할 수 있는 본래 뜻을, 본인의 소싯적부터 경험한 영성 수련에 비추어 피력해 보고자 한다.
어릴 적에는 천주교 집안에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대학에서는 부전공으로 신학을 공부했고, 30살에 불교를 만나 결과적으로 스님이 되었다. 숭례문에서 제목으로만 듣던 천부경의 존재를 알고 나서 일생 생각해 왔던 의문의 답이 홍익인간 이화세계 여덟 자에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덟 글자 단어 속에 미래 문명세계의 희망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이 여덟 글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던 중 이러한 자리와 기회가 주어짐을 먼저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고교 시절부터 ‘종교 일체화 운동(conglomerate)’에 한마음을 내고 대학에서 우연히 유불선 삼처회통(三處會通)이란 말을 접하게 되어 이러한 의식에서 체험적인 노력을 해 왔다. 다만, 필자로서는 이 자리에서 감히 여러 선생님과 제현들의 학문적인 논리를 다 감당하지 못하는 점을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라면서, “홍익인간 이화세계”에서 유불선 삼처회통과 정신문명이 정도(正道)로 거듭남의 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본 논의는 방대한 세 경전을 비교하고 일치점을 찾는 논의의 초점을 수리개념 및 수리철학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1수리에서 12수리까지 한 단계 더 나아가 13수리까지 개념 정립을 하고 동서양의 종교와 정신, 문화, 철학의 기준점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신인합일, 영육합일 되는 영성경지를 어떻게 체득하며, 앞으로 이루어질 태양정도문명시대(太陽正道文明時代)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하는 인류 문명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세계정신문화대헌장의 영성에너지 기운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하나 된 마음과 영성으로 정도문명, 이화세계에서 홍익인간이 다 같이 되어 현재의 혼탁한 세상을 영성복본(靈性復本), 즉 근본을 회복하고 깨어난 영성으로 보살피고자 하는 논의를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천부경의 일(一), 하나
천부경(하늘에서 내리고 부축하신 진리의 말씀)은 우리 천손민족의 근본 경전으로 아직은 그 연원을 확실히 정할 수 없는 일만 년 이상 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에서 一(하나)은 하나님, 한부처님, 한울님으로 ?님(본 논의에서는 하느님, 아울러 통칭하는 용어로 쓰고자 함)이 이 세상에 완성되어 나타남이란 의미가 있다 하겠으며, 천부경의 시작 부분 다섯 자 즉 일시무일시(一始無始一 : 근본 하나는 시작도 없이 시작된 하나이니라)와 끝 부분 다섯 자인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 그 하나는 마칠 것도 없이 마치는 하나이니라) 10자에 근본 ‘일(一), 하나’의 개념을 확실히 언어적으로 맺음하고 있다. 곧 ‘하나’는 ‘하나’라 할 것도 없는 ‘하나’로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이 ‘하나’는 우리가 생각의 개념으로는 감히 규정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겠다.
‘일(一), 하나’ 수리는 태극(太極)의 근본을 나타내고 태극이전에 무극(無極 : 끝없음이 없다), 태허(太虛 : 근본이 비었다), 나아가서는 무허(無虛 : 비었다는 것도 없는 빔) 개념까지 통괄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특히 첫 글자, ‘일(一), 하나’와 마지막 글자 ‘일(一), 하나’는 태허(太虛)와 무허(無虛)의 개념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3. 법화경의 일불승(一佛乘)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은 말 그대로 진리의 실상을 밝힌 불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내용 자체가 하나의 파노라마이며 범어의 뜻 그대로 백련꽃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엮어 놓은 것이다. 내용 자체도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총 7권 28품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법화경 진리의 요체만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법화경에서도 제1장 서품(序品)에서 제28장 보현보살권발품까지 전체적으로 흐르는 중심적인 개념도 일불승(一佛乘 : 하나의 부처로 나아간다. 근본이 하나의 부처의 상태이다.)으로 영원불멸(永遠不滅)하고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의미하고 있다.
불교의 모든 경전이 수리 속에 많은 이치를 숨겨놓고 있으며 예시적인 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주시해 볼 점은 일불승을 법문한 법화경 제1장 서품의 첫 부분에 “큰 비구 1만 2천 대중과 함께 계셨다.”라고 하셨는데 1만 2천 도통군자(道通君子)의 예시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서품에서 제자들뿐 아니라 하늘과 바다 등의 모든 신장, 신명이 모두 모이고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 내면서 ‘일불승(一佛乘)’을 법문한 법화경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밝히고 있다.
법화경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영원한 부처, 정각(正覺)의 상태로 “일불승”이란 명칭만 나타내고 그 정의는 언급하지 않는 점이다. 필자가 관찰하건대 우리의 의식세계로 개념화될 수 없는 무상무념(無相無念)의 경지를 실상(實相)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실상은 ‘하나’랄 것도 없는 ‘하나’이며, 일체 우주 및 세계가 모두 불성본체(佛性本體)로 ‘하나’이며, 그 ‘하나’는 크고 일컬을 수 없는 ‘큰 하나’로서 모든 개체에 그 성품의 근본이 모두 깃들어 있다. 이를 표현한 말이 범어로서 ‘마하(摩言可)’다. 마하는 보통 대(大 : 크다)라고 번역하는데 이 속에는 ‘큰 하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이 ‘큰 하나’의 존재를 ‘공(空)’이라 표현하고 허공에 비유하였다. 허공은 ‘하나’라 할 것도 없이 ‘하나’이며, 무한대이다. 허공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存在)하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자기를 내세움이 없다. 그리고 모든 물질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存在)’이며,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존재(存在)’이다. 허공이 있어야 모든 존재가 존재할 수 있듯이 존재하려면 무존재성(無存在性)이 있어야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무존재(無存在)한 존재’가 바로 ‘실상(實相)’인 것이다.
4. 성경에서의 ‘하나님’
‘하나님’의 개념은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으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하나’란 개념을 상정해 버리면, 전체적으로 ‘하나’란 하나랄 것도 없는 ‘하나’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 곧 ‘하나님’이란 존재를 의식으로 개념화시켜버리면, 하나님이란 실상(實相)적인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이란 존재를 존재하게끔 하는 존재, 하나이면서 전체요, 전체이면서 하나인 있는 그대로의 존재. 우리 생각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무존재성(無存在性)으로 실상(實相)의 본체(本體)이면서 근본(根本) 존재(存在)이다. 그러하므로 모든 만물(인간 포함)에 근본영성(根本靈性)을 이치(理致) 따라 영원불멸 끝없이 분화(分化)시킬 수 있으며 그 이치(理致 : 불교에서는 ‘다르마’)에 의해 세계가 결정되어 있으므로 이를 ‘이화세계(理化世界)’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이치에 따른 분화이므로 분신(分身)이며 이를 다른 표현으로 ‘창조됨’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라 하는 것이다.
‘하나’란 존재개념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으로는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면서 시나이 산에 올라갔을 때 나무 사이 빛나는 광채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계셨으니, “나는 있는 자, 바로 ‘그’로다. 영문 I am who I am. 곧, ‘있는 그대로의 나’이니라” 하셨다.
불교에서도 이와 똑같은 의미의 용어가 있으니 바로 여래십호(如來十號 : 부처님을 표현한 명칭이며,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열 가지 칭호. 곧,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 중 가장 먼저인 ‘여래(如來)’가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의미이며, ‘그대로 오고 감,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 그대로의 존재’이다.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과 불교의 10가지 계율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불교와 기독교는 영성(靈性)의 근본 뜻으로 보면 뿌리가 같은 종교인 것이다. 또한, ‘하나’란 존재 의미를 살펴볼 때 그 뿌리는 천부경의 ‘일(一), 하나’에 소급된다고 보는 것이다. 참고로 불교를 접할 수 없는 유럽의 초기 중세 시대에 마이스터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 : 1260-1328)라는 독일계 신부이자 신학자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그 핵심은
첫째, ‘하나님’은 존재이며 비존재이시다.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다.
..........세계는 ‘비존재’이며 전체(全體)이다.
..........세계는 ‘하나’이며 많음이요, 영원(永遠)하며 시간적(時間的)이다.
둘째, ‘하나님’은 세계(世界)에 대해 내재적(內在的)이며 초월적(超越的)이시다.
..........세계는 ‘하나님’께로 내재적이며 동시에 초월적이다.
셋째, ‘하나님’과 ‘세계’는 완전히 동일(完全同一)하다.
이 파격적인 당돌한 신학자 엑크하르트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정의(定意)는 실제로 불교의 공관(空觀)이나 일불승(一佛乘)인 법신불(法身佛)의 개념과 다를 바가 없다. 엑크하르트는 이단적 가르침을 퍼뜨린다는 혐의로 퀼른 종교재판에 회부 되었다. 엑크하르트가 이에 불복하여 교황 요한 22세에게 직소했고, 결국 그는 판결을 기다리다가 죽었다. 1년 후 그는 이단(異端)으로 단죄된다. 영원성과 동시성(同時性), 연속성(連續性), 독자성(獨自性)은 천부경의 첫 ‘일(一), 하나’와 끝 ‘일(一), 하나’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5. 천부경, 삼일신고와 성경에서의 영성본체
‘하나’의 영성본체(靈性本體)는 근본이면서 밝고 맑아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마음속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를 천부경에서는 본심본태양 앙명인중천지일(本心本太陽 昻明人中天地一 : 본래 마음은 근본이 태양과 같아서 우러러 밝으니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함께 있도다.)이라고 쓰여있다.
삼일신고를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천훈(天訓 : 하늘에 대한 말씀)
제왈(帝曰 : 한배검께서 이르시기를) 원보팽우(元輔彭虞)야
창창비천(蒼蒼非天 :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현현비전(玄玄非天 : 아득하고 아득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천(天 : 하늘)은 무형질(無形質 : 형태와 바탕됨이 없고)
무단예(無端倪 : 시작과 끝도 없으며)
무상하사방(無上下四方 : 위와 아래, 동서남북의 사방도 없으며)
허허공공(虛虛空空 : 허허하고 비고 또 텅 비어서)
무부재(無不在 : 어디에나 있지 않은 곳이 없고)
무불용(無不容 : 포용하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신훈(訓 : 하느님에 대한 말씀)
신재무상일위(在無上一位 : 하느님은 위 없는 으뜸 자리에 계시사)
유대덕대혜대력(有大德大慧大力 :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을 가지시어)
생천(生天 : 하늘을 내시고)
주무수세계(主無數世界 : 무수한 세계를 주재하시며)
조신신물(造??物 : 만물을 창조하시되)
섬진무루(纖塵無漏 :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시며)
소소영영(昭昭靈靈 : 밝고도 밝아 신령하시어)
불감명량(不敢名量 :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성기원도(聲氣願禱 : 소리와 기운으로 원하고 빌어서)
절친견(絶親見 : 절실히 다하면 친견할 것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 : 저마다의 본성에서 하느님의 씨알임을 구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 : 강림하여 너희 머릿골 속에 이미 내려와 있느니라)
존재함이 없이 존재하는 이 ‘하나’의 존재를 우리는 예부터 ?얼님이라 예경(禮敬)하였으니, ‘일(一), 하나의 근본영성(根本靈性)’이란 뜻이다. 하늘님, 하느님 음운으로 변화하면서 불러 모셔 왔다. 그러다가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rant : 1859-1916)에 의해 성서의 ‘God’의 해석을 놓고 고민하다 우리 민족이 ?얼님을 모시고 있는 데에서 착안하여 ‘하느님’으로 번역해 놓고 그 기쁨을 일기장에 썼다고 한다. ‘God’을 ‘하느님’ 또는 ‘하나님’으로 사용했으니,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전파되고 융성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다른 견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더우드의 번역은 근본 이치적으로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4대 복음서 및 인정된 성경(구약, 신약 성서) 이외의 외경과 1940년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성서들에 의하면, 현재 구약 신약과는 조금 다른 면들이 있다. 많은 저명한 신학자가 연구한 바로는 영지주의(靈知主義), 즉 ‘하나’의 근본영성(根本靈性)을 향하여 기도하는 집단으로 영지파(靈知派)라 불리고 있다. 영지파의 시작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연유되었는데 그 수행 경험 지침에 의하면 ‘하나의 근본영성’, 즉 하느님의 영성과 수행자 자신의 영성과 일치시키고 합일시키는 수행법으로 불교 수행과 거의 유사하다.
6. 수리에 의한 영성본체
하나(無存在))가 아닌 ‘하나(存在))’에서 나와서 ‘둘’이 되면서 근본영성(根本靈性)의 분화(分化)가 시작된다. 인간이 탄생할 때, 수정란이 세포 분열하는 과정과 똑같이 진행된다. 우주 암흑에너지(무존재)에서 태양이 핵융합에너지(존재)를 만들 때도 그와 같다. 인간 탄생이 우주의 생성과정의 복사판이다.
우리의 영성도 분화하면서 차별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으니 분별하는 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객관성과 주관성, 절대성과 상대성, 영성과 현상성, 존재성과 무존재성, 물질성과 허공성(물질이 존재하게 하는 성질), 밝고 어두움(明暗) 등 여러 가지 대칭성이 근본의 성품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모두 ‘하나’에서 나와서 분화되면서 ‘하나’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차별적이고 대칭적인 ‘둘’의 성품이 완전한 존재의 성품으로 나타나는 데는 다시 ‘하나’의 전체를 아우른 근본영성존재(根本靈性存在)가 개입한다. ‘나’, ‘너’ 그리고 ‘나’와 ‘너’를 포함한 세상, 즉 ‘우리’가 또 ‘하나’로 있어야 한다. ‘나’, ‘너’의 상대성이 존재하려면 먼저 전체성이 존재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본영성존재(根本靈性存在) 즉 ‘하나(一)’인 ‘하늘=신명세계=영성에너지’와 ‘둘(二)’인 ‘땅=물질세계=현상계’, 그리고 ‘삼(三)’ 즉 영성에너지와 현상계 물질이 어우러져 상호 작용을 완성한 인간, 곧 하늘과 땅, 사람의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가 정립되는 것이다.
또한, 3(三) 수리(數理)는 근본적으로 시간의 원리이기도 하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차별적 시간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공간적으로 동서남북의 사상(四相)의 모양으로 배치되니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형상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근본 4대 물질구성 근본요소가 일어나 5(五) 수리 오행(五行) 요소의 흐름으로 돌아가니 이것이 바로 수목화토금(水木火土金)의 오행(五行)이다. 이 오행이 하나의 흐름이 되려면 다시 전체적인 근본영성존재(根本靈性存在) 즉 ‘하나(一)’가 개입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육(六) 수리, 생명수(生命水)의 흐름으로 물질이 영성으로 포함하여 변화하는 ‘움직일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천부경 81자의 중심(中心)에 육(六) 수리가 배치된 이유이며 이 육(六) 수리(數理)를 중심으로 영성형태가 잡혀가니 안이비설신의(眼耳卑舌身意) 6근(根)이 6경계(境界)를 만나 6식(識)의 영성작용(靈性作用)이 만 가지로 벌어지니 3x6의 18 경계의 시공(時空)에서 ‘하나’의 근본영성이 활동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삼일신고에서는 삼진(三眞) 성명정(性命精)이 삼망(三妄) 심기신(心氣身)에 착근(着根)하여 선악(善惡) 청탁(淸濁) 후박(厚薄)으로 감식촉(感息觸)에 의한 18경계(희구애노탐염, 분란한열진습, 성색취미음저)에 들어감을 확실히 설파한 것이다.
칠(七), 곧 칠성(七星), 칠성(七性)의 수리는 물리학자 호킹 박사가 얘기하였듯이 인간은 일곱 별(성질, 성품)의 흐름으로 해와 달, 곧 음양 대칭이며 빛의 어둠의 원소로 나타난다. 이는 인간의 형상적으로 코의 구멍이 둘이요, 귀의 구멍이 둘이요, 눈의 구멍이 둘이요, 입 구멍이 하나 즉 일곱 구멍으로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영적으로도 일곱 가지 성품이 정립되는 데 이 칠성(七性)은 배성(排性: 밀어내는 성품), 주성(走性: 달려나가는 성품), 남성(男性: 드러내려는 성품), 여성(女性: 감추고 베풀고 나눠주는 성품), 영성(靈性: 영적인 성품), 누성(累性: 깊이 내재된 양심), 소성(素性: 타고난 소박성으로 신을 찾는 성품)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칠성은 생존을 위한 정립을 하게 되는데 여덟 가지 방향, 여덟 가지 움직임의 근원, 즉 팔방팔쾌(八方八卦)의 법칙으로 배치되며, 아홉의 구천(九天) 수리로서 ‘하나의 전체 영성’과 교류하면서 하늘의 이치대로 존재하게 되는데, 인간의 생체 구조로는 항문(배설기능)과 생식구(자손생식기능)로 나타나게 되어 ?님의 창조는 일단은 완성되었다.
그 외의 만물은 이 아홉 이치의 흐름이 관계되는 상대적인 흐름에 따라서 만 가지로 오고 가는 것이며 퍼져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천부경에서는 대삼합육생칠팔구운( 大三合六生七八九運: 큰 셋이 합하여 여섯 되고 일곱 여덟 아홉으로 생겨나 움직이도다.) 삼사성환오칠일묘연(三四成環五七一妙衍 : 셋 넷이 이루어 돌아가니 다섯 일곱이 하나 되어 묘하게 퍼져 간다. 만왕만래용변부동본(萬往萬來 用變不動本 : 만 가지로 오고 가고 쓰임새가 변하나, 그 근본은 움직임이 없도다)으로 변화의 흐름도 끝내는 움직임이 없는 데서 움직인다는 말씀으로 존재의 고요함(불교에서는 적멸경지, 삼일신고의 소소영영한 경계)과 움직이지 않은 영원불멸한 무존재성에서 비롯되어 끝없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완성된 아홉, 즉 구(九)를 포함하는 ‘또 다른 큰 하나(一)’의 변화 즉 십(十), 10)이 된다. 이 십은 곧 영(0)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一), 하나’이다.
‘하나의 영성’은 곧 하나의 이치로 묘하게 퍼져가면서 회귀할 수 있는 열(十, 10) 수리로 진행하면서 처음 ‘하나’에서 다시 끝의 ‘하나’로 나아가게 되는데, 영(0)의 개념 즉 공(空)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열(十, 10) 수리의 이치 속에는 5+6=11과 3×4=12의 수리 이치를 포함하고 있다. 11 수리는 현재 물질문명시대의 상대적인 영성 이치가 완성으로 가는 도중 5가지 요소(五行))과 6 생명수(生命水)의 부딪침이 있는데 이 부딪침이 극단적인 대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이 수리의 이치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11면 관세음보살상인데 자비의 화신인 관음상에 악마의 상이 표현되어 있음을 보면 ‘하나’의 근본영성 속에 있는 선악(善惡)의 카르마(산스크리트어 karma: 영성의 암흑에너지), 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영성 대치를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상대적인 영성에서 절대적인 영성의 근본 빛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3 수리의 시간성과 4 수리의 공간성이 합해지는 새로운 완성수리 12 수리의 정립으로 들어가야만 영성이 근본으로 회귀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수학자가 아니고 과학자가 아니지만 11 수리는 상대성의 정립으로 보아 상대성이론으로 연결되고, 12 수리는 시간과 공간의 초월적인 양자역학이론으로 발전된다.
이것은 영성의 본체에서 보면 영성의 완성이 수렴(收斂), 결실(結實)의 과정에 들어가서 신인합일(神人合一), 영육합일(靈肉合一)이 되는 그러한 문명시대의 수리 이치는 현대문명의 10진법이 아닌 새로운 영성 시대의 12진법(十二陣法)으로 구성되며 12진법의 이치에 따라 모든 생활과 제도 등이 바로 서야 비로소 영성복본(靈性復本) 하는 완성수렴시대(完成收斂(時代), 즉 신명세계와 교통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 신인합일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는 투쟁 살상이 없는 천당, 극락, 선경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때의 영성의 기준 잣대가 13 수리로 기준을 세운다 하여 십삼금척은척(十三金尺銀尺)이란 옛 문서들의 비기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법(歷法)의 시간 이치를 13개월로 배치하여(13×28 天 하늘 수리=364) 두고, 공간 이치는 삼십육정방(三十六 正方)으로 하여 모든 제도가 36도판으로 짜여짐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것이 지부경(地府經)에 십삼월국삼십육정궁(十三月國三十六正宮)의 뜻이 아닐까 한다.
7. 성경에서의 영성본체
성서의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다.”라는 말은 영성복본(靈性復本), 즉 영성이 수렴 완성됨을 의미하여 요한복음의 “나를 비롯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말씀은 ‘스스로의 나(自己 自性, 근본영성)의 영성’을 자유롭게 하고 완성하지 않고서는 하나의 근본세계에 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구약성서에서의 ‘하느님’과 신약성서에서의 ‘하나님’은 개념에서 차이가 있다. 창세기에서 7일의 의미를 두어 7 수리가 창조의 근본 수리임을 나타냈고, 일곱 하느님 중에 두 번째 하느님, 즉 율법과 규율의 하느님, 배신을 용서치 않는 하느님이 쓰여 있다. 두 번째로 표현되는 그 수리는 바로 분리, 분열과 대립의 개념으로 반드시 부딪쳐서 불이 일어나는 투쟁과 살상의 종교전쟁 씨앗이 되었다.
신약성경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실제 말 그대로 근본 ‘하나’이신 하나님으로 개념 변경을 시도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예수님이 처형을 당한다. 이와같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의 하느님, 하나님 개념이 다른데 현대 기독교 신앙 형태는 이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로써 규율적인 율법에 의한 구약성경 여호와 하느님 정신을 유대민족의 단합과 결속을 위한 독립투쟁에 이용한 것이 바로 율법학자 바오로의 의도이다. 이는 하나이신 하나님의 개념 정립을 유보하고 교회만 강조하여 단결과 결속을 유도하려고 하다 보니 교회 안과 밖,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이분법적으로 양단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 많은 종교전쟁과 마녀사냥과 같은 분열과 갈등의 투쟁 역사를 기독교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오류를 다음 시대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할 것인가? 기독교계 영성 지도자들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사도 바오로의 오류를 베드로는 예수님의 본래의 뜻(하나님과의 영성합일 되어 하나의 근본영성을 회복하는 진정한 영성부활)을 어기고 있음을 간절하면서도 맹렬히 꾸짖고 있다. 바오로에게 보낸 사도 베드로의 서신에 그 꾸짖음이 있다.
8. 삼화일원, 삼처귀일 회통의 문명세계
지금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다. 불로써 일어난 화국(火局)의 시대에서 수렴 완성의 금국(金局)의 시대로 대전환이 우주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선각자들은 예지하고 있다. 우주적 문명의 대전환 시점에 인류는 어떠한 정신문화로 대처할 것이며, 실제 벌어질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그 실천 방안은 무엇인가?
지금 여러 방면에서 뜻있고 헌신적인 정신문화계 지도자들이 세계평화를 실현 시키기 위한 정신운동을 주창하고 실천하고자 많은 분이 노력하고 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예언한 ‘동방의 등불’이 켜질 때가 된 것이다.
필자는 숭례문 화재가 세계문명대전환의 신호탄, 봉홧불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숭례문에서 그 기운을 매달 기도와 국민행사로 모으고 있다. 이에 많은 분이 동참하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각 종교가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화합해야 하는 시대다.
모든 진리가 하나로 돌아가는 것, 즉 만법귀일(萬法歸一) 되어야 그다음에 그 ‘하나’가 나아가야 할 길, 곧 새로운 정신문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일귀하처(一歸何處)요?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유불선삼처회통(儒彿仙三處會通)은 이래서 현대의 선지자들에게는 최선의 목표이자 수행과 공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종교적 특성을 각자 지닌 채, 새로운 화합을 모색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가 된다.
개별적인 가치를 가진 ‘하나인 셋’은 곧 새로운 ‘하나’가 됨으로써 셋의 가치가 함께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도리(天道)는 현재, 동학(東學) 국선(國仙)과 서학(西學) 기독(基督)으로 나누어져 있다. 동학 국선은 천부경(天符經) 및 삼일신고(三一誥), 참전계경(參佺戒經), 천부삼인(天符三印)으로 무상천(無相天)에 기준하여 ?얼사상으로 종교가 되었고 서학 기독은 구약, 신약, 외경 등으로 유상천(有相天)에 기준하여 하나님 말씀의 종교가 되었다.
천무(天巫)는 무기지(無氣地)에 근거 두고 신명(神明)의 흐름에 들어가며,
영무(靈巫)는 유기지(有氣地)에 근거하여 신령(神靈)과 화합한다.
유교(儒敎)는 유위인(有爲人)에 기준하여 사서삼경으로 유의법도(有爲法道)를 논하고
불교(佛敎)는 무위인(無爲人)을 기준하고 팔만 사천 법문으로 무위진인(無爲眞人)을 지향한다.
물론 이 분류는 각 종교 및 사상의 개괄적인 흐름을 분류한 것이며 각 종교의 진리에 깊이 들어가서 끝까지 가보면 결국 유무(有無)가 없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경계에 들어가서 진리의 일치점을 찾게 된다. 해당 종교 및 사상에 대하여 기본 상식도 없으면서 해당 경전을 읽어보지도 않고, 상대 종교 및 사상을 비방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그것 자체가 본인의 정신 신앙 공부에 큰 장애요 해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귀일(歸一)하는 진리를 감지하고 이해하고 터득했을 때, 모든 것에서 안 통(通)하는 데가 없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스스로 가고 행해야 할 바를 알게 되므로 어느 곳에서 나서 어디로 가며, 또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기 일과 세상 일을 모두 알게 된다. 만사지(萬事知)요, 지화자(知化子)이며 도통(道通)이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으로 화(化)하여 전환(轉換)된 것이다. 홍익인간만이 이치에 맞는 세계, 이치에 맞게 변화하는 정도의 세계 이화세계에서 살게 되어 있다. 홍익인간은 삼처회통(三處會通) 하여 귀일(歸一)하는 진리를 구현하며 삼화일원(三化一元)의 진리를 세상에 정도(正道) 이치(理致)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의 진리가 하나의 근본으로 귀일하는 삼화일원(三化一元)의 원리는 모든 사상과 종교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하늘에서 조화되니 땅에서 교화하고, 사람이 사람을 치화로 다스리니 이 모든 것이 ‘?님’이 빛으로 나리시어, ‘땅님’께서 생명으로 길러 주시고 ‘사람님’이 사랑으로 보살피니 이것이 ?울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이며, 부처님 사랑이 셋이 ‘하나’ 되어 완성되니 성부(聖父)·성령(聖靈)·성자(聖子)는 하나로 삼위일체(三位一體)이며, 불교에서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 삼신일여(三身一如)로 그대로 있다고 했으니, 모든 진리는 셋으로 벌어지는데 금국(金局)의 수렴 완성시대는 ?님이 스스로 개입하여 넷이 되어 방정(方正)하며 정립(正立)하니, 이것이 바로 이화세계(理化世界)이며 용화세계(龍華世界)이다.
불교의 법신(法身)과 성부(聖父)는 같은 의미의 말이고, 보신(報身)의 의미도 성령(聖靈), 영성(靈性)을 의미하므로 같고, 화신(化身)은 진리의 몸이 변화하여 세상에 났으니 이 또한 성자(聖子) 예수와 같은 의미이다.
모든 색공(色空 : 물질계와 허공계)에는 어느 하나도 공간적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시간적으로도 연계되어 있지 않음이 없다. 우주 진리의 본체를 보는 시각은 천부경 이전에도 있었고 공간적으로 지구 인간 이외의 세계에서도 존재한다고 보아야 하며 이 천부경 전의 내림으로 인연(因緣)하여 부처님도 후반에 천부경의 이치로서 법화경을 설하게 되었고, 예수님도 법화경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주 진리의 근본영성 이치를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같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환웅 배달국의 성지인 천산(天山)의 근본영성 내림과 같은 그 이치가 예수님과 부처님께 같게 내린 것이라는 것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지금 현 세계에서 종교가 각기 다른 것처럼 구별된 것을 화국(火局)의 시대에 분열 양상 때문이다. 이제 유불선 삼처회통으로 수렴 완성의 시대를 준비하여야 하는 우주적인 흐름에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홍익인간이 되어야 하며, 홍익인간은 불교에서의 대보살이며, 기독교에서의 메시아다. 그 세계는 지상천국이고 용화세계이며, 이화세계이므로 필자는 다 같이 용화 메시아 도통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영원성은 성서의 기본 진리고, 삼신일여(三身一如)의 부처님 영원불멸성은 법화경 진리 즉 일불승(一佛乘)의 요체(要體)다. 천부경(天符經)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을 확실하게 내림으로서 모든 사상 종교의 근원임을 자리매김하였다.
9. 결론 : 동방의 등불, 새로운 문명의 빛인 홍익인간, 이화세계
성경 중 특히 신약성서는 한 분의 하느님을 말씀하셨고, 법화경은 일불승(一佛乘)으로 한 부처님의 상태로서 가고 올 뿐이다. 천부경은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끝없이 돌아간다고 했으니 그 하나는 어디 있단 말인가?
성경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라 하여 인류가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 됨을 내보였고 법화경은 제3장 비유품에서 불타고 있는 집, 번뇌의 화택(火宅)에서 아들들인 중생들을 꺼내 놓으려고 성문(聲門), 연각(緣覺), 대승(大乘) 법으로 제도하고 1승법을 법설(法說) 하여 모두가 한 부처님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제4장 신해품에서 장자의 가난한 아들의 비유 등 근본 하나의 부처님은 아버지이고 중생은 아들이다는 비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부경으로 시작되는 동양 경전은 우리가 모두 천손임을 전제하고 있다.
메시아라는 말은 마에스트로라는 범어에서 나왔고 메시아에서 마스터(Master 선생님)로 변화되었으니 원래 선생님을 일컫는 말이다. 바른 진리의 길을 이끄는 정도의 선생님이 되는 길은 세 경전이 열어 놓고 있는데, 문제는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진리 10에서 11수리 단계, 12수리 단계 결국은 새로이 완성되는 13수리, 새로운 13진리의 묘(妙)가 나와야 하는데, 이것은 법화경에서 천부경을 풀어 그 나아갈 방향을 예시해 놓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동방, 동북방에서 부처님과 대보살들이 모이는 것을 말씀하셨다. 성서에서 예수님 탄생 시 동방 박사 셋이 찾아온다. 이러한 구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곧 동방의 사상적 영향이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법화경은 부처님 입멸 후 100년경에 결집 되었고 신약성서는 예수님 수난 300년 이후 니케아 공의회에서야 비로소 인정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도 법화경과 신약성서는 동양 사상을 같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나아가는 데 최고의 공헌을 한 말씀인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법화경 제12장 제바달다품에서 부처님의 친척이면서 부처님을 원수 이상 괴롭힌 제바달다를 전생의 스승이라 칭탄하고 부처님이 될 것이란 수기를 내려 원수를 사랑하는 본보기를 보인 부처님의 그것과 같다. 제5장 약초유품, 제6장 수기품, 제7장 화성유품, 제8장 오백제자수기품, 제9장 수학무학인기품에서 모든 제자에게 수기를 주시며 종국에는 모든 중생이 성불하므로 ?부처님, ?님되는 공부를 하고 가르치는 법사가 되라고 하시고 대보살 홍익인간 용화 메시아 도통군자가 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제11장 견보탑품에 과거불인 다보불과 현재불인 석가모니불이 나란히 함께 하여 차별이 없음을 11번째 장(章)에서 보이고 12번째 제바달다품에서 사랑의 완성을 법화경에서 부처님께서 보이셨다. 이는 예수님이 인도에서 바라문교를 수행하다가 티베트 맹그스타 스님을 만나서 법화경을 공부하고, 물 위를 걷고 빵 한 조각으로 수천 명을 먹이며 유체이탈 등을 보이는 티벳의 기적 신통술도 수행하였다는 것은 이미 고고학자와 저명한 신학자들에 의해 정설이 되어 가고 있다. 예수님이 12제자를 가르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 했으니 법화경과 성서의 그것이 전혀 무관하지 않게 보인다.
그래서 12수리는 현재 인류가 완성으로 들어가는 진리수리이며 결국은 그것이 참된 사랑으로 나아감을 의미하고 홍익인간의 정도(正道)를 의미하고 있다. 이는 법화경의 세계, 즉 영적 성장 진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법화경의 제12장 제바달다품에서는 용녀(龍女)도 부처가 되는 모습을 보여 여자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제13장 권지품에서 비구니에게도 수기를 내려 여자도 성불한다는 확신을 준다. 참고로 법화경 이전의 경전에서는 여자 성불의 개념이 없었다. 제14장 안락행품에서 법화 수행자의 품격을 갖출 것을 설하고 제15장 종지용출품에서 지하세계의 수행보살이 나타남을 보여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일불승(一佛乘)의 법이 유지됨을 나타내었고 제16장 여래수량품과 제17장 분별공덕품 제18장, 제19장 수희공덕품과 법사공덕품은 제자들의 의심을 깨고 일불(一佛)의 영원 불멸성을 설하고 그 공덕을 설명한다. 제20장 상불경보살품은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으로 모든 수행자에게 부처님 될 것이란 칭탄을 함으로써 홍익인간이 나아갈 바를 예시하고 있다.
제21장 여래신력품, 제22장 촉루품에서 법화경을 유통시킬 것을 당부하고 그 공덕을 밝힌다. 제23장 약왕보살품에서 색신공덕보다 더 큰 법화경의 일불승 진리는 마음의 병을 고친다고 법문하고 제24장 묘음보살품에서 먼 우주의 광명세계에서 온 묘음보살의 확고한 부동심과 신통력으로 34신을 나타내어 미래보살 홍익인간의 경지를 예시하고 있다. 제25장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기 위한 관음보살께서 32응신(應身)으로 나타남을 설하고 제26장 다라니품에서는 호법하는 보살 신장들의 다라니를 선보이며 제27장 묘장엄본사품에서는 이교도인 묘장엄왕이 감화받고 법화경에 귀의함을 전생담으로 들려주어 일불승(一佛乘)의 이치는 시작과 끝이 없이 예부터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28장 보현보살권발품에서 법화경 설법이 끝나면서 보현보살이 법화경 공덕을 찬탄하고 모든 중생이 일불승(一佛乘)의 이치로 돌아가기를 권유하고 진리 수호를 맹세했다.
이처럼 방대한 법화경에 흐르는 영적 성장과 진화의 기본골격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의 진리(眞理) 상태로 귀일(歸一)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진리 본체(本體)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이며 셋째는 이를 수행하고 유포하는 사람, 법사(法師) 즉 홍익인간에 의해서 진리(法) 이치(理)가 꽃피듯(華) 펼쳐지는 세계가 이루어지므로 이화세계가 곧 용화세계다. 이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부처님에게 물어 답을 받은 법문에서 나오는 것으로 용화세계가 미래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방의 불보살과 동북방의 세계 등으로 표현된 법문에 이르러서는 그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가 천부경의 발상지인 천산(天山)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영성(靈性) 진리(眞理)를 종교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천부경(天符經)에서 법화(法華)의 근원을 찾을 수 있고, 법화(法華)는 신약성서에 연결되어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엿볼 수 있다.
삼화일원(三和一元). 조화(造化) 진리(眞理)는 영성복본(靈性復本)으로 영성이 근본을 회복하여 ‘하나’로 돌아가고, 교화(敎化) 진리는 태학정도(太學正道)로 영성 근본 진리를 배움으로 정립시켜 바르게 인도하고, 치화(治化) 진리는 환단화백(桓檀和白)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어우러지는 새로운 정도문명시대(正道文明時代)를 열어야 한다.
수직적 세계에서 수평적 시대로 변화되었으나 지금은 입체 즉 원구(圓球) 시스템 시대로 변화하여야 한다. 이는 곧 ‘하나’에서 시작된 ?우리로 ‘큰 하나’가 된 ‘하나’의 세상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인 홍익인간이 ‘큰 하나’인 ‘하나’의 이화세계요 용화세계고 지상천국을 만드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즉, 한 인간의 변화 개벽이 곧 세상 개벽의 시작으로 이는 한 인간의 인격혁명이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홍익인간, 이화세계 만만세!
弘益人間, 理化世界 萬萬歲!
○ 주제 : [天符經과 法華經 그리고 바이블]
○ 일시 : 2011년 3월 8일(화요일) 오후 7시
○ 장소 : 광화문 삼청동 입구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전화:02-735-2701~4)
○ 강사 : 우룡스님 (조계종 계룡사 용수선원 주지) (약도 바로가기)
○ 참가비 : 무료
○ 문의전화 : 02-766-1110, 041-620-6700, 010-7299-6043